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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의 유산

밥 그릇을 넘어서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 23화>

by 손병호

불바다 ― 철거 당일


새벽부터 부산 국제시장 입구는 사람의 물결로 메워졌다.
경남 일원에서 몰려온 노점상들이 ‘노점 철거 반대,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손팻말을 들고 모여들었다.


함안, 밀양, 김해, 창원, 마산…
각지의 노점상인들이 자기 장터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렬을 이루었다.

“노점은 죄가 아니다!”


“밥그릇을 지켜라!”

마이크에서는 구호가 터져 나왔고, 장터의 고함과 함성이 한데 섞였다.
국제시장 중앙통로엔 이미 수백 명의 노점상과 영세 상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분노보다 결의가 짙었다.

도시가 시작되는 아침,
시청은 ‘불법 노점 강제 철거’ 집행을 예고했다.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골목 위로 퍼지면서

세명약국 앞 이차선 도로변에 경찰 버스 수십 대가 줄지어 섰다.


행정차량과 경찰 버스가 연이어 도착했고, 철거반 인원들은 헬멧을 고쳐 썼다.

양쪽 모두 조금이라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내렸다.
방패줄이 늘어서자 골목이 단단히 잠겼다.


“앞줄, 굳혀라!”
구 씨 형님의 외침이었다.


대팔이 맨 앞에서 팔뚝을 걷어붙였다.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겁먹지 마라! 내 팔뚝 옆에 붙어 있으면 아무도 못 뚫는다!”


방패줄이 한 칸 밀려왔다.
대팔은 팔을 옆으로 벌려 벽처럼 섰다.

“성호야! 뒤는 니한테 맡긴다! 내는 앞만 본다!”


확성기 소리가 이어졌다.
“정당한 행정집행입니다. 즉시 해산하십시오!”

대팔이 그대로 고함쳤다.


“해산? 여긴 우리 밥상 자리다!
밥상 뺏길 바에야 내 몸부터 치고 가라!”


방패가 부딪히며 철판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앞줄 상인 몇 명이 휘청했으나, 대팔이 팔을 뻗어 그들을 다시 세웠다.


“똑바로 서라! 지금 주저앉으면 다 무너진다!”


악어형님이 내 옆에서 대팔이에게 외쳤다.

“대팔, 먼저 손 쓰지 마라! 버티는 거다!”


대팔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형님. 내 팔은 시민 앞에서 먼저 휘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부러질 때까지 버틴다!”


나는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밥이 하늘이다! 밥그릇이 땅이다! 뺏기면 죽는다!”


수백 명의 노점상들이 스크럼을 짜고 내 목소리를 따라 외쳤다.


“밥이 하늘이다! 밥그릇이 땅이다! 뺏기면 죽는다!”우레 같은 함성이 골목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지붕 위 새떼가 하늘을 날아 올랐다, 철제 방패가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했다.


행렬의 선두에 나선 대팔의 팔뚝이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힘차게 치켜 올랐다. 그의 팔뚝은 이제 한 사람의 근육이 아니라,
수백 명의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방패와 팔뚝 사이의 거리, 단 두 걸음.
철거반의 발이 움직였다.


누군가 외쳤다.

“밀어붙여라!”

골목이 폭발하듯 요동쳤다.

천막이 평소보다 크게 휘청거렸다
그 바람 속에서 내 눈시울이 저릿해졌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내 뺨 위로 흘러내렸다.


생활터전을 잃고 길 위에 선 사람들.

그들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모래알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각자의 생존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있는 힘을 다해 빛을 발하는 —
도바 위에 뜬 작은 별들이었다.


그 별들 앞에,
이제 거대한 폭풍이 와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골목 안에서 밀고 밀리며 저물어갔다.


그날 하루는 이긴 쪽도 진 쪽도 없었다.

경찰은 여론을 살피며 ‘질서유지’라는 이름으로 뒤로 물러섰다.


노점상들의 결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시적으로 거센 단속을 멈춘 것이다.

그러나 시청을 대신한 구청의 움직임은 달랐다.


