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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Aug 12. 2022

수업시간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초임 시절 나는 좌충우돌 정신없는 교사였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 본 경험도 없고 지도해 본 적도 없는 나를 학교에서는 다짜고짜 중학교 3학년 담임부터 맡겼다.


 매일 혼란과 실수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할 정도로 아이들을 함부로 다루기도 했고, 수업 시간 아이들이 너무 실망스러운 나머지 내가 수업을 거부하고 교무실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첫해 때의 실수를 곱씹으며 그 이후 나는 학교에서 완벽한 교사가 되려고 했다. 무엇보다 담임반 아이들 앞에서 돌부처 같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했고,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에게 좀처럼 을 주지 않았다.


완벽하게 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한 적도 있었다. 2학기 내가 맡게 된 어느 반은 성적이 전교 꼴찌에 수업태도가 엉망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이 반의 성적을 180도 바꿔놓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는 예상대로였다.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는 것보다 항상 놀려고만 했었다. 화가 난 나는 아이들을 단호하게 혼냈다. 큰 소리로 일장 연설을 하면서 아이들의 흐트러진 자세부터 바로 잡았고 아이들이 수업시간 '쉬거나 놀 생각'을 못하도록 수업을 항상 풀타임으로 진행했다. 때론 흐트러진 자세나 수업 외적인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나오면 이를 이유 삼아 쉬는 시간에도 수업을 연장하곤 했었다.


 뿐만 아니라 2주일에 한 번씩은 쪽지시험도 봤다. 커트라인 점수를 잡아서 통과하지 못하면 통과할 때까지 계속 시험을 보고 학교에 남기기도 했었다. 이러한 나의 열정(?)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그 결과 이 반은 내 과목에서 2학기 중간고사 2등, 기말고사 1등을 차지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나는 몹시 기뻤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도 결과를 이야기 듣고는 모두가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이들 표정은 밝지가 못했다. 무기력하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아이들의 그런 표정은 나를 몹시 당황케 만들었다. 퇴근 후에도 아이들 표정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성적이 잘 나왔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그래 그동안 아이들이 내 수업 따라온다고 많이들 고생했을 테지. 아직도 그 여운이 가지 않았으니 그런 표정일 거야. 시간 지나고 면 다들 보람 있었다고 느끼겠지.'


나는 애써 아이들의 그런 표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교의 젊은 교사들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그 반 아이들의 말을 대신 전해 주었다.


"선생님 수업 스타일이 완전 기계 같다고 아이들이 이야기하더군요. 수업시간 좀처럼 틈도 없고 완벽주의라서 아이들이 말 붙이고 싶어도 말도 못 붙여봤대요. 그래서 늘 아이들이 긴장하고 선생님이 무서웠요. 그래도 그렇게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업하셨으니까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온 것 아니겠어요? 아이들이 그건 잘 모르는 거죠."    


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나를 마주칠 때마다 긴장하고 경직된 기색이 역력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게 수업시간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나의 수업 철학.


아이들은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럼 나는 행복했을까?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지나치게 엄격함과 완벽성만을 추구하느라 학교에서 내 몸은 늘 교감신경이 분비되어 긴장상태였고 경직되어 있었고, 자주 질병 치레를 하였다. 내 앞에는 지나고 나면 잊히는 '성적 결과'만 있었을 뿐 '아이들'은 없었다.


이런 나와는 대조적인 한 선생님이 계셨다. 이 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선생님으로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랴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살피랴 매번 정신이 없으셨다. 때문에 이 분이 맡고 있는 담임반은 학기초 어수선했고 체계가 하나도 잡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선생님은 수업시간 담임반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먼저 주력하셨다. 교과지식이 물론 주를 이루기는 했지만 때론 수업시간에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혼내고 야단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되도록 아이들 입장에서 살피고 대화해주고 신경 써주고 늘 엄마처럼 챙기셨다. 덕택에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을 의존하고 따르게 되었고, 한번 혼난 행동들은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


 가관은 졸업식이었다. 이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선생님께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는 직접 손편지까지 써서 선생님께 전달했다.(평소 남학생들이 아무리 지극정성을 다하는 순간이라도 손편지까지 쓰지는 않는데 이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한 선생님에 대한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내가 학교에서 찾고 있는 행복이란 바로 저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후 나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변화를 추구했다.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무표정했던 나는 아이들의 농담에 같이 웃고 박수치고, 때론 아이들 앞에서 오버액션을 취하기도 하였다. 음치인 내가 아이들과의 내기에서 져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럴수록 아이들도 점점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수업시간이라고 꼭  교과지식만을 위한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수업에는 교과 내용 전달을 하고 있는 개체만 있었을 뿐 나라는'주체'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단하게 수업 스타일을 바꾸어 때론 아이들 앞에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였고, 수업이 루즈해질 때쯤이면 내 일상이나 내가 살아온 과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 흐려지던 아이들 눈빛은 다시 총기 가득하게 반짝였다.


 나는 수업시간을 교사가 꼭 교과 내용만으로 다 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수업이란 것은 학생과 교사가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또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이기에 앞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수업시간이라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서로 간 좋은 관계 맺음이 있어야 아이들도 보다 긍정적인 자세와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학창 시절의 나도 수업시간 선생님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교과 지식만으로 가득 차던 내 머리가 환기되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때론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감화되어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고 '나는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뭐가 되었건 선생님들과의 대화와 소통이 많아질수록 선생님들과의 사이는 가까워졌고 내 학교생활은 즐거웠고 수업시간 집중력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또 시험 결과를 떠나 선생님과 좋은 관계 맺음을 한 수업일수록 내 머릿속에 해당 수업은 '좋은 추억'으로 남기도 하였다.    


물론 아무리 교사가 허울 없이 지낸다고 할지라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와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아이들을 바른길로 이끌고 성장시켜야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때론 권위가 있어야 하고 학생과 교사 모두 서로의 역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인식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교사에게 있어 수업은 그동안 자기가 배우고 학습 해왔던 것을 다시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하는 자아실현의 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수업은 아이들과 공식적으로 만나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배우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때론 수업이 기대된다.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 반응은 어떻고 또 아이들은 내일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뭐가 되었든 성공적인 수업이란 교사든 학생이든 한 주체만의 준비와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간의 좋은 관계맺음부터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기초 늘 어색한 내 소개와 인사부터 고민한다. '대체 올해는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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