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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Mar 01. 2022

11년차 교사의 지난 10년은 어땠는가2?

지난 10년간의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며

 지난번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그 이후 매년 학기초 새 업무를 분장받을 때마다 항상 편한 것만 받으려고 했다.


예를 들어 학생부 업무를 맡더라도 학폭이나 선도위원회 등의 궂은 업무는 맡지 않고 배움터 지킴이나 교복담당, 교통지도 등의 편한 행정 업무만 맡았던 것이다. 담임도 항상 편한 반 담임만 맡으려 하였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각종 대회에도 무관심했다.


  당시에는'수업연구대회' 라고 해서 교사들의 수업실력을 겨루는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는 당시 우리 학교의 젊은 선생님들도 의욕적으로 참여하여 수상을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나한테도 한번 참여해보는게 어떠냐는 이야기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대회에도 무관심했다. 그저 학교의 기본업무만 생각할 뿐, 없던 일을 또 만들고 새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신규발령 때 너무 많은 일호되게 당하다보니 학교 ''에 대해서는 벌써 트라우마가 생겨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 신조는 단순했다.

그냥 아이들에게 수업만 잘하면 되고 학교 일에서 "찐빠(실수)"만 안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군생활에 이런 속설이 있다.


  "너무 잘해도 힘들고 너무 못해도 힘들다.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너무 많이 일을 맡겨서 힘들것이고,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너무 욕을 많이 먹어서 힘들것이다. 군생활에서 제일 좋은 것은 튀지 않게 딱 '중간' 만 하는 것이다."  


나는 군생활 내내 이런 마인드 속에서 생활했다. 그때까지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군 생활까지만 이런 마인드로 생활하고 직장인이 되면 꼭 달라지자'


는 생각이었는데 놀랍게도 나의 이런 마인드는 내 교직생활에서도 계승되어 계속 이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특히 15년 첫째가, 18년 둘째가 태어남으로써 나의 이런 마인드는 더욱 강화되었다. 순식간에 아이들 아빠가 되었고 학교 일보다 이제는 퇴근 후 일이 더욱 많아지다보니, 갈수록 학교 일은 뒷전이고 학교 힘든 업무는 더욱 기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20년도 쯤 되었을까...?


이제 9년차 교사로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변도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수업연구대회에 나갔던 나와 비슷한 경력 선생님들은 부장교사 직책을 달고 학교에서도 중추적인 업무를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또한 교육과정 평가원에서 모의고사 등 각종 문제의 출제교사로서 활동하며 자신의 재능과 꿈을 실현하고 계셨다.


한편 내 초임때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열심히 근무하시던 부장 선생님들은 이제 교감, 교장 직책을 달고 각 학교의 관리자로서 활동하고 계셨다.


그럼 나는?


생각해보니 내 주변은 달라졌는데 나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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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충격을 먹었을 때는 지난 2차 임용시험의 감독관으로 갔을 때였다. 그때 나는 평가실 감독관으로서 평가위원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다들 나이가 지긋할거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한 명의 평가위원은 정말 눈에 띄게 젊어보였다.


'혹시 나보다 젊을까?에이, 아니겠지. 나도 이렇게 젊은데;;; 설마 나보다 더 젊은 사람이 평가위원을 할리가 없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 성격이 궁금한건 절대 못참아 성격이라 쉬는시간에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저기 평가위원님~ 되게 젊어보이시는데 실례지만 혹시 나이가 몇살이세요?"


"아, 네. 저는 3X입니다."


"네?"



이럴수가 ! 실제 이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5살이나 어린것이었다.


본인은 초임 때부터 평가원에서 일을 했고 그러다보니 운좋게 평가위원으로 뽑혀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지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은 운이 아니라 '나 원래 실력있는 사람이야' 하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평가위원으로 저렇게 있고 난 이 나이에 저 사람 보조 짓이나 하고 있다니......'


난 단단히 충격을 먹고 문득 지금처럼 살다가는 앞으로도 내 교직생활은 계속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임용시험을 한번에 패스해서 엘리트라는 소리도 들었고, 앞으로 교직생활 중에 이것저것 이뤄내보자고 발령받을 때 스스로 다짐했었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대체 뭔가?'


10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그저 시간만 흘려 보냈을 뿐 나에게 '발전'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신 대체 교직생활 중에 이뤄낸 게 뭐 있수?"


 라고 내 스스로에게 반문했을 때 나는 대답할 거리가 단 하나도 없었다. 교직생활을 30년이라 치면 벌써 1/3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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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다짐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라고 말이다.

뭔가 내 교직생활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이것저것 맡아서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초임 때는 지난번 이야기했듯이 그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그 짧은 시간 내에 이것저것 경험해가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는 흔한 말이 있다. 노력하지 않고는 절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성취한 것들은 모두 "노력"의 결과물이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노력을 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일단 올 한해 마인드는 긍정적이다.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이것 저것 일을 주면 요즘의 나는 거부하지 않고 일단 수용하고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다.

 

 그 덕분인지 학교에서도 처음에 일을 하나 둘 맡기더니 나중엔 미안하다면서 셋 넷 다섯까지 맡겨버렸다. 남들 입장에서는 좀 거부감 느낄만한 분량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한테 이것 저것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뜻 아니겠나. 한편으로 그만큼 내가 해낼 수 있을거라고 본 것 아니겠나.


나는 이런 생각으로 현재 3월을 맞이하고 있다.


궁금하다. 올해 말이 되었을 때 난 올해 초 이것저것 맡기로 한 내 결정에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 것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저 편하게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많이 발전된 모습은 내 스스로에게 많은 자극을 주고 쉬어가던 내 다리도 뛰어가게 만든다.




올 한해 주변 분들과 서로 격려하며 많은 것을 성취해 나가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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