그들은 철거반 인원을 신속하게 대거, 보강해 다시 골목으로 밀려왔다.
시장 전체를 장악하려 했지만,
수적으로 압도적인 노점상들의 저항에 번번이 밀렸다.


밀고 밀리던 하루,
양쪽 모두가 지쳐 있었다.

폭풍의 심장


철거단속으로 장사를 제대로 못한 지가 어느덧 십여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철거반원들과 용역들은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언제나 방어하는 쪽이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지원 나왔던 타지의 노점상들도 하나둘 떠났고,
남은 우리 쪽은 이제 숫자에서도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새벽, 긴장의 공기


7월 16일 새벽 다섯 시.

국제시장 골목은 아직 햇살이 들지 않았지만, 이미 숨이 막힐 만큼 무거웠다. 세명약국 앞 도로에는 전경버스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방패를 든 경찰들이 평소처럼 버스 옆에 줄을 맞추어 섰다.


천막 밑에서 함께 밤을 지새운 상인들의 얼굴은 초췌했다. 누군가는 믹스커피를 타서 나눠주었고, 누군가는 굳은 빵을 씹어 넘기며 눈을 비볐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았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확성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담배를 피웠다.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눈앞에 형님의 얼굴이 겹쳐졌다.

(내가 이 길을 언제까지 가야 할까… 그래도 오늘만은 물러서선 안 된다.)


왕비다방 2층, 갈라진 목소리들


아침 일찍 모인 회의 자리. 구 씨 아저씨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내 앞에 놓인 컵이 덜컥거릴 만큼 힘이 실려 있었다.

“몸으로 막아야지, 말이 뭔 소용이고! 오늘 물러서면 끝이다!”


신 부장이 손을 번쩍 들며 맞받았다.

“구 씨, 그렇게 나가면 우리 다 폭도가 됩니다! 기자들이 카메라 다 들이대고 있잖습니까. 한 명이라도 먼저 손 쓰면 그대로 기사 납니다!”


구 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기자? 언론? 그놈들이 언제 우리 편든 적이 있노! 늘 시청이랑 재벌 편이지, 우리 같은 놈들 챙겨준 적 있나!”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었다.

“오늘은 목소리로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충돌이 아닙니다. 생존의 권리, 그거 하나입니다. 언론 앞에서는 분명하게 말합시다. ‘불법’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라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칼보다 언론이 셉니다.”


다방 한쪽에서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언론이란 게… 믿을 게 못 된다 아입니꺼.”


나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


그때, 구 씨가 창밖을 가리켰다.

“저거 봐라. 또 왔다.”


내가 창밖을 내다보니,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골목 입구에 멈춰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사내 둘이 차에서 내려 전경들 사이를 서성이더니, 다시 차에 올라탔다. 차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차창 밖으로 팔을 내밀고 왕비다방을 향하여 뭔가를 손에쥐고 보란 듯이 흔들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번쩍이는 금속은 바로 사시미 회칼이었다.


대팔이 이를 갈며 내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저놈들, 경찰이랑 한 패다. 오늘 내 팔뚝 부러질 때까지 막는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대팔아, 제발 니 팔뚝 좀 아껴라. 아직 때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이기려면, 목소리가 먼저 나가야 한다, 알겠제?”


그는 담배를 꺼내다 말고 다시 구겨 넣으며 이를 갈았다.

“좋다. 니가 내 친구라서 참는다. 하지만 또 건드리면… 내 앞줄 선다. 말리지 마라.”


중앙일보 칼럼 주인공이 되다


오전 아홉 시. 신 상무가 들고 온 조간신문을 테이블에 펼쳤다. 중앙지 정치면 한쪽을 차지한 큼지막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 중앙일보 정치칼럼

클로즈업 [주목, 이 사람]


노점상, 거리에서 ‘정치’를 말하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울려 퍼진 한 구호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화두가 되다.


“우리의 밥그릇을 건드리지 마라.”

이 짧고 직설적인 구호가 전국을 흔들고 있다.


칼럼은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자 출신 노점상, 언론과 법적 논리로 투쟁을 ‘합법적 시민운동’으로 끌어올린 사람. 그리고 늘 곁을 지켜주는 ‘악어형님’과의 조합.

