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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노점상 vs 재벌. 부산시· 여당지도부〉

불길-전국으로 번지다.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22화>

by 손병호

후배 방송기자에게 전화를 걸다


장마가 바로 코앞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에게 장마란 —
그저 ‘때거리가 끊기는 계절’이었다.
비축? 저축? 그런 건 텔레비전 속 이야기였다.


여름의 찜통더위, 겨울의 살얼음, 봄장마, 여름장마, 가을 태풍까지.
비 오고 바람 불면 장사는 끝이었다.
1년 중 절반은 그냥 쉰다고 봐야 했다.


그들에게 ‘내일’이란 단어는 사치스러운 말이었다.

지금 벌어놔야 장마를 버틴다.
하지만 단속이 계속되니, 도바마다 한숨뿐이었다.

며칠을 궁리했지만 답이 안 나왔다.


그날도 단속 때문에 도바를 펼치지도 못하고, 국제시장 안쪽 진미식당에서

갈비탕을 떠먹고 있었다. 다른데 비해 아주 저렴한 데다 갈비가 뭉텅이 채로 그릇 안에 들어있는 집이다.

노점상들과 주위상인들이 늘 이용하는 식당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TV 화면에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민우가 있었지, 맞네.’

사회부 기자 시절, 출입처에서 유독 같이 잘 어울리며 취재기사도 공유하던, 아끼던 후배였다.
이젠 부산에서 꽤 이름난 방송기자였다.


메인 뉴스시간에 부산 관련 뉴스만 나오면 꼭 등장하는 그 얼굴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곧장 방송국으로 전화를 돌렸다.


“야, 오랜만이다.
지금 당장 대각사 뒤 왕비다방으로 와라.
기사 하나, 놓치면 네, 평생 후회한다.”

수화기 너머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 선배, 아직도 톤이 예전 그대로네예. 바로 갑니다.”

나는 계산을 치르고 바삐 식당 문을 나섰다.
밖에선 또 단속 트럭 한 대가 골목을 막고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붙어 볼만했다.
노점상들의 싸움에 ‘카메라’가 끼어들 차례였다.


중계차 도착

며칠 뒤, 오전 열 시

시장 입구에 커다란 흰색 중계 밴이 들어섰다.

뒤편 도어가 ‘철컥’ 열리자, 검은 조끼 차림의 방송국 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삼각대 조심!”

“케이블은 이쪽으로 뽑아!”


방송기술직 세 명이 동시에 장비를 날랐다. 카메라 박스, 붉은 불빛이 깜박이는 오디오 믹서, 둥근 조명 반사판이 잇달아 펼쳐졌다. 두꺼운 전선이 바닥에 뱀처럼 뻗어가고, 발전기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메라맨은 ENG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앵커는 마이크를 붙잡고 목을 풀었다.

“테스트, 테스트. 국제시장, 현장 중계 준비됐습니다.”

스피커에서 울리는 앵커의 목소리가 시장 전체를 메아리쳤다.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와, 방송국이 진짜 왔다 아이가!”

“형님, 이거 이제 전국으로 나가는 거 아냐?”


어디선가 국밥 냄새가 섞여 흘러왔지만, 모두의 시선은 카메라 불빛에 고정돼 있었다. 기자는 종이에 메모를 하며 외쳤다.

“인터뷰 동선 맞춥니다. 인터뷰하시는 분은 조금만 앞으로 서 주세요.”


렌즈가 악어형님을 향하자, 장터는 숨을 죽였다.


카메라 앞의 악어형님


악어형님은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짓이겨 끄더니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충혈된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목에는 핏줄이 불끈 솟아있었다.


“우리가 누굽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장사꾼 아닙니까!

근데 계도도 없이 와서 짐 싸라 카면, 이거는 우리 목숨 줄 끊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이 장터에서 삼십 년 버틴 내 손, 이 손 잘라가겠다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목소리는 갈라져 터졌고, 노점시장골목이 숨을 죽였다. 카메라 렌즈 속 그의 얼굴은 분노 그 자체였다.


방영의 파장


그날 저녁, 왕비다방 TV 앞에는 노점상들이 빽빽이 모여 앉았다.

“부산 ○○시장 노점상들, 무리한 단속 반발… 도매업계와의 커넥션 의혹.”

앵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술렁였다.


“봐라, 결국 뒤에 뭐가 있지 않나.”

“도매랑 짠 거 아이가.”

눈시울을 훔치는 이도 있었고, 주먹을 부르르 떠는 이도 있었다.


악어형님은 말없이 담배를 깊게 빨았다.

불꽃이 붉게 타오르다 꺼졌다.

“이래야 좀 통하는 기라.” 그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무의 귀띔

신 상무가 다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평소엔 늘 유쾌하던 얼굴이었지만, 그날따라 핏기가 없었다.

