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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Mar 21. 2022

학교 아이들의 흔한 조퇴

아이들은 왜 조퇴를 하는가?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소같이 우직한 편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대학에 합격하리라 다짐했던 나는 학교에서 결석이나 조퇴란 것을 해 본적이 없었다.


당시 내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나면 내 고2시절에는 전국적으로 아폴로 눈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에 한창 여름방학 보충수업 중이던 우리 학교도 비상이 걸렸다.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자칫 전염병이 퍼질까봐 바로 조퇴를 시키기에 바빴고 증상이 없더라도 조퇴가 가능했었다. 그런데 이 전염병은 나도 피해가지 못했다. 나도 결국 걸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난 보충수업을 도저히 빠질 수가 없었다. 특히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수업에서 이탈하면 처진다' 는 강박관념이 있던 나였기에 난 간지러운 한쪽 눈을 움켜잡고 기어코 교실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그리고 만류하는 담임쌤께 맨 뒷자리에 앉아서 최대한 타인 접촉을 하지않겠다는 다짐까지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아이들은 나보고 '독종' 이라고 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대한민국의 흔한 고등학생 모습인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  난 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동안 숱하게 담임을 맡았는데, 담임을 맡으면서 느꼈던 점은 요즘 애들은 조퇴를 참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은 코시국이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코시국 이전에도 아이들 조퇴는 참 많았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몇번 하다보니 아이들 조퇴에도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3월달 아이들 출석부는 어떨까? 보통 3월은 꽃샘추위에 아이들도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빡센 고등생활이 시작되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 그런데 출석부는 놀랍게도 깨끗하다. 즉 조퇴나 결석 등 이탈하는 학생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를 나는 자칭 '입학시즌의 효과' 라고 부르는데 고등학교에 첫 입학하여 뭐든지 잘해보고 싶고 뭐든지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아이들이 본인 출결에도 최대한 신경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출결관리는 5월을 넘기지 못한다. 그럼 고등학교 1학년에게 5월은 어떤 시즌인가? 고등학교 입학후 첫 시험결과가 나오는 시즌이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점수대에 머리를 싸매고 좌절감이 깊어지는 시즌이다. 이때 아이들과 상담해보면 벌써부터 자기는 내신이 글렀다고 '진지하게 학교내신 포기하고 정시로 대학갈까요?' 라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

또 계절적으로 5월은 향긋한 꽃냄새가 바람을 타고 다가오고 아이들 마음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그래서  5월이 되면 '입학시즌의 효과' 는 끝이 난다.
 본격적으로 아이들 질병 조퇴나 질병 결석 행렬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픈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정도가 거의 대부분이다.


" 그래 몸조리 잘하고. 다음엔 아프지 말자"

"네. 안녕히 계세요."


담임인 나의 조언이지만 아이들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다음주가 되면 여지없이 또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등 아프니까 조퇴를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처음에는 쟤는 몸이 허약해서 그런가보다 진짜 아파서 그러겠지 하며 별 생각 없이 조퇴를 시켜주곤 했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특정 아이들의 조퇴 요구에 조금 조금씩 의심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담임반 아이들과의 수업시간  


"OO 이 어디갔어요?"

"아프다고 해서 쌤이 조퇴시켰어."

"OO 이가 아프다고요? 와하하"


떠나갈 것 같이 웃어대는 교실 분위기에 뭔가 수상함을 느꼈고 일부 아이들은 "쌤 쟤 사실 꾀병이에요." "쌤 OO이는 내일 아플 예정이래요." 라고 일러 바치기도 하였다.

 

"아니? 아플 예정이라고? 대체 이게 뭔 소린가."


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조퇴 요구자들을 보다 면밀히 관찰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실제 그래서 아프다는 얘들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런데 진짜 심각하게 아파보이는 얘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인상쓰거나 찌뿌둥한 표정을 지을 뿐, 이마를 짚어봐도 딱히 미열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아픈것 맞니? 좀 참아보지 그래.



그 이후 나의 조퇴허락은 깐깐해졌다.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 않다 싶으면 좀 더 있어보라고 돌려보냈고 내가 운영하는 담임반 네이버카페에는 '고등학교 출결의 중요성' 이라며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또 "라떼는 말이야" 라는 꼰대발언을 하면서 요즘 아이들의 정신력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런데 잠시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의 조퇴요구는 또다시 반복되었다. 심지어는 학부모까지 직접 전화가 와서 아이를 조퇴시켜 달라고 요구하니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반에 정말 성실한 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3일 연속 '역류성 식도염' 으로 지각 조퇴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평소 자기 몸 관리도 하면서 항상 모범적인 학생이었기에 나에게 이 학생의 잦은 조퇴는 정말 의외였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학부모님께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학부모님 답변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 사실 OO이가 병명은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스트레스가 큰 것 같아요. 아마 학급의 프로젝트 학습 관리자를 맡은 것 같은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과제물을 빨리 제출 안하고, 담당선생님은 담당선생님대로 아이에게 빨리 거두어서 달라고 하니 아이가 중간에서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아요."


사실 그 아이가 아픈데에는 심리적인 요소가 더 컸던 것이다. 이에 나는 다음날 그 아이랑 바로 면담을 해서 아이의 고충을 들었다. 아이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심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담임으로서 아이의 일을 최대한 도와주었다 또 아이가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지금까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배려했다. 그 결과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아이는 바로 다음날부터 밝고 건강한 얼굴로 다시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사실 아프다고 조퇴를 요청하는 아이들 다수는 몸보다는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실제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하는 반 아이들과 숨김없는 솔직한 상담을 해보니 저마다 알게 모르게 마음속의 스트레스와 아픔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몸속의 병으로 전이된 경우가 많았다. 틀어진 교우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배가 많이 아프다거나, 시험을 망쳤다는 좌절감에 학교 수업에도 회의감이 들어 머리가 아프다는 등 말이다. 또 점점 성적이 뒤쳐지고 학교 수업은 어려워지니 중간에 학교를 이탈하여 집에서 그냥 푹 쉬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상담하면 상담할수록 아이들 내면이 이해되었고 그들 나름의 힘든 과정이 있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공감해줄수록 좋아했다. 아마 그들 마음 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담임인 나한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힘을 얻어 가는것 같았다.


사실 아이들에게 학교란 그들 인생의 모든 것이고 온 세상 전체이다. 본격적인 자기의식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줄곳 학교 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래서  학교가 자기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생활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받는다. 또 아이들에게 있어 친구관계가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상당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학교내에서 자기 기대에 어긋나거나 실망감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금새 우울감이나 스트레스가 생겨나고 이를 회피하고 싶어하고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즉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규정이나 지시형 단어가 아니라 그 상처난 마음을 어루 만져줄 수 있는 진솔한 대화와 공감대 형성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라도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소한 일에도 교사가 같이 기뻐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것만이 아이들에겐 최고의 교육이자 선물이다.


비록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도 아이들의 조퇴행렬은 그렇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위로가 필요한 마음을 발견했고 이를 어루만져주고자 노력했다. 작년 한해동안 조퇴한 아이들 마음속에 나는 어떤 존재로 남았을까?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그 아이들 표정은 밝아졌고 학년이 올라가서 보니 한층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상처 입은 마음이 계속해서 치유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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