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사람들 <도바 위에 뜬 별 제21화>
라벨의 밤
배영숙의 결단 덕에 공장에서 출고된 원피스 박스들이 시내 도바마다 나뉘어 깔렸다. 연보라, 민트, 자주색, 그리고 여름철 잘 팔린다는 민무늬 원색 원피스가 시장마다 도바마다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장님, 이거 색깔 좋네예.”
“한 장만 사려 했는데, 이거랑 저 색도 같이 주세요.”
손님들의 손길이 바쁘게 오가며 현금이 내 전대에, 다시 지갑에 차곡차곡 쌓였다.
손님들한테 옷을 챙겨주며 혼잣말로 말했다.
“고진감래라지만, 이제 좀 장사가 장사답게 되어 가는 것 같다.
도매 밑에서 끌려다니던 시절은 끝났다.”
정오, 값이 무너지는 순간
원피스 출하 일주일 도 채 안 되는 날이었다.
정오 무렵, 시장 입구에 봉고 한 대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봉고차 옆문이 ‘쾅’ 열리더니, 안에서 원피스가 바리바리 쏟아졌다. 놀랍게도 디자인은 우리 OEM 물건과 거의 동일했다.
“만 원! 오늘만 만 원!”
싸구려 확성기 소리가 먹자골목 시장 전체를 흔들었다.
우리는 13,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그들은 3천 원 더 싸게 던졌다.
손님이 삽시간에 그쪽으로 쏠렸다. 우리 물건을 고르던 손님들조차 손을 놓고 그쪽으로 향했다.
말숙 씨가 다급하게 말했다.
“한 사장, 이거 우짭니까. 저리 다 쏠리겠네예.”
나는 주위에 들리지 않게 그녀에게 작은소리로말했다.
“말숙씨, 저기서 우리가 보낸 것 들키지 말고 살짝 한 장만 사오이소. 여기서 바로가지 말고 우회하여가세요. 우리가 저 원피스 직접 확인해 봐야 해요.”
잠시 후, 말숙 씨 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사왔심더. 딱 우리 물건 흉내 낸 거 맞네.”
나는 OEM 원피스와 짝퉁 원피스를 나란히 행거에 걸고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겉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나는 짝퉁의 봉제선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스티치 간격이 들쭉날쭉하지요? 이런 싸구려는 세탁 한 번이면 풀려버립니다.
어디서 파는 것인지 말 한해도 알겠지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우리 원피스를 펼쳐 보였다.
“우리 제품은 일정합니다. 안단 처리까지 마감해 놨습니다. 이게 옷의 수명을 좌우합니다. 우리 것은 오리지널입니다. 저희 제품 품질과 디자인이 백화점 물건 못지않으니까 이렇게 짝퉁이 바로 나왔지 않습니까? 싸구려 물건 찾으시는 분은 저쪽으로, 브랜드 못지않은 퀄리티를 보시려면 이쪽으로 오세요 ”
옆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속은 이래 다르네예. 그라믄 당연히 이거 사야지.”
나는 바로 외쳤다.
“오늘 사신 분 전원, 일주일 안에 색상 교환 무료! 싸게 사서 두 번 사실 겁니까, 한 번에 끝내실 겁니까?”
군중 속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사람들은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그때 위쪽에서 내려다보니, 말숙 씨가 손님들한테 옷을 내주는 대신 잠시동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안단 박음질을 짚어가며 설명할 때, 그녀 눈빛에 순간 묘한 빛이 스쳤다.
마치 상품이 아니라, 나 자신을 새삼스레 보고 있는 것처럼.
트럭 장사꾼은 봉고에 물건을 다시 되담으며 이를 갈았다.
“에이, 돌아버리겠네! 저따위 바느질이 뭐 그리 대단하다꼬!”
오후, 단속의 그림자
하지만 숨 돌릴 틈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세 시, 시장 게시판에 굵은 글씨의 공문이 붙었다.
“의류 표시사항 미비 단속 예고 – 섬유 혼용률·세탁법·제조자 미기재 제품 적발 시 즉시 압류.”
날짜는 내일 오후 세 시.
악어형님이 얼굴을 굳혔다.
“이거 우리 겨냥한 기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OEM 물건 중 라벨 안 붙은 박스가 많이 섞여 있었잖아.”
