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좀 걸으라고!
걸을 때 보폭이 작은 편이다. 속도 또한 그리 빠르지 않으니 남들과 같이 걸으면 대부분 뒤처져 걷게 된다. 여러 명이 걸을 때는 다행히 걸음 속도가 늦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뒤따라 걷게 되지만 걸음 속도가 빠른 사람과 단 둘이 걷다 보면 그 속도에 맞추고자 때로는 거의 뛰다시피 해야 할 때가 많다. 게다가 경험 상 그런 사람들은 걸으면서 말도 많았다. 차오르는 숨 사이로 대화까지 이어가야 하니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지칠 때가 많다. 특히나 천천히 주변의 풍경 보며 여유로이 즐기는 산책을 좋아하기에 이왕이면 나와 속도가 비슷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심적으로 편하다.
그러나 걷는 속도가 다르더라도 (대부분 나보다 빠르겠지만) 같이 걸으면서 더 큰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몇 걸음 같이 걷다가 나의 느린 속도를 바로 감지하고 자신의 걸음 속도를 줄여 내 속도에 맞춰주는 사람이다. ‘같이’ 걷기에 나름의 고충(?)을 갖고 있기에 이 같은 상대방의 행동을 빠르게 감지하는 편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그에 맞게 자신의 것을 조절할 줄 아는 그러한 사람은 대부분 ‘배려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잘 파악해봐야 한다. ‘호감’에 눈이 멀어 그 기간 동안만 나에게 의도적으로 맞춰주는 것일 수도 있으니.
“조금 천천히 걸으면 안 돼? 숨차잖아.”
“자, 하나 둘하나 둘… 보폭을 크게! 그렇지! 이러면 운동도 되고 좋지. 얼마나 좋아 남편이랑 걸으면서 운동도 하고. 자자, 따라와 봐. 하하”
이 남자, 난 짜증 나 죽겠는데 혼자 신났다. 연애 때는 “느린 사람이 빨리 걷는 것보다 빨리 걷는 사람이 느리게 걷는 게 쉽다”며 세상 배려심이 넘치시더니 역시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결혼하자마자 임신한 내 느림보 보폭에 맞춰주다가, 아이들의 아장아장 걸음에 세상 제일 작은 보폭을 보여주더니 아이들이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나 빼고 다 같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시금 속도들의 간극이 줄어든 느낌. 사춘기 첫째 아이는 우선 걷는 게 싫어 그 걸음이 느려졌고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느낌), 둘째 아이는 ‘엄마는 천천히 걸으니까’ 축구공을 가져 나와 공을 살살 차면서 천천히 걸어줄 정도로 철이 들었다. 그런데 남편만 예전의 속도를 찾아내 줄이지 않고 있으니. 물론 내가 짜증 낼 때마다 바로 속도를 줄이긴 한다만 왜 매번 말해야 할까.
“난 다음에는 나에게 맞춰져서 천천히 걷는 남자를 만나겠어!”
“어떡하나… 난 똑같이 태어나서 자기 계속 빨리 걷기 연습시킬 건데.”
웬만한 핀잔에도 웃으며 넘길 줄 아는 그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하긴 그것 때문에 이 사람을 좋게 보긴 했지). 투닥거리며 도착한 동네 레스토랑.
“이것 봐. 우리 뒤부터 사람이 많아지네. 빨리 오니까 바로 앉고 좋잖아.”
운 좋게 마지막 남은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자 남편의 기세가 더욱 의기양양해진다. 우리 뒤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그와 걸으면서 짜증만 내지 말고 ‘운동한다’ 생각하고 조금 속도를 내보는 것으로.
둘 다 속도를 줄이고, 높이다 보면 언젠가는 같아지는 날이 올지도. 그것이 죽기 전날은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