마지막 부분에는 일본 오사카 방송국이 우리들의 생존권 투쟁 다큐멘터리 〈악어와 악어새〉를 제작 중이라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대팔이 신문을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야, 니 이제 전국구 아이가? 칼럼에 니 얼굴까지 나갔으면 시장이 잠도 못 잘 기다.”


구 씨는 신문을 찢어질 듯 노려보며 말했다.

“좋다마는… 기자들이 언제까지 우리 편이겠노. 언론이 우리를 팔아먹을 수도 있지.”


나는 신문을 조용히 접으며 말했다.

“편이고 뭐고, 오늘 이 목소리가 전국에 나간 게 중요합니다. 밥그릇 지키는 일, 이제는 부산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악어형님은 창가에 앉아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성호야, 오늘은 절대 말이 길면 안 된다. 짧고 굵게, 가슴에 박히게 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알겠습니다. 구호는 한 문장으로 하겠습니다.”


폭풍 전야


밖에서는 전경들이 방패줄을 맞춰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골목 끝에서 불어온 바람이 천막을 스산하게 흔들었다.

대팔은 팔뚝에 붕대를 감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겁 안 난다. 내 팔뚝 옆에만 있으면 아무도 못 뚫는다.”


나는 확성기의 배터리를 다시 확인했다.

“여러분, 곧 시작합니다. 누구도 먼저 손대지 마십시오. 목소리로, 질서로, 우리가 옳다는 걸 보여줍시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가슴속에는 비슷한 생각이 스쳤다.

오늘, 무언가가 무너지고 무언가가 태어날 것이다.


불꽃으로


7월 16일 오전 열 시.

아침 햇살이 그날도 여느 때처럼 국제시장 골목 위로 그 여린 빗살을 펼쳤다 그 여린 빗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 뜨거운 불화살이 되어 지친 우리들의 어깨와 머리 위로 쏟아졌다.
여름날 오전 열 시의 햇살은 한낮 못지않게 이글거리며 아스팔트에 내려 꽂혔다.

세명약국 앞 도로에는 다시 전경버스 수십 대가 줄을 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철벽처럼 도열했다.
방패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무전기의 잡음,
철거반원들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이며 골목은 금방 뜨겁게 달궈졌다.


우리는 천막과 도바를 방패 삼아 앞으로 내밀고 스크럼을 짰다.
튀김 기름 냄새, 땀, 여름 아스팔트의 열기가 한데 얽혀 있었다.

악어형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시장 입구 대신 안쪽 두 번째 블록에서 방어선을 구축했다.


골목입구 쪽은 차량이 드나드는 도로와 바로 연결돼 있어,
수적으로 밀리는 우리가 그곳을 지키기엔 손실이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다.


“입구는 버려라. 안쪽 골목에서 막는다. 골목은 좁을수록 우리 편이다.”
악어형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저들 또한 좁은 골목 안으로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그 틈이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잠시 뒤, 철거반의 확성기에서 금속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법 노점 철거를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됩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십시오!”


곧이어 삐리리리리릭 ㅡ 여러 개의 호각 소리가 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연달아 울렸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들이 사방에서 퍼졌다.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큰 발자국소리를 내며 일사불란하게 전진을 시작했다.


철거반원들도 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들의 발소리가 골목의 아스팔트를 두드리며 점점 가까워졌다.

천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금속 방패가 햇빛을 튕겼다.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누군가는 손으로 도바의 모서리를 더욱 꽉 붙잡았다.

“버텨라. 절대 먼저 손대지 마라.”
악어형님의 목소리가 짧고 단단하게 골목을 울렸다.


우리는 몸을 밀착시켜 어깨로 어깨를 잇고 서 있었다.
그리고, 골목의 첫 번째 충돌음이 들려왔다.
방패와 도바가 맞부딪히며 금속음이 터졌다.


일은 그때 벌어졌다.

튀김 장사를 하던 일흔 후반의 대팔이 큰 이모가 철거용역 둘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봐요, 이거 내 물건이라 카이! 손대지 마라!”
그녀는 양팔을 벌려 튀김 냄비를 가로막았다.


기름 냄비가 덜컥이며 흔들렸고, 지글지글 끓는 기름이 가장자리에 닿아 튀었다.


