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동훈 Feb 27. 2022

11년차 교사의 지난 10년은 어땠는가1?

지난 10년간의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며

이번에는 내 교직생활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2012년, 경기도 역사 교사 임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그리고 2012년 3월 2일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경기도 역사 임용시험의 T.O.는 21명이었다. 그 중 나는 20등으로 붙었다. 정말 요행히 운 좋게 합격한 것이다.


보통 합격 등수가 낮을 경우에는 대기발령인 경우가 많다. 나도 솔직히 등수가 낮아서 바로 발령날 것이라고 생각은 안했다. 하지만 당시 경기도에서는 딱 필요한 인원 수만큼 교원을 뽑았는지 당시 나를 포함한 합격 동기생 모두는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발령의 기쁨도 잠시, 당시 내가 발령받은 곳은 정말 나하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농어촌의 "읍" 지역이었다. 발령받은 학교는 중학교로 한 학년이 4학급 정도 규모에 애들은 기초학력 부진아가 많았던 곳이었다.그런 학교에서도 당시 내가 맡은 반은 말썽꾸러기에 산만한 애들이 가장 많았던 반이었다. 오죽하면 3월 2일날 첫 출근 후 퇴근하자마자 경찰서에서 우리반 아이들의 집단 학교폭력 문제로 전화가 왔겠는가?


 그때는 정말 좌충우돌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갑자기 교실의 아이들이 수업 중에 없어지기도 했고, 학교 주변에 담배냄새가 난다 해서 뛰어가보면 우리반 녀석 몇명이서 수업을 땡땡이치고 담배 피러 밖에 나왔다가 나한테 잡혀가기도 하였다. 또 심지어 수업시간에 자기들끼리 시비가 붙어 가르치는 교사를 앞에 두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등 정말 학교현장에서 볼 수 있는 별의별 모습을 다 볼 수 있었다.


 선도위원회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당시 아직 학교에 적응도 못한 어리버리 신규 교사가 학기초부터 문제 아이들 다루는 회의에는 다 참석해서 학부모와 상담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늘 분주하게 애들 잡으러 뛰어다니느라 퇴근하고 나면 정말 힘이 쭈~욱 빠졌다. 어떤 때는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지느라 저녁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바로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나의 정신없는 모습은 두번째 학교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두번째 학교는 수원의 도심지역에 학교였는데, 당시 새 학년부장님께서는 전입 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며 이번에 반 편성이 아주 잘되어 내 담임반애들은 모두 착한 애들로 구성되었다고 잘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나는 첫해의 악몽이 떠오르며, 여기 애들은 설마 그렇지 않겠지 하며 이제 좀 편하게 교직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애들이 순하다고 강조한 것은 학년부장님의 그냥(?) 거짓말이었다.


 실제 우리반 애들은 A.D.H.D에 분노조절장애에 운동부에 장난꾸러기에 별의별 애들이 뒤섞여 정말 어떤 교사도 맡기 싫어하는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한 반이었다. 특히 툭하면 매일 수업시간이 시끄러워서 수업을 못하겠다고 생활지도를 요구하는 교과선생님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매일 불러서 호통치고 반성문을 쓰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그날 뿐. 다음날 되면 아이들은 또 언제 그랬냐는 둥 장난치고,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급식으로 받은 우유를 바닥에 다 쏟는 등 별의별 장난을 또 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툭하면 학급내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특히 이 아이는 한번 화가 나면 정말 이성을 잃어서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해서 상대 아이가 코피가 나고 안경이 부러지고 옷이 찢어지는 일들이 몇번 반복되었다. 그래서 방과 후에는 담임인 내가 애들을 남겨서 반성문을 받고 학부모에게 전화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런 생활을 수년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의문점이 생겼다.

 

 "아니, 대체 왜 내가 맡은 반은 반마다 말썽인거야? 저기 옆반이나 옆옆반은 애들 수업 분위기도 좋고 애들 인성도 착하던데  대체 왜 나만 이런 반이 걸리는거임?"



 당시 나는 담임반 애들이 착하다던 학년부장님의 말을 그때까지도 여전히 믿으며 결국 내가 지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애들이 사고를 치는 것이라 스스로 결론 짓기도 하였다.





 그런데 실제 전입 온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2-3년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대략적으로 왜 내가 처음에 이렇게 힘든 반들을 맡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소위 '문제학생'들을 중심으로 반편성을 한다. 그런데 문제학생들이 너무 한 반에 모이다 보면 당연히 엉망인 반이 생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가급적이면 최대한 분산시키는 형태로 반편성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반편성을 함에도 남녀비율/과거 학폭사건 연루문제/선택과목 비율 등을 고려하면 결국 상대적으로 지도하기 수월한 반과 지도하기 힘든 반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보통 지도하기 수월한 반은 기존 계시던 선생님들이 다 가져간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이 전입와서 영문도 모르는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지도하기 가장 힘든 반을 배정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학교의 이런 반편성과 담임반 배정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나도 당연히 일부러 어려운 반을 일부러 맡고 싶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다짐했다.


  '이젠 나도 내 실속챙기며 살아야겠구나. 힘든 일은 맡아봤자 학교에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문제반을 맡으면 맨날 교사, 학부모 전화만 빗발치는데 절대 이런 반들은 앞으로 맡지 말아야지.'


 

그 이후 나는 담임반 배정이나 학교 업무를 배정 받을 때마다 항상 힘든 업무는 일부러 피해가는 습성이 생겼다.


그것이 당시 나에게는 가장 편하면서도 최선의 길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번에 이어서 한번 더 쓰도록 하겠다.




  

      


    


            

 

이전 06화 교사도 그리운 선생님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