인도받은 물량 중 무작위로 박스를 골라 개봉하자, 과연 목 안단이 텅 빈 원피스가 수십 벌씩 나왔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이거 걸리면… 전량 몰수입니다.”
거둬들이기와 인쇄소
악어형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장사가 아니라 라벨이다. 거둬들이기부터 시작한다.”
그날 저녁, 시내 각 도바로부터 무 라벨 원피스제품을 전량 걷어 모았다.
“사장님, 왜 다시 치우십니까?”
“내일 단속 나온다. 이대로 두면 다 뺏긴다.”
노점상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후 내내 부산시장을 돌며 도바나 소매상에 깔았던 원피스들을 전량 회수해야만 했다. 구 씨 형님과 대팔이, 이들 두사람이 오후장사를 포기하고, 시내 도바마다 찾아다니며 회수작업을 겨우 마쳤다.
나는 공장에 전화를 걸어 표시사항 내용을 다시 확인하여 불러 받았다.
“섬유혼용률 65% 폴리에스터, 35% 레이온. 세탁 시 중성세제, 표백 금지. 제조자 ○○어패럴, 주소 부산진구 ….” 다행히 불러 받은 내용들은 일부 붙어있는 라벨내용과 일치했다.
문제는 라벨 미부착 제품에 붙일 라벨을 인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근처 인쇄골목 인쇄소들은 모두 거절했다.
“그깟 라벨 몇 장 찍자고 야간에 기계 돌리라꼬 예? 직원들 이제 막 다 퇴근했습니다. 지금 부른다고 누가 올라하겠능교, 고마 내일 오이소.”
수화기 너머의 냉담한 목소리에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나는 문득 신문기자 시절 인연이 있던 하단동 강남 인쇄소 사장 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자,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한 기자? 이런 밤중에 웬일이고.”
“사장님, 급합니다. 라벨 인쇄 오늘 밤 안에 필요합니다. 직원 분들 퇴근했어도, 분량이 많지 않으니 사장님 손수 하시더라도 꼭 좀 안 되겠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참, 기자 양반. 목소리 들어보니 급하긴 꽤 급한 모양이군, 들어갈 인쇄내용과 사이즈 바로 불러주고. 배송지 주소 같이 불러. 내가 직접 찍어 오토바이 택배로 한 시간 안에 보내 줄 테니.”
내가 수화기를 붙들고 간절히 호소하는 동안, 말숙 씨는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한 사장… 기자 시절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 낼 줄은 몰랐심더.”
그 눈빛 속에는 단순한 동료애 이상의 무언가가 잠시 스쳐갔다.
밤 열 시, 따끈한 잉크 냄새가 나는 라벨 박스가 왕비다방에 도착했다.
라벨의 밤
다방은 곧 전쟁터가 되었다.
박스마다 원피스가 쏟아지고, 라벨, 풀, 가위, 스테이플러가 탁자 위에 뒤섞였다.
악어형님이 외쳤다.
“이제부터 말 줄이고 손만 움직여라.”
말숙 씨와 그녀 친구 심여사까지 합세하고, 주변 노점상들까지 달려왔다.
“우리 장사도 같이 사는 일 아닙니꺼. 같이 붙입시다.”
‘딱—딱—’ 스테이플 소리가 밤공기를 쳤다.
풀 냄새가 진동했다.
심여사가 내 옆에 붙어 농을 걸었다.
“역시 기자 양반이라 머리도 잘 쓰고, 이런 위기 때 대책을 잘 내놓네요.”
배영숙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엄하게 나무랐다.
“심여사, 입으로 붙이지 말고 손으로만 라벨 붙이소.”
순간 웃음이 터졌고, 심여사는 얼굴을 붉히며 라벨을 붙였다.
순간, 말숙 씨의 스테이플이 탁, 유독 소리가 크게 났다.
옆 사람들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말없이 계속 신경질적으로 스테이플을 눌렀다.
새벽 네 시 반, 마지막 박스가 닫히자 스테이플 소리도 멎었다.
악어 형님이 허리를 펴며 중얼거렸다.