“지금 치우라 카잖습니까!”
“치우긴 뭘 치워, 내 자린데!”

용역 하나가 냄비 옆 박스를 발로 걷어찼다.

튀김통이 기울며 기름이 튀었다.


이모가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다른 용역이 쇠뭉치 같은 팔로 이모의 어깨를 밀쳤다.

대팔 이모는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철거용역의 멱살을 잡았다." 이놈들이 사람 치네. 너거는 아비. 어미도 없나. 좋은 말로 해도 될 건데, 남의 밥그릇을 왜차노" 하며 더 힘차게 매달렸다.


"와이라노 . 어이 할망구.이거 못 놓나 이 할망구가 미쳤나." 철거용역이 자기 몸에 붙은 대팔이모를 두 팔로 거세게 밀어버렸다.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몸이 힘없이 뒤로 휘청했고, 비닐 천막이 찢기듯 들렸다.
무게 중심을 잃은 가냘픈 노쇄한 몸이 힘없이 뒤로 젖혀졌다. 연이어 곧장 아스팔트 위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한 손에 들고 있던 튀김용 젓가락이 바닥을 구르며 덜그럭 소리를 냈다.

순간, 주변의 함성도 멎었다.
누군가 “이모님!” 하고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온몸이 굳어 서 있었다.

대팔이 이모를 밀친 자는 —
며칠 전, 나를 협박하며 칼을 겨누던 바로 그 놈이었다.


대팔도 단번에 알아봤다.

그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 이 개새끼야! 니가 뭔데 우리 이모를 건드려!”

대팔이 비호처럼 그놈에게 달려들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철거용역의 턱이 꺾였다.
놈이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 떨어졌다.
하지만 대팔은 멈추지 않았다.


쓰러진 몸 위로 올라탄 그는,
권투선수 출신답게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버둥거리는 상대의 팔을 발로 눌러 고정시키고,
몸을 낮추어 연속으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퍽! 퍽!’
둔탁한 소리가 골목 벽을 울렸다.
순식간에 용역의 얼굴이 옆으로 꺾였고,
좁은 도로 위가 코피로 물들었다.

기름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였다.


다른 철거반원들이 달려들자,
구 씨 형님이 뒤쪽에서 달려오며 외쳤다.
“이놈들아!”

달려오던 힘을 실은 그의 발길질이 정확히 한 놈의 옆구리를 힘차게 갈겼다. 또 한 명의 용역이 뒤로 나자빠졌다.


“여그가 니들이 휘젓고 다닐 데가 아니다!” 액세서리 털보가 소리쳤다. 이미 피를 본 사람들은 분노에 정신을 잃고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천막이 찢어지고, 상자와 튀김대야가 나뒹굴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맨손으로 도바를 붙잡았다.

삽시간에 현장은 완전히 뒤집혔다.


고함이 터지고, 금속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도바가 넘어지고, 플라스틱 상자가 깨졌다.


노점상들과 용역들의 욕설과 몸싸움, 발소리가 섞여 울리며
국제시장 골목 전체가 흔들렸다.
그날의 시장은 더 이상 장터가 아니라, 전장이었다.


그제야 지켜보던 형사와 전경들이 몰려들었다.
대팔과 구 씨 형님의 팔이 비틀리고, 수갑이 채워졌다.
그들은 그대로 전경버스에 실려갔다.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대팔아! 구 씨 형님! 손 대면 안 된다 했잖습니까!”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골목 위엔 방패가 번쩍였고,
철판과 피냄새가 뒤섞인 뜨거운 냄새만 남았다.


“언론의 프레임”

그날 오후, TV 뉴스 화면은 온통 그 장면으로 덮여 있었다.

수갑을 찬 대팔, 욕설을 내뱉는 구 씨 형님,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반복 재생됐다.

화면 아래에는 자막이 깔렸다.


〈부산 국제시장 불법 노점상, 폭력 사태로 번져〉

그 문장이 예리한 칼처럼 내 가슴을 베었다.

