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치즈 Dec 13. 2022

결혼 후 달라진 밥상

김치가 사라졌다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이지.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매년 김장철마다 동네잔치를 벌일 만큼 거대한 규모로 각종 김치들을 담그시던 외할머니 덕분에 파김치, 갓김치, 오이소박이, 겉절이, 묵은지 등 우리 집 밥상은 온갖 종류의 김치로 항상 풍성했다. 김치가 빠지면 안 되는 것이 한국인의 밥상 아닌가. 고로 모든 한국인들은 당연히 나처럼 김치를 사랑한다 생각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김치는 빼고 볶아주시겠어요?"


엥, 이건 무슨 소리인가.


데이트 코스로 유명 닭갈비 집을 찾은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나. 누가 뭐래도 이 음식의 하이라이트는 철판에 약간 남은 닭갈비에 밥과 콩나물, 김치, 김 등과 갖은양념를 넣어 만드는 볶음밥이렸다. 그런데 김치를 빼 달라니!


순간, 이 남자, 분명 한국에서 태어난 것 맞나 되집어본다. 누가봐도 한국 토종인의 외모다. 시어머니 또한 음식 솜씨를 자랑하시는 분이니 집에서 김장을 안 하실리 만무하다. 


"아...난 그냥 김치의 강한 향이 싫더라고. 냄새가 너무 센 것 같아서.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냥 안 먹었어."


어안이 벙벙했다. 센 냄새는 뭐고 강한 향은 뭐람. 그것도 김치가? 그가 하는 말이 이해도 안됐지만 어릴 적 '안 먹겠다' 말한다고 진짜 평생 김치를 주지 않으신 남자 친구의 부모님도 신기했다.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김치를 먹어야지!" 매 식탁에서 각종 김치를 즐겨 먹던 우리 집 식사 시간에서라면 당연히 들었을 핀잔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사람마다 다르니까. '다름'을 항상 인정하는 기존 내 관점대로, 신기하긴 했지만 그저 그만의 색다른 취향(?)이겠거니 하며 넘겼던 것 같다.

 

당시에는 몰랐던 것이다. 그가 내 남편이 될지!


미국 생활 13년 차. 여전히 외식보다 집밥을 좋아하기에 대부분의 끼니는 집에서 해 먹는 편이다. 그렇다고 매번 구첩반상을 차릴 수 없는 법. 음식을 즐겨하는 편이지만 유난히 음식하기 피곤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김치찌개 하나로 온 가족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면 좋으련만 남편님이 김치를 못 드시니! 물론 '나는 다른 반찬이랑 먹으니 괜찮다'는 남편.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내 마음 또한 편하지 않을게 당연하다. 결국 찌개 두 개를 끓이기는 싫으니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안들어 간) 콩비지로 대체한다. 


그렇다 보니 집에서 김치찌개를 안 먹은 지 한 참 됐다 (몇 년된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은 김치를 먹기에 밑반찬으로 내놓긴 하지만 먹는 양들이 적다 보니 집에서 겉절이를 묻히는 것도 아주 가끔, 대대적으로 김장을 담가본 적은 더더욱 없다. 결혼 후 밥상에서 김치는 더이상 '필수'가 아닌  없어도 되는 '서브 반찬'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미국에 산다'는 이유 또한 있다. 신혼 초 이런저런 이유로 몇 주간 김치 없이 밥을 먹다 우연히 한국 마트 반찬 코너의 김치 냄새를 맡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옛날 남편이 말한 '강한 김치'냄새가 무슨 의미였는지 그때서야 느낀 것이다. 그 순간 "네 몸에서 마늘냄새가 나니 몇 달간 김치 먹지 말아라."라고 말한 외국인 시어머니 때문에 상처 받은 친한 언니의 말도 떠올랐다. 그때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몰상식한 시어머니다' 욕했건만 김치의 강한 향을 몸소 느낀 그 날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날 이후 였던 것 같다. 아주 가끔씩 재택근무가 아닌 회사 본사로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가기 한 달 전부터 '김치 금식'을 시행했다. 행여나 백인 가득한 사무실 내에서 '김치 냄새' 풍겼다 한국인의 이미지가 안좋아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가운 점은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상황은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음식, 문화 등이 좋은 시선으로 주목을 받고 유행으로 퍼지면서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 것들에 대한 자부심 또한 느끼고 있다. 한의사를 하는 동네 언니는 코로나 펜더믹 시기 코로나 걸린 백인 환자들에게 발효 음식으로 한국의 '김치'를 오히려 추천해 줬다고 한다.


"자기는 김치볶음밥 먹을래?"


갑작스레 한국 분식이 먹고 싶어 주말 점심에 찾은 한인타운의 분식점. 한국 음식 문화 열풍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편은 여전히 김치를 먹지 않는다. 여전히 자기 때문에 내가 김치를 자주 못 먹는다 생각하는지 남편은 이런 곳에 오면 항상 나에게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을 권한다. 남들이 보면 모처럼의 외식에 '무슨 김치볶음밥 같은 걸 추천하냐' 하겠지만 우리 사이에 있어서는 나름 상대를 배려해주는 것이니 이 또한 우리 집 만의 색다른 식사 풍경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편과 아이들의 입맛에 따라 차리게 되는 밥상.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리 되는 걸 보면 이 또한 '엄마의 마음이겠지'싶다. 이 날 배불리 맛있게 먹은 김치 볶음밥. 절적한 가격선에 이만큼 만족도가 높은 외식 음식이 있을까 싶다. ^^ 


   


매거진의 이전글 장미꽃 한 송이 선물해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