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위의 낙엽 < 도바위에 뜬 별 1부 마지막회>
에필로그 ― 연꽃 위의 낙엽
국제시장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대팔과 구 씨 형님이 연행된 뒤,
남은 노점들은 흩어진 새떼처럼 사라졌다.
도바 위에 남은 것은 뒤집힌 파라솔, 부서진 행거들,
부서진 플라스틱 의자 몇 개, 바람 부는 대로 뒹구는 양은 냄비.
그리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찢어진 옷가지들,
사람들의 눈빛은 서로를 피했다.
누군가는 천막을 걷어 들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골목 끝으로 걸어갔다.
아침마다 시장을 깨우던 소란은
낯선 정적 속에 묻혀버렸다.
햇빛이 벽에 닿아도,
그늘진 골목에는 아무 반사도 없었다.
불과 며칠 전, 그토록 뜨거웠던 외침이
이제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멀게 느껴졌다.
며칠 후,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부산시장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재개발의 논리를 앞세우던 그의 언어는,
형님의 분신 장면과 대비되어 잔혹한 폭력의 얼굴로 드러났다.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성명이 이어졌고, 여론은 급속히 기울었다.
마침내 시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형님이 떠난 자리는 공허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인간의 존엄을 불꽃으로 증명한 한 사람의 희생이었다.
그 무렵, 원피스 장사에 얽힌 일도 마무리되었다.
말숙 씨와 배영숙, 신 상무 등은 애써 부은 투자금을 무사히 건졌다.
거친 파도 같은 날들이었지만, 적어도 생활을 이어갈 최소한의 버팀목은 잃지 않은 셈이었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대각사 뒤뜰 연못가에 홀로 서 있었다.
푸른 여름 숲이 둘러싼 고요 속에서, 한 장의 낙엽이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그날처럼 철 이른 낙엽 하나가 또 한 번 물결 위에 떠 있던 연꽃 위에 내려앉았다.
푸른 잎과 붉은 꽃 위에 고요히 자리한 낙엽은, 의미를 찾는 자들의 눈에는 삶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암시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먼 훗날, 그 길을 갈지 몰라도 아직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 있을 때였다.
나는 행동하기에 충분히 젊었다. 더구나 흔들리지 않는 형님의 인품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내 것으로 하고 싶어 밤바다 울음 울어왔었지 않은가?
나는 연못의 그 낙엽 한 잎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장사는 도바가 반이다 아이요?" 그가 내게 노점상 첫날 굳이 도바를 만들어 준 이유는 먼 훗날, 그에게 물으리라.
멀리서 염불소리와 도시의 소음이 뒤섞여 들려왔지만, 내 귀에는 닿지 않았다.
오직 불꽃 속 형님의 형상, 북소리에 실린 울림만이 내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었다.
그 불씨는 이제 나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