잠시 뒤, 시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신사복 정장을 단정히 여민 채,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보셨듯이, 공권력이 무력화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폭력집단에 불과합니다.
시민의 안전과 부산의 미래를 위해
도심 재개발 사업은 하루도 늦출 수 없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무개입 원칙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기자들의 셔터음이 연달아 터졌다.


찰칵, 찰칵— 그 소리가 내 귓속을 때렸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손에 쥔 담배를 떨어뜨렸다.
바닥에서 담배가 천천히 타들어갔지만, 밟을 힘조차 나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까맣게 타들어갔다.
노점상들의 삶, 그 땀과 눈물의 시간들이
순식간에 ‘폭력’이라는 한 단어로 덮여버렸다.


우리를 폭력집단으로 몰아붙이는구나.
비폭력으로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이,
단 한 번의 피 튄 화면으로 무너져 내렸다.


대각사 법당에서

7월 17일. 오전 10시.

그 다음 날.

아침부터 형님을 찾아 헤맸다. 시장이 말한 내용에 대해 반박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최저한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말해야 했다.

나는 기자회견에서 읽을 원고를 쓴 후 형님을 찾았다. 그러나 골목 어디에도 형님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누군가가 “대각사로 들어가는 것 봤다”는 말을 해주었다.


대각사.

“돌계단 위의 낙엽”

돌계단을 오르던 내 앞에 문득 낙엽 하나가 떨어졌다.


계절은 아직 여름, 나무들은 푸르른데
그 잎만은 물기 없이 시들어 있었다.


한 시기의 이른 종말을 알리듯,
철 이른 낙엽 하나가 그렇게 바람도 없이 돌층계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잎을 한참 바라보았다.

짧은 생을 다해, 제 자리를 찾아온 듯 고요했다.


대각사 대웅전 법당 안은 향내와 촛불로 가득했다.

곱게 퍼지는 향과 흔들리는 불빛이
세속의 온갖 소란을 삼켜버린 듯했다.


문 밖 골목의 쇳소리와 고함은 이곳까지 닿지 못했다.

이 안에는 오직 정적과 자비만이 머물렀다.


나는 조용히 합장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세상은 아직 뜨겁지만,
그 시든 한 잎은 이미 제 때를 알고 떨어졌구나.”

부처님 앞에 무릎 꿇은 형님의 등이 보였다.
굽은 어깨는 세월을 떠받친 산맥처럼 솟아 있었고,
그 위로 촛불빛이 일렁이며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불단 위 부처님은 더 이상 하나의 조각상이 아니었다.
자비로운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살아 있는 듯한 인상으로 나를 꿰뚫었다.


그 빛은 향 연기와 뒤섞여 하나의 장막을 이루더니,
형님의 등을 감싸며 천천히 흘러내렸다.
무겁고 외로운 산맥 같은 등이,
그 순간 세상을 품으려는 품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화가가 유화의 붓질을 겹겹이 덧대듯,
빛과 향이 형님의 어깨 위에 차곡히 내려앉았다.


그때 내 안의 분노와 절망이 서서히 갈라졌다.
그 틈으로 낯선 빛이 스며들었다.
연민. 그리고 사랑.
그것이 형님을 지탱해 온 힘이라는 걸,

그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나는 형님에게 다가가 원고를 내밀었다.
형님은 그것을 받아들여 잠시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의 눈빛은 깊고 맑았다.
분노도, 절망도 없었다.
오직 인간을 향한 자비와 연민이 있었다.


형님이 낮게 말했다.
“성호야… 내 밥그릇만 지키자면, 그게 사람이겠나.”

그 말은 향연기처럼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숨이 막혀왔다.
고개를 숙인 채, 원고를 움켜쥐고 법당을 돌아 나오려 했다.


그때 주지 스님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악어는 내 친아우일세.”
스님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는 이제 이승의 사람이 아니야. 불은에 귀의했네.


자네에게 모든 걸 부탁한다더군.”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향이 피어오르는 법당 한가운데,
스님의 합장한 손길과 형님의 등이 겹쳐 보였다.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내 손 안의 원고만이 묵직하게 현실의 무게로 남아 있었다.

기자회견

대각사 근처 임시 연단.

