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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Mar 26. 2022

문제 학생들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교육적이다는 말의 의미

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보면 유달리 신경쓰이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문제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은 평소에도 학교에서 새치기, 미인정 결과, 미인정 지각, 미인정 조퇴 등을 밥먹듯이 하고 교내에서 흡연도 서슴치 않는다. 심할 경우에는 집단 폭행사건, 휴대폰 태블릿 PC 등 고가 전자기기 도난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으며 태도를 지적하는 교사들에게 불손한 언행을 하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의 담임을 맡게 되면 아마 그 선생님은 1년 내내 힘들 것이다. 매일 발생하는 일에 대해 잔소리를 해야 하고 이 학생들과 감정적으로 부딪쳐야 하며,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항상 뒤치닥거리를 하며 사건에 휘말리기 일쑤니까.


나 역시 이런 학생들의 담임을 맡았을 때 매일 하루를 긴장 속에서 살아가며, 참으로 1년을 힘겹게 보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선생님은 말한다. 교사의 통제를 벗어난 이런 학생들에게 '보다 강력하게 징계를 내리고 퇴학이나 강제전학을 보내면 안되냐고.'


솔직히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과거에 이런 말에 동의했었으니까. 결국 교칙위반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러도 학교에서 내릴 수 있는 징계 수준이란게 교내봉사(보통은 교내 청소), 사회봉사 같은 솜방망이 징계이니까 이 아이들이 학교와 교사를 더욱 우습게 알고 비행을 서슴치 않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실제 내가 근무했던 학교 현장에서도 일방적인 성폭행이나 집단폭력, 상습적인 절도 등이 아닌 이상은 아이들에게 강력한 징계처분이 내려진 경우를 보기는 어려웠다.


난 이런 학교의 솜방망이 처분 결정에 과거 한번씩 허무함과 무력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 이 정도 처분으로 과연 아이들이 반성이란걸 할까? 오히려 더 기고만장해질 것 같은데..... 체벌도 금지되고 이런식으로 교사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대체 무슨 힘으로 이 아이들을 지도한단 말인가 ?'




한편 내가 당시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선생님은 굉장히 아이들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선도위원회에서 다루어진 문제 학생들의 교내 봉사를 꼭 하루씩은 맡으셨다. (사실 이런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교감선생님이 수행했던 교내봉사는 사실 봉사(?)라기보다는 레포형성에 가까웠다. 교감선생님은 그 학생이 아무리 탈선이 심하고 안좋은 행동을 했던 학생이라도 크게 나무라기보다는, 따뜻한 차 한잔을 같이 하며 되도록 많은 대화를 하고, 그 학생의 평소 생활에 많은 관심을 표하셨고 때론 그 학생과 등산을 하며 같이 땀을 흘리기도 하였다.


처음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대체 이게 무슨 교내봉사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떻게든 학생에게 공감하고 학생과의 레포 형성에 집중하였고, 아이가 교내 봉사를 마칠 때는 아이에게 덕담 한마디 건네면서 배웅하 것조차 잊지 않았다.     



교감선생님의 철학은 이랬다.


아무리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라도 이 아이는 우리학교 학생이다. 그리고 이 곳은 학교이고 우리는 교육자다. 포기하면 안된다. 교육자는 아이들을 다룰 때도 항상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교육적?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난 여기서 교육적 이라는 말의 의미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육적' 이란 단어를 네이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사전에는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인격이다. 즉 학교란 곳은 아이들이 언제나 바람직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아이의 인격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인격을 길러줄 수 있을까? 과거 20년 전의 라떼 학창 시절처럼 학교에서 윽박지르고 통제하고 체벌하고 징계의 무서움을 가르친다 하여 아이의 인격이 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04~15년생 아이들 다수는 가정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아가며 자라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학부모들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정처럼 따뜻하고 인격적으로 지도하고 보살펴주기를 바라며 학교를 보낼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문제나 탈선을 일으키는 아이들과 상담해보면 이런 아이들일수록 부모와의 사이도 대부분 좋지가 못하다. 가정 환경이 정말 어려운 경우도 있고, 부모가 아예 손을 놓아버려 방임형인 경우도 있고, 부모의 압박과 통제, 학대 속에 부모에게 크게 반발한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일수록 가정에서 형성된 틀어진 인격이나 사고방식이 밖으로도 전이되어 세상이나 어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한 편이다. 때론 무기력하고 때론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없으며, 왜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럼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징계나 법의 무서움일까? 따뜻한 보살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이라도 교정하는 것일까?




사실 어느쪽이 100%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기에는 강력한 징계가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아이에게 강력한 징계만을 내리고 끝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아무런 교육적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이가 강력한 징계를 받는다 해도 퇴학처분을 받지 않는 한 결국 아이가 돌아올 곳은 학교다. 징계를 줬다 해도, 아이에게서 아무런 반성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식시키지 못했다면, 그 아이는 자신의 징계기간이 끝나면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아이는 자신이 납득하지 못했던 징계만을 받게된다면, 그 아이는 그것으로 세상과 학교에 대한 반감만 더 커지게 된다. 또한 이후 더 큰 부정적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그나마 이루어졌던 가장 기본적인 학교생활 규칙조차도 거부하고 이제는 학교나 교사의 지시조차도 안따르게 되는 것이다.(지금까지 이런 아이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렇다면 강한 규제보다는 타이르고 칭찬하고, 따뜻한 보살핌을 우선하는 방법은 교육적 효과가 있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단기간의 드라마틱한 성과가 나는 교육적 효과는 없었다.


 실제 한 여학생은 선도위원회에서 자신이 살아온 가정환경을 이야기하다가 선생님들의 걱정과 애정어린 조언을 듣고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펑펑 쏟았고,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여학생을 안아준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선도위원으로서 이런 장면은 처음이어서 그 장면을 정말 감동적으로 바라보았다. 한편으로 혹시나 이 학생의 학교생활 태도가 앞으로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품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학생은 다음번에도 또 같은 교칙 위반 행위를 반복했다. 10년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평소 습관을 단기간에 바꾸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 학생은 또다시 교칙위반이 누적되어 선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두번째 선도위원회가 시작되었을 때, 또다시 지난번처럼 말대꾸를 하고 사회나 학교에 대해 적대감만을 드러내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학생의 표정은 많이 밝아졌고 선도위원 선생님들에게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에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말까지 하였다. 그 학생의 입에서 노력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타이르고 기다려도 좀처럼 변화될 것 같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교사의 자세는 '정말 묵직하게 기다리고 인내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좀처럼 학교에 출석을 하지 않던 아이들이 교사의 지속적인 타이름과 기다림 속에 마침내 담임선생님에게 다음날은 학교를 꼭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학교를 다시 왔다. 좀처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던 아이들이 교사의 타이름과 조언, 기다림 속에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내용을 적기 위해 펜을 들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교사의 인내심을 꾸준히 테스트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럴때 우리가 아이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고 언제든지 돌아와도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도 닫혔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될 것이다.


교사는 학생의 거울이자 미래의 모습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타이르고 아이들에게 진정한 믿음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의 인격형성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들에게 학교는 따뜻한 하나의 보금자리로 기억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좋았던 보금자리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들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이나마 달라질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

나에게 그래도 학교는 따뜻한 선생님들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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