“오늘 밤은 장사가 아니라 라벨이었다. 내일은… 과연 뭐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골목 어귀, 낯익은 도매상 부장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우리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벨로 버틴 밤이 지나가면서
긴장으로 얼어붙은 새벽이 밀려오고 있었다.
점검의 날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쪽잠에 빠져 있던 나는 다방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한참이나 울리던 벨소리가 내가 수화기를 드는 순간 뚝 끊겼다.
밤샘 작업에 지친 사람들은 다방 의자 위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 의자는 소파이자 곧 침대였다.
말숙 씨와 인근 도바 코스 아주머니들은 근처 찜질방에 간 듯, 보이지 않았다.
창밖 골목 어귀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서 있었다.
도매상 부장, 밤새 담배를 물고 지켜보던 그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한 사장. 내가 인천에서 출발하여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최대한 빨리 도착할 테니, 그전엔 절대 도바를 펴지 마라고 모두에게 전하세요.”
내가 어디쯤 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눈 밑은 푹 꺼져 있었고, 손끝엔 아직도 라벨 붙이던 풀 자국이 묻어 있었다.
결전의 준비
악어 형님은 묵묵히 천막 줄을 조였다.
대각사 뒤편, 그의 도바는 우리 것보다 두 배 반은 더 컸다.
“오늘은 정면으로 받아친다. 알겠제?”
형님의 어조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배영숙은 서류와 계산기를 형님도바 간이 테이블 위에 펴 놓고,
노점상들에게 단속반 대처 요령을 일러주고 있었다.
“라벨 확인표, 도바마다 챙기이소.
섬유 혼용률, 세탁법, 제조자 기재, 주소…
빠진 거 없는지 다시 확인하이소.”
그녀의 말투가 어느새 부산사투리로 바뀌어 있었다.
단속날 아침, 우리 모두가 평정심을 찾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환·환불 안내문을 비닐 커버에 넣어 나눠주었다.
‘일주일 이내 동일 가격대 색상 교환 가능.’
안감 박음질로 정품과 가품을 가리는 요령도 적어 두었다.
그때 말숙 씨가 A4 묶음을 안아 들고 다가왔다.
“표기 확인표, 더 있습니까?”
짧고 담담한 목소리. 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소문과 동요
아침 시장이 열리자, 소문이 바람처럼 퍼졌다.
“OEM 물건도 곧 단속 걸린다 카더라.”
“단속반이 도매 편들고 왔다던데.”
몇몇 노점상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우리는 오늘은 그냥 쉬겠습니다 예.”
관운장 같은 악어 형님의 긴 눈썹 꼬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오늘 쉬면 내일도 쉬어야 한다는것 노리나? 이 바닥이 그리 만만하더나?
그 뒤는 니들 책임이다.”
평소 걸걸한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펜 끝처럼 꼿꼿했다.
말숙 씨는 묵묵히 우리 도바 물건에 새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13,000원이던 것이 어느새 12,000원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신상무의 서류
잠시 후, 신상무가 도착했다.
두꺼운 서류 봉투를 ‘탁’ 하고 내려놓는다.
“OEM 계약서, 품질 기준 적합 확인서, 납품·출고 내역, 라벨 발주·수령 증빙.
단속반이 요구하는 건 다 있습니다.”
왕복 열다섯 시간을 운전하고도 그는 지쳐 보이지 않았다.
부산과 김포를 단숨에 내달려, 중국으로 출장 가는 공장 대표의 법인 인감을 받아온 것이다.
악어 형님이 봉투를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영숙은 서류를 파일에 나눠 꽂으며 말했다.
“각 도바 대표, 한 묶음씩 받아가이소.”
심여사가 내 팔을 치며 웃었다.
“이렇게 든든할 데가 어딨니?. 저 서류 챙겨야 하는 것 한 사장이 확인한 것 맞죠.”
나는 짧게 미소만 지었다.
점검의 시작
정오 무렵, 노타이에 흰색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단속반 두 명이 나타났다.
“의류 표시사항 점검 나왔습니다.”
신상무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서류는 여기 있습니다. 샘플은 임의로 뽑으십시오.”
단속반이 옷걸이에서 두 벌을 집어 들어 라벨을 확인한다.
그 작은 종이조각이 장터의 긴장감을 좌우하는 심장처럼 뛰었다.