내 앞에는 여러 개의 마이크가 줄지어 있었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연달아 터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있는 곳으로 쏠렸다.

나는 구겨진 원고를 조심스레 펼쳤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당국의 논리는 힘 있는 자의 논리일 뿐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사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생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과 상식보다 먼저인 것은 바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노점상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핍박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이크 너머 군중을 바라보았다.


“지금 시청과 구청이 내세우는 ‘도시 미관’이라는 말,
시민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그 뒤에는 재벌과 야합한 도심 재개발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미관 정비’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삶터를 지우고, 투기의 논리를 덧씌우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의 폭력사태 역시,
우리 노점상들이 먼저 일으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날 현장에 있던 폭력조직이 의도적으로
칠십이 넘은 노인을 넘어뜨려 싸움을 유도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이런 사태를 조장한 부산시장과 구청에 있습니다.”


기자들의 펜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원고를 조금 접어들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 국제시장 골목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삶을 일군 역사이자 우리 부산시민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인근 상인들과 공존하며
부산의 생명력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바다를 빼면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이 도시에서,
국제시장의 노점은
수많은 이들을 불러 모아 온 부산의 상징입니다.


노점(店) 없는 국제시장은,
영혼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내 목소리는 처음엔 떨렸지만, 곧 힘이 붙었다.


군중 속에서 “옳소!” 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손팻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닦았다.


내 손에 쥔 원고는 땀에 젖어 구겨졌지만,
그 구겨진 종이 위의 글자들은
부산의 여름 햇살처럼 눈부셨다.

불꽃


내가 악어형님을 대신하여 기자회견문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내려가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하늘을 찢는 듯한 북소리가 공중에서 두둥— 두둥— 두어 번 울려 퍼졌다.

무대 앞, 나를 향해 쏟아지던 카메라의 플래시가 잠시 멈칫했다.

군중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기… 저쪽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내 등뒤를 찔렀다.

회견문 낭독을 멈추고 돌아서니

대각사 건물 5층, 창틀 위에

악어형님이 큰 북을 메고 북채를 움켜쥔 채 서 있었다.


그의 팔이 크게 움직일 때마다, 북소리는 허공을 울리며 군중의 가슴을 후벼 팠다.

뱃속 깊은 곳까지 울려오는 진동— 그 소리에 기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카메라 돌려! 빨리! 저기다!”

“셔터 개방해, 연속 촬영해!”

사진 기자들은 삼각대를 부딪치고, 어깨를 스치며 허둥지둥 렌즈를 들어 올렸다.

수십 개의 카메라 렌즈가 동시에 한 지점을 겨누는 순간,

형님의 몸 뒤로 커다란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르—!

붉고 푸른 혀처럼 치솟은 불길이 창문 밖으로 터져 나왔다.


형님은 북을 치던 자세 그대로, 불꽃 속에 우뚝 서 있었다.

작은 불씨가 기름을 머금은 듯 번져가며, 순간적으로 온몸을 삼켰다.


군중 속에서 비명이 터졌다.

“악어 형님이다!”

그 외침은 불길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찰칵! 찰칵! 찰칵!

플래시와 불꽃이 뒤엉켜, 순간마다 형님의 실루엣이 다른 표정으로 각인되었다.

북채를 높이 든 팔, 불길 속에 잠긴 그림자, 타오르는 인간의 형상—

기자들의 카메라는 쉼 없이 형님의 마지막을 포착했다.


한 순간, 시간이 정지된 느낌. 찰나가 영원한 느낌으로 불길 속 형님의 형상이 내 눈에 꽂혔다.

먼 거리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 불꽃에 삼켜진 존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빛처럼 다가왔다.


법당에서 내가 본 형님의 마지막 눈빛

분노도 절규도 아닌… 끝없는 연민.

그것은 실제로 본 눈빛이 아니라, 내 영혼에 새겨진 ‘비전’이었다.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끝이라는 감각이,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며칠 뒤, 신문 1면에 실린 사진 속에서 나는 다시 그 장면을 마주했다.

불꽃과 북, 실루엣만으로도 형님의 눈빛을 대신할 수 있었다.

사진 속 형상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 인간을 향한 연민, 그 불꽃의 유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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