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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ul 27. 2022

교사도 그리운 선생님이 있다.

누구든 마음 속에 기억에 남는 은사님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분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도와주셨고, 때론 강한 자극이나 동기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분들의 가르침은 지금도 우리 머릿속에 맴돌아 학창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중고등 동창들과도 술 한잔 기울이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주제가 바로 학교 선생님들과 관계된 추억일 것이다.

 

 독립적이고 삐딱한 면이 많았던 나도 학창시절 도움을 주셨던 많은 은사님들이 계셨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학창시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직업이 교사였던 탓에 같은 교사로서 근무하며 많은 것을 일깨워주셨던 선생님도 계셨다. 오늘은 내 교직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은 선생님에 대해서 글을 한번 써 보고자 한다.


내가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중학교에 발령이 났을 때였다.


우연찮게 같은 날 그 선생님과 동시에 발령을 받아 새 학교에 인사를 오게 되었는데 둘 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보며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작은 키에 나이는 50대 여성으로 보였던 그 선생님은 체구에 걸맞지 않는 박력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보니까 쌤은 젊어 보이는데 여기가 몇번째 학교에요? 전공은 뭐에요?"

"아! 네~ 두번째 학교입니다. 전공은 역사입니다."

"그렇구나. 난 학교 옮겨다닌지 벌써 7-8번은 된 것 같아요. 이제 퇴직도 점점 다가오는 나이네. 여하튼 우리 같은 발령동기네. 앞으로 잘해봐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선생님과 그렇게 인사를 나눴지만 이후로 처음 1년간은 서로 대화할 틈이 없었다. 둘 다 새 학교에서 담임을 맡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새 학교에서 몸 담은지 2년차가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선생님과 같은 교무실에서 서로 마주보며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3학년 부장교사가 되었고 나는 3학년 어느반 담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년부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책임감 때문일까? 아니면 평소 그렇게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까?


부장 선생님은 학년부장의 직책을 맡고 나서는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3학년 아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학교의 3학년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북한에서도 무서워한다던 중2병 시절을 너무나도 훌륭하게들(?) 보냈던 탓에 상습적인 학교폭력, 집단 괴롭힘, 흡연, 음주, 정서불안 어느 것 하나 빠지는게 없는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담임선생님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자 부장선생님은 학기초 학년 회의 때 우렁찬 목소리로 담임들을 다독였다.


"걱정 말아요들. 내가 어떻게든 부지런히 해볼테니까. 우리 같이 합심하여 이 아이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가봅시다. 아이들 생활지도 하다가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이야기해요."


부장 선생님은 쿨하게 이야기하고는 우선 이 아이들과 관계맺기부터 분명히 하였다.


"나는 3학년의 대장 선생님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무사히 이 학교를 졸업하고 싶으면 우선 나한테 복종하고, 누구보다 내 말에 가장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야. 알겠나들!"

"??......"


처음 껄렁이들은 들은채 만채 하며 아담한 체구의 부장선생님에게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주머니에 손 넣고 대답도 안하고 그냥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부장선생님의 지시나 전달사항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카리스마 있게 아이들을 혼내고 지도하는 모습들을 목격하면서 아이들의 태도는 조금씩 조금씩 달라졌다.


"쌤 저기 OO이 어제 누구누구랑 술 마셨대요. 혼내주세요."

"쌤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OO이 담배폈는지 조사해봐요."

"쌤 OO이랑 KK랑 싸웠다는 것 같아요. 걔네들 혼내주고 쌤이 해결해주세요."


껄렁이들은 부장선생님의 말이나 지시가 곧 학년의 법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서로 상대방을 일러 바치고, 자기들끼리 문제점도 꼭 부장선생님을 통해 해결하려 하였다. 부장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사소한 일까지 직접 나서며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쉬는시간마다 발생하는 장난기 가득한 이 아이들의 일들은 지도하는 사람을 귀찮게 만들때론 사람 진이 빠지게도 하였다. 그러나 부장선생님은 단 한번도 힘들어 하는 티를 내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셨다. 항상 손에는 회초리를 휘저으며 팔짱을 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훈계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아이들에게 농담하는 것조차 잊지 않았다. 그런 부장선생님 지도 방식에 껄렁이들은 때론 눈치를 보고 때론 같이 농담을 하며 그렇게 인간  인간으로서 정이 쌓여가고 있었다.


부장선생님의 지도 덕에 처음에는 손에도 잡히지 않던 통제 불능의 껄렁이들이 점차 학교가 설정하고 있는 규정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삐 린 망아지같던 이 아이들은 어느 순간 마굿간으로 들어왔고 조금씩 온순해져 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정해진 학교 규칙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까지 되었다. 덕분에 담임선생님들도 이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내가 부장선생님이 '참 용기 있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구나' 느꼈던 것은 껄렁이들이 공놀이를 할 때였다. 더이상 학교 밖으로 일탈하지 못해 심심해진 껄렁이들은 그 이후 쉬는 시간만 되면 운동장에 나가서 자기들끼리 공놀이를 하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부장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따라 쫄래쫄래 운동장으로 나갔다.  