마지막 박스를 열었을 때, 라벨 하나가 반쯤 덜렁 거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오늘 새벽까지 라벨 작업을 했습니다. 지금 바로 보완하겠습니다.”
말숙 씨가 앞으로 나와 스테이플러를 ‘딱’ 하고 눌렀다.
라벨은 안단에 깔끔히 붙었다.
“표시사항은 적정합니다. 부착 상태만 보완하시면 됩니다.”
단속반의 목소리엔 계도 어조가 섞여 있었다.
몰수와 지도의 경계는, 작은 라벨 종이 하나로 갈렸다.
시장의 역풍
그때 시장 입구에서 확성기 소리가 터졌다.
“만 원! 오늘만 만 원!”
어제 보았던 봉고가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플래카드까지 달려 있었다.
“동일 디자인 최저가 보장!”
사람들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값으로 몰리는 발걸음, 신뢰를 택한 발걸음.
나는 마이크 대신 안내문을 아크릴 거치대에 세웠다.
그리고 옷 안단을 펼쳐 보였다.
“겉은 같아 보여도, 옷의 수명은 안쪽에서 결정됩니다.
봉제 간격, 마감, 라벨 표기까지. 저희는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말숙 씨가 짧게 거들었다.
“색상 교환 가능하고, 세탁법도 설명드리겠습니다.”
심여사가 자기 딴에는 나를 거들어 준다고 손님처럼 능청스럽게 끼어들었다.
“이래 믿음 가는 사람이 어디 있노. 나는 그냥 사겠는데예?”
그녀의 서투른 억지 부산 사투리에 사람들이 웃었고, 장터의 긴장이 잠시 풀렸다.
부장의 그림자
소동이 잦아들 즈음, 예의 어젯밤 그 부장이 다가왔다.
“서류가 참 깔끔하더군요, 한 사장.”
그의 미소는 칼날처럼 얇았다.
“내일은 또 어떤 기준이 나올지 아십니까?
규정이 하도 자주 바뀌어서 말이죠.”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답했다.
“바뀌면 그 기준에 또 맞추겠습니다.
오늘은 오늘 기준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보시면 됩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뒷말을 남겼다.
“ 후속 편이 언제나 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구 씨 형님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건 오늘 패하면 내일 다시 칼을 갈겠다는 뜻이다.”
나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의 끝
해가 기울며 각 도바들의 상황을 점검했다.
몰수는 없었다. 지도 몇 건, 도장 몇 개.
남은 건 사람들의 안도의 한숨과 등에 말라붙은 끈끈한 땀뿐이었다.
말숙 씨가 종이컵 커피를 내밀었다.
“오늘… 잘하셨어요.”
칭찬 같았지만, 꼭 그런 말투는 아니었다.
잠깐, 그 말 사이로 마음 한 조각이 스쳐 지나갔다.
멀찍이서 심여사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한 사장,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저녁에 밥 사주기로 했죠?”
심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숙 씨가 라벨 상자를 들고 왕비다방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이유를 몰라도, 그 발소리가 내 귀에 오래 남았다.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빈 컵을 천천히 접었다.
길고 긴 하루가 그 문을 닫았다.
낮의 소문과 단속, 싸구려 확성기와 안단의 봉제선,
그리고 말없이 스쳐간 하나의 시선까지—
그 모든 것들이 국제시장 밤의 어둠 속으로 서서히 스며 들면서 사라져갔다.
총체적 난국
부산, 양산, 김해 일대 노점에는 카피 원피스가 일주일 내내 극성을 부렸다.
값은 싸고 겉모양은 그럴듯했으니, 손님들은 눈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사장님, 저쪽은 만 원인데 여긴 와 이리 비싸요?”
“싸게 사서 한 번 빨고 버릴랍니꺼? 우리 건 오래 입습니더.”
아무리 말해도 손님들이 귀는 가격이 저렴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못 갔다. 세탁 한 번에 물이 쭉 빠진 원피스에 분통을 터뜨린 손님들이 환불을 요구했고, 결국 그 장사꾼들은 어느 날 아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세무직원 두 명의 등장
수은주가 35도에 육박하는 한 낮의 무더위가 계속 되고 있었다. 수은주 온도계의 눈금이 올라가는만큼 ,원피스매출도 계속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날,
세명약국 앞 도바로
검정구두, 잘 다려진 양복 바지,흰색 칼라, 한 눈에 봐도공무원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둘 다 한쪽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여기가 한 사장 도바 맞습니까?”
