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그만둔 걸 후회한 이유
나는 분명 공무원을 그만둔 걸 후회했었다. 과거의 후회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이유는 이 생각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니라 그들이 문제였다고.
면직 후 처음 몇 주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할 곳이 없다는 게 나에겐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오늘도 생업 전선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뭇 직장인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 욕을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대학생 때부터 알바를 쉬지 않았지만 직장인으로서 받는 '월급의 맛'은 또 다른 느낌이라 당장 오늘부터 내 통장엔 마이너스만 찍힐 거라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나의 미래를 저주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돌비 아트모스 서라운드급으로 재생되어 들려왔다.네가 공무원보다 나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냐, 후회하게 될 거다, 너는 잘 될 가능성이 없다... 기타 등등. 매일 밤 12시 이전에는 잠을 청하던 내가 새벽 3-4시가 되어도 눈을 붙이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니 일상의 리듬은 깨지고,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두통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내 미래가 '공무원보다 훨씬 떨어지는 무언가'가 될 것 같아 더더욱 불안해졌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창문 너머로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저물고 해가 떴다.
엉망이 되어가던 내 생활을 구제해준 건 나의 선견지명 덕분에(?) 면직 전 미리 지원해둔 공공근로사업이었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공공 문화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터라 공무원을 마주칠 일도 없었고, 출퇴근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코로나가 한창 심하던 때라 나는 내방객들의 체온 체크와 백신접종 QR코드 확인을 보조했는데 항상 오시는 분들이 오시는 곳이다 보니 내가 딱히 나서서 안내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엔 외국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의미 있는 휴지기를 보내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이 깨달음은 정말 갑작스레 찾아왔는데, 아르키메데스가 왜 목욕을 하다 알몸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뛰어나왔는지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는 사회의 미풍양속을 저해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가 면직을 한다니 앞다퉈 나의 가능성이 여기까지라 선을 그어놓던 이들 때문에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가장 과소평가하던 게 누구였지?'라는 질문에 봉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당연히 '나'였다.
나는 임상학적으로 보고될 만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조용해서일 수도 있고, 자라면서 칭찬 한 번 못 받아본 가정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여자에겐 유독 겸손함을 미덕으로 쳐주는 내 고향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나는 이미 사회인으로서 한 사람 몫의 기능을 해야하는 나이이고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봤자 손해보는 쪽은 나라는 자각이 번쩍 든 것이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뇌우 같은 그 순간이, 그냥 별일없이 찾아왔다.
그래도 약간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땜빵용 공무원' 취급을 당했던 게 도움이 조금 되긴 했다. 남은 생까지 억울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분명 한 적이 있으니.
그러나 자신감과 내가 이미 날려버린 시간은 별개의 문제라 나는 분명 대기업에 들어갈 만한 스펙과 직무경험을 갖춘 인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전문직이나 공기업 시험을 준비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는 내가 전업 수험생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수험비용도 없다!) 우선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이런 내 앞에 놓인 최선의 선택지는 역시, 너무 이상하지만 않은 회사면 일단 입사해서 직무와 관련된 경력을 쌓은 다음 몸값을 올려 이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래는 불안할지라도 일상은 망가지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정말 뜻밖에도 인스타그램에서 지금 다니고 있는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