10여 년 전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의 나는 잔소리 대마왕이었다. 아직은 철이 안든 개구쟁이 중학생. 그런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을 때 나는 그들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잖게 타이르고 합리적으로 설명해도 아이들은 돌아서면 끝이었고, 다음날이면 똑같은 장난을 계속 반복했다. 그럴수록 그들을 향한 내 에너지, 감정소모는 심해져만 갔고 나는 점점 더 목소리의 강도를 높여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라."
"빨리 교실 들어가라."
"야! 복도에서 뭐하는거냐?"
"야. 자꾸 딴짓할래? 자꾸 떠들래?"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내 호통에 점점 내성이 생겨가고 있었다. 이제 왠만한 목소리로는 씨알도 안먹히고 있었고 그 강도를 높여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건 똑같았다. 심지어 성향이 강한 아이들은 나에게 적개심이 생겨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기도 하였다.
그렇게....신규 때부터 5년 동안의 내 학급은 늘 그런 패턴이었던 것 같다. 늘 호통과 잔소리만 치다 1년이 흘러갔던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모습. 조용하고 점잖은 아이들만 괜찮았고 나머지는 늘 담임의 잔소리에 불만만 많았던 학급. 그런 학급이 내가 만들고 있었던 학급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나는 칭찬의 효과에 주목하게 되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 아이를 보면서 과연 나는 타인의 소중한 아이들에게 그렇게 잔소리와 호통만 칠 자격이 있는지 되물었다.
지금이라도 늦기 전에 아이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아이들의 인격을 성장시키고 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으로 아이들은 잔소리와는 다르게 의외로 칭찬을 귀담아 듣고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로젠탈 효과처럼 말이다. 특히 그것이 담임 교사가 말할 때는 더 효과가 있었다.
"너는 우리반에서 가장 청소를 열심히 하는 아이잖니?"
"니가 그래도 가장 책임감 있고 듬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철이 많이 들었구나."
"수업태도가 요즘 몰라보게 달라졌다더니 진짜 그렇네."
사소한 변화에도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아이들은 그런 나의 칭찬에 동기부여가 되어 갔다.
실제 수업태도가 좋지 않았던 아이가 하루는 좋은 수업 태도를 보여주어 크게 칭찬을 하자 그 이후 몰라보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청소를 열심히 하는 아이 모습을 보고 크게 칭찬을 해주니 그 아이는 이후 청소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된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슬기로운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은 나를 호인(好人)으로 여겼고 마지막 종업식 때에도 나에게 좋은 기억만 담고 떠나갔다.
이처럼 칭찬은 교육적 측면에서 상당히 효과가 있는 지도 전략이었다. 실제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주변을 봐도 그렇다. 열심히 사는 당신에게 누군가 '그동안 당신이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제 곧 좋은 결과물이 나올거라 확신한다.' 고 말했다고 해보자. 당신이 그런 말을 듣고 다음날부터 어찌 게으르게 살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 칭찬은 꼭 아랫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실제 본성은 게으르고 나태한 나(부장교사)에게 담임선생님들이 "부장님은 배려심이 강하고 항상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라고 요즘 칭찬을 하고 있다.
내가 이런 칭찬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태만하거나 책임감없는 모습을 주변 선생님들께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더욱더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늘 자신을 경계하면서 더욱더 발품을 팔고 있다.
이처럼 칭찬은 단순한 빈말이나 립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큰 고래도 변화시킬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말이다. 당신은 자기 아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얼만큼 칭찬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