“예, 그런데요.”
명함이 내 손에 건네졌다. ○○세무서 조사과.
첫 번째 직원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번 OEM 원피스 대량 주문 건, 회사 측에서 매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귀측도 매입·매출 신고를 해야 합니다. 협조 좀 해주시죠.”
나는 급히 담배를 비벼 끄며 대꾸했다.
“우린 노점상 아닙니까. 세금계산서도 없고, 부가세도 안 받고 물건 팔았는데 뭘 신고합니까. 이익이랄 것도 없습니다.”
두 번째 직원이 끼어들었다.
“그건 형식일 뿐입니다. 법적으로 매출이 발생했으니 신고 의무가 있습니다. 저희가 조금 봐드리면 세금을 깎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좋게 협조하여 처리하시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좋게라니요? 장부도 없는 노점상에 무슨 세금을 매깁니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직원은 단호했다.
“안 됩니다. 이번 건은 의류도매업협회로부터 과세포탈 혐의로 신고가 들어온 사안입니다. 이미 위에서 주시하고 있어요. 저희가 임의로 덮을 수 없습니다.”
나는 도바 위를 탁 치며 소리쳤다.
“우리가 카드 매출이 있습니까, 장부가 있습니까! 현금받고 바로 쓰는 건데 무슨 수로 신고를 합니까!”
그러나 직원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면제되는 건 아닙니다. 오늘 현장 매출 조사 들어갑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판매액 기록합니다. 하루 8시간 환산하고, 상품 원가를 차감한 뒤 평균 곱해서 여름 3개월 수익으로 산출합니다. 그에 맞춰 과세 고지서 발부합니다.”
옆에서 길커피를 홀짝이던 악어형님이 갑자기 컵을 던지며 벌떡 일어섰다.
“야, 니들 정신 있나!
우리 같은 장사꾼한테까지 세금을 물리겠다는 게, 이게 정상적인 나라가 하는 짓이가!
노점상들, 목줄 끊는 거 아이가!”
그러나 두 직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곧바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조사 시작합니다. 여기 제품들 모두 동일 가격 맞죠? 매출 단가가 얼마입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만 이천 원.”
그들은 손님이 옷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매출액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에구, 이제 우리도 다 걸리겠다.”
“세무서가 직접 나왔다 아이가. 이거 큰일 났다.”
그 한 시간은, 장사꾼에게 있어 처형장을 기다리는 것만큼 길고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소방차와 황색 대형 단속트럭
세무직원이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엔 소방서였다.
“소방차 진입에 방해됩니다. 천막 철거하세요. 불응 시 과태료 부과합니다.”
찰칵, 단속 고지 임무를 띤 직원들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골목 장터를 가로러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오후.
골목 끝에서 우르릉거리는 낮은 진동이 울려왔다.
사람들 발밑까지 흔드는 엔진음이었다.
“왔다… 황색 트럭이다.”
누군가 긴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장이 얼어붙었다.
이번에는 단속정보도, 단속예고도 없었다.
좁은 먹자골목 입구로 황색 대형 단속트럭이 서서히 밀고 들어왔다.
골목 너비만큼이나 커 보이는 큰 차체가 좌판과 리어카들을 위협하듯 밀어붙였다.
거대한 노란 차체 위에 “불법 노점 단속 차량”이라는 붉은 글씨가 햇빛에 번쩍였다.
운전석 창문 너머, 팔짱을 낀 단속반의 냉담한 시선이 시장골목을 훑고 있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놈이 오면… 오늘 장사는 끝이다.”
“에휴,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
천막 위로 드리운 노란 그림자가 시장 바닥을 덮었다.
수십 년을 시장바닥에서 버틴 노점상들조차 그 앞에서는 순식간에 기가 꺾였다.
그 그림자는 단순한 트럭의 그림자가 아니라, 노점상들의 삶 전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벽이였다.
그렇게, 아무도 듣지 못하는 노점상들의 피맺힌 절규와 보이지 않는 몸부림의 무정한 계절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