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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ul 05. 2022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일까요?

 요즘 학교는 시험철이다. 대부분 2차 지필평가(기말고사)를 보고 있거나, 최근에 지필평가가 끝났다. 우리 학교도 지난주 시험기간이 끝난 뒤 현재는 한창 성적 확인 중이다.


아이들에게 성적을 확인시키면서 느끼는 점은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성적이나 등급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의 OO 과목에서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하나 출제되었다. 출제한 선생님의 의도는 4번 정답을 고르는 문제였으나 조건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4번은 정답이 되기에 불완전했다. 그래서 선생님끼리 협의해서 출제문항의 오류를 인정하고 모두 정답 처리하기로 논의 하였는데 이번에는 일부 아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선생님 출제 의도는 4번이 정답이라는 것인데 그럼 4번 마킹한 아이들은 뭐가 되나요? 4번 체크한 아이들이 좀 더 문제 정답이나 출제 의도에 접근한 친구들인데 더 높은 점수받아야 공평한 것 아닌가요?"


즉 모두 정답 처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 심정은 이해된다. 누군가는 분명 풀어서 4번을 체크했을 테고, 누군가는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다른 답을 체크했을 테니까 모두 정답 처리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일부 아이들이 계속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든 4번만을 정답으로 인정받아 자신의 성적이나 등급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즉 해당 문제를 모두 정답 처리하지 않을 경우 변별력이 생겨서 혹시나 이 아이들은 해당 과목 등급이 하나라도 더 올라갈까 봐 나름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실제 요즘은 시험을 치르고 나면 시험 문제에 출제된 학습 내용에 관심 가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 배웠고, 배운 내용이 어떻게 시험에 응용되었는지 복습하는 것은 아이들의 관심 밖이다.


" 그래서 제 점수면 몇 등급 나올 것 같아요?"

"쌤 그래서 이번에 1 이 어느정도일 것 같아요? 2 컷은요?"

"쌤 망했어요. 이번에 제 점수면 3 컷도 어려울 것 같아요. 수시 포기각인가요?"


아이들의 관심사는 온통 점수와 등급 컷이다. 대체 어쩌다 학교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배운 것이 어떻든 과목 등급 컷만 잘 나오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고 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지난번에는 시험기간을 앞두고 어느 반 자습 감독을 들어갔다. 시험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반 아이들은 조용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업에 뜻이 없는 한 아이가 살짝 일어나 옆의 친구랑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고 나도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 아이들을 따로 제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달리 한 아이가 그 아이들을 노려보면서 계속 눈치를 주고 있었다. 몇 분 후 마침내 쉬는 시간 종이 울렸는데 그 아이는 속닥속닥한 아이들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야! 시험이 3일밖에 안 남았어. 이번 시험이 학기 등급을 결정하는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지 알아? 니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피해본 줄 아니? 니들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 아이의 단호한 태도에 속닥속닥한 아이들은 눈웃음 지으며 "미안 미안해"를 연발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속닥속닥한 아이들보다는 큰 소리로 말하는 그 아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주요 목적은 학업일 것이다. 하지만 때론 지나치게 학업만을 강조하는 것은 학교 분위기를 삭막하게 만들고,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시절을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이자 수단으로만 여기게끔 만든다.


예전 어느 반은 수업 태도가 매우 좋기로 유명한 반이 하나 있었다. 이 반은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수업태도가 좋았고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완벽했다. 하지만 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다. 자습할 때는 에어컨의 윙~ 하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아이들끼리는 서로의 성적과 등급만을 챙기느라 뭔가 깊은 교우관계나 인간관계를 맺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그 반의 반장은


 "쌤 우리 반 굉장히 학구적이고 완벽하죠? 어느 선생님이건 우리 반에 대해 잔소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라고 으스댔지만 학기 말이 지나서 학년이 바뀔 때까지 그 반 아이들 표정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 당시 아이들이 졸업한지 한참 지난 요즘, 당시 그 반 아이들은 지금 그때 그 시절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을까?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공간일까? 학교는 학업적인 아이들만 있어야 하는 곳일까?



교사인 나는 아이들에게 매번 학구적인 자세를 강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학업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이게 과연 학교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일까 의구심을 품게 된다.


작년 담임을 할 때 한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학업에는 뜻이 없어요. 수업시간 자체는 솔직히 지루해요. 그런데 학교생활은 즐거워요. 저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참 좋거든요. 친구들을 통해 제 에너지를 충천해요.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떠들고 마음껏 같이 뛰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때 만큼은 제 자신을 찾은 것 같아요."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부모님은 학업에만 전념하라고 말하지만 저하고는 너무 맞지 않아요. 이미 성적 등급도 3등급 밖인데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해도 안되는구나 좌절감만 생겨요. 그런데 제가 올해 학생회 활동을 하니까 마침내 제 적성을 찾은 것 같아 너무 기분 좋아요. 학교의 여러 행사를 주관하고 있고 준비과정에서 선배들과 참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아이들이 제가 준비한 행사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보람이 느껴져요. 쌤! 전 나중에 이런 쪽으로 직업 가져도 괜찮겠죠?"


나는 대답했다.


"괜찮다 마다. 실제 사회 나가보면 고등학교 시절 배운 학업내용과 관련해 직업 가지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 줄 아니? 학교 활동하면서 너 자신이 행복하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 찾았으면 그것으로 된 거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 진로 적성 찾느라 10년이 걸렸는데 너는 벌써 찾았으니 이 얼마나 빠르고 좋은거니."


나는 학교가 학업 외에도 다양한 자기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꼭 대학 입시만을 위한, 학업에 열중하여 국가의 인재육성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자기 행복과 자기 계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자의든 타의든 아이들 모두는 학교를 다니는 목표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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