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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Sep 07. 2022

그 여자분은 다른 데 갔냐고 묻던 민원인이 계셨다


 돌이켜보면 나에겐 주민센터 근무가 적성에 꽤 맞았다. 구성원들과 잘 맞을 경우 친구처럼 재미있게 지낼 수도 있고, 주민센터에 자주 들르는 (좋은) 민원인 분들과 친분도 쌓이고, 몸으로 뛰는 일을 할 일이 많다 보니 따분할 틈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별거 아닌 능력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쉽사리 하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었다.


  '별거 아닌 능력'이란 스마트폰 조작하기, 팩스 발송하기,  알려드리기 등을 말한다. 물론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주민센터에서는 본연의 업무만 하기도 힘드니 이런 자잘한 부탁들을 들어드릴  없겠지만, 내가 일하던 곳은 연말과 연초가 아니면 그렇게 바쁘지 않았으므로 나는 성심성의껏 민원인들을 도와드릴  있었다. 물론 본업에도 열심히 임했다.


 하루는 장애등급 판정에 대한 상담을 받으러  민원인이 계셨다.  분의  상태를 여기에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장애등급 판정기준서에서 그 분이 해당되는 장애 유형을 찾아보니, 가장 낮은 등급인 6급이 나오거나 장애등급을 받을  없거나,   하나로 보였다. 건강보험공단 심사담당자님에게 전화로 문의해보니 담당자님도 나와 같은 의견이셨다. 물론 정확한 결과는 심사에 필요한 자료(의사진단서 ) 나와야   있지만, 이를 준비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장애 등급심사를 신청해보시라고 선뜻 권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생각을 말씀드렸다. 장애등급 심사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이루어지고요. 결과가 나오기까지 길게는  달이 걸립니다. 그런데 담당자 분께 유선으로 간략하게 여쭤보니 선생님께서는 장애 등급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보이세요. 물론 신청은 자유지만, 준비해오셔야 하는 자료도 많고, 사실 장애등급 경증의 경우 체감되시는 복지 혜택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어요. 민원인은  대답에 아쉬워하셨지만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가셨다. 웃으며 고맙다 말씀하시던 그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을 아주 조금, 성실하게 했을 뿐인데, 누군가는 나처럼 부족함 투성이인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아갈  있던 것이다.




 반 년마다 돌아오는 인사고충과 희망보직을 제출하는 기간에 나는 지금 근무하는 주민센터에 남겨달라는 내용을 적어냈다.




 내가 일하던 자리에 앉은 후임자분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어떤 민원인께서 물어보시길 그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 분은 다른 곳으로 가셨냐고. 성함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성씨가 A씨였던, 할 수만 있으면 따로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싶을 정도로 감사한 일이 있다고 하셨다는 얘기. 인상착의를 들어보니 위에서 이야기한 민원인 분과는 또 다른 분이었다. 나는 그 분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조금 거만한 이유를 밝혀보자면 나는 인상착의를 듣고도 내가 그 분에게 무슨 일을 해드렸는지 콕 집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는 얘길 들을 만한 일'을 많이 해왔으니까.


 나는 주민센터에서 계속 일할 수 없었고 구청의 교통과로 발령이 났다. 당시의 나는 주민센터에서 일한 지 10달밖에 안 되었으므로 6개월을 더 같은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건 무리한 부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나를 이동시킨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일은 열심히 하는데 그네들처럼 국과장의 딸이 아니니까 힘든 곳으로 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보다 하는 피해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한때 나의 선의가 무용한 것이었단 자괴감에 빠져지냈다. 착한 것이 더 괴로운 일이라면 나는 사람을 도와주며 느끼는 행복과는 멀어지고 싶었고 나보다 약한 사람을 가려내 화가 날 땐 그들에게만 풀고 싶었다. 나는 역사책에 나올 만한 위인도 아닌데 나 하나 못되게 사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랬던 내가 마음을 고쳐먹은 건 착한 일을 하면 명리학적으로(?) 본인에게 다 좋게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어떤 책의 글귀 때문이기도 하고, 내 가정사를 털어놓았더니 본인이 불리한 때가 오자 그걸로 날 공격하던 과거의 친구 때문이기도 하고, 배려는 손해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최근에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배려하며 살아도 무섭지 않은 일터를 만드는 게 나의 최종 목표가 되었다.


 나에게 따로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고마운 일이 있다는 어느 분의 말을 곱씹을수록 가슴 속에 화하게 퍼지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본질이란 확신이 생겼다.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면 내가 훨씬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 안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든 분들, 우리 지지 말고 함께 착하게 살아봅시다. 우리의 삶을 통해 진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증명해 보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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