"쌤 여기까진 안나와도 되요. 아니이! 저희 공놀이하는 것까지 봐서 뭐하시려고요?"

"난 1년동안은 니들 책임지기로 했어 짜샤. 꼭 사건 사고 발생한다고 출동하는게 아니야. 그러니 입 다물고 하던 공놀이나 계속해. 난 지켜만 볼테니까."


부장선생님의 껄렁이들 감시는 운동장에서까지 계속되었다. 교사인 내가 봐도 때론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긴 했으나 아이들도 어느순간부터는 부장선생님을 자기들 놀이 무리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부장선생님이 급한 업무때문에 안보이면 교무실에까지 와서 찾기도 하였다.



쌤 쉬는시간이에요. 공놀이하는데 우리 보러 가셔야죠? 안가요?

나중에서야 부장선생님의 고백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부장선생님은 평소 공 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즉 평소에는 날아오는 공을 극도로 무서워했고 피하고만 싶었다고 한다. 껄렁이들이 뻥뻥 차대는 대포알 같은 공들은 사실 부장선생님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장선생님은 절대 껄렁이들에게 무서운 티를 내지 않고 포커페이스로 그 카리스마를 계속해서 유지하셨다. 사람이 공포를 마주하면서도 계속해서 표정 짓지 않고 자기 일을 완수할 수 있을까? 왠만한 용기와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마침내 그렇게 1년이 가고 이 껄렁이들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진급할 때의 그 삐딱한 표정들이 어느새 밝고 천진 난만한 개구쟁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얘들이 졸업할 때 가장 같이 사진찍고 싶어했던 선생님은 당연히 부장 선생님이었다.


부장 선생님과 나는 그렇게 1년동안 같은 학년에서 근무하며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다시 담임 학년과 업무가 달라져 부장 선생님과 계속 같이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부장선생님이 내뿜었던 카리스마와 책임감, 껄렁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던 태도는 나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장선생님은 그 후에도 계속 학년부장을 맡으셨다. 어느 학년을 맡든 그 학년 아이들에게는 진심이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정을 붙이고 살았다. 여전히 학교에서 말썽부리는 아이들은 하나 둘 생겨났다. 하지만 부장 선생님이 맡은 그 많고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학교를 적응 못해서 떠나겠다고 한 아이는 단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왜였을까?


시간이 흘러 부장선생님은 나보다 1년 일찍 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부장 선생님이 떠나기로 한 날.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그 어느때보다 졸업생을 포함한 많은 껄렁이들이 학교를 찾아왔다. 그리고 부장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애들아 고마웠다 잊지 못할거다." 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였을 때 껄렁이들은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렇게 부장선생님과의 인연은 끝이었고 시간은 흘러 현재가 되었다. 부장 선생님이 최근 생각이 나서 교사용 통합 메신저에 이름을 검색 해봤는데 더이상 이름이 뜨지 않는다. 나중에 알아보니 작년에 결국 퇴임하셨다고 한다.


회초리를 들고 카리스마 있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모습.  
아이들 일이라면 시시각각 신경을 곤두세우고 뭐든 개입하여 해결하려는 모습.
리더십이라는 명목으로 껄렁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껄렁이들을 훈계하는 모습.

 

누군가는 부장 선생님을 가리켜 너무나 구시대적 이고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는 교사상 일뿐 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이런 유형의 교사를 찾아보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년전 부장선생님은 당시의 교육 현장에서 자기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애들을 지도하기 위해 용기를 냈고, 아이들 지도에 최선을 다하셨다.


우리가 산업화 시대가 지나고 시대가 바뀌었다 해서 당시 산업화 역군이었던 아버지 세대를 함부로 폄훼할 수 없는 것처럼, 교육방식이 바뀌었다 해서 당시 부장 선생님 같은 분들의 노력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때론 과거의 관점에서 봐야하고 과거는 과거대로 그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오히려 요즘 학교 현장에는 학교 규정을 잘 알고 수업을 스마트하게 이끄는 똑똑한 교사들은 많지만 , 아이들을 하나 하나 챙기고 아이들을 위해 열성과 최선을 다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늘 열성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부장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지금도 그리워지곤 한다.


이제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껄렁이들에게 부장선생님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술 한잔하며 떠올리는 가장 인상깊은 선생님은 과연 누구일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겐 그 분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왜일까?






생각해보니 부장 선생님이 퇴임한지 1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제대로 된 인사한번 드리지 못했다. 생각난 김에 문자라도 한 통 넣어드려야겠다.

 

 같이 근무하는 기간동안 정말 고생하셨다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늘 최선을 다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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