그는 카운터 앞을 지나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악어형님 옆자리에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성호 씨… 방금 들은 소식인데요.
이번에 부산시장된 하기성, 원래 보궐이었잖아요?
그 양반 공약이 ‘일상 속 준법’이라네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우리 표정을 훑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힘없는 사람만 조이겠다는 거지요.
특히 우리 같은 노점상.”

사람들이 눈을 마주치며 웅성거렸다.


신 상무가 커피잔을 옆으로 밀어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시청 비서실 쪽에 내 조카가 하나 있거든요.
그 애 말로는— 형님 인터뷰 나간 뒤에 시장이 완전히 열받았다네요.
그래서 ‘불법 노점과의 전쟁’을 직접 선포했다 하네요.”


순간, 다방 안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만 들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뭐라고 예? 전쟁을 선포했다고요?”
“결국 우리만 조지겠다는 거 아이가!”

악어형님은 이를 악물고 담배를 깊게 빨았다.


연기가 허공에 길게 흘렀다.

“그래… 결국 판은 이렇게 돌아가는 거구나.”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안쪽 어금니로 씹어 삼킨 분노가 그대로 묻어났다.

여러 개 빠진 앞니로 때로는 무서운 악어처럼 보였던 그 ,

그날따라 어깨가 유난히 가라앉아 보였다.


얼어붙는 거리


악어형님의 인터뷰가 있고 난 후 며칠 뒤, 국제시장 골목 입구와 먹자골목,

광복동 포장마차거리에 거대한 현수막이 걸렸다.

“노점 금지 구역 — 적발 시 즉시 철거.”

누군가 흘린 피처럼 붉은 글씨가 바람에 펄럭이며 시장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아래, 천막을 치려던 상인들이 손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 진짜 칼 뽑은 거 아냐.”
“저거 뜯어내삐라. 보기만 해도 열받는다.”


말끝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구 씨 형님이 대걸레를 들고 나섰다.
대걸레 끝이 휘청거리며 현수막을 끊어내자, 천에 붙어있던 각목이 쾅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리가 무슨 죄인이가! 철거 같은 개 소리 하고 있네.
장사 못하게 만드는 건 저 인간들이지!
이 현수막 때문에 손님들이 더 안 온다 아이가!”


주변 상인들이 흥분하여 웅성거렸고, 곧이어 구청 공무원 몇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 뒤로는 경찰들까지 합세했다.

“현수막 훼손,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입니다.”

구 씨 형님의 팔이 뒤로 꺾였다.
그는 나오던 욕을 채 퍼붓지도 못한 채 그대로 창선 파출소 쪽으로 끌려갔다.

끌려가는 그의 구두 뒷굽에서 시멘트바닥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상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에구, 이제는 진짜 끝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네. 와, 이렇게까지 세게 몰아붙이나…”

그날 저녁, 다방 안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커피잔 속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입술만 조금씩 달싹거릴 뿐이었다.

그들 중 조금 친한 사람들끼리만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장사 접을까, 잠시 쉬까.”
“아이다. 창고에 물건이 산더미인데 지금 안 팔면 언제 팔겠노 곧 장마 닥친다.”
“시청이 상대면 우리 힘으론 안 되지예. 지난번처럼 한 사장이 나서야지.”

그 순간, 다방 안의 시선이 한꺼번에 내게로 몰렸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구 씨 형님이 담배를 붙이며 비죽 웃었다.
불빛이 잠깐 그의 얼굴을 스쳤다.


“지난번에 방송국 부른 걸로 됐다 아이가.
툭하면 한 사장 타령은 이제 그만 좀 하세요.”


김사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도 구사장, 오늘 현수막 건으로 즉결 넘길 뻔한 거
한 사장이 바로 끌어냈다 아이가!”


구 씨 형님은 그 말을 듣고 답답하다는 듯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그거 하고 이거하고 같나. 철거만 안 하면 즉결 같은 건 내가 하루에 열두 번이라도 간다.
그건 버티면 되지만, 지금은 시청이 직접 나선 거 아이가.”

구 씨 형님이 말을 마치고 한심하다는 듯 김사장을 쳐다보았다.


다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숟가락이 컵에 부딪혀 ‘짤깍’ 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였다.

창문 밖, 바다 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골목에 길게 드리워진 현수막이 크게 흔들렸다.


‘노점 금지 구역’— 그 붉은 글씨 그림자가 왕비다방 유리창을 덮으며 펄럭거렸다.
마치 시장 전체를 위협이라도 하듯, 그림자가 사람들의 얼굴 위에서 펄럭이며 불길하게 춤추고 있었다.

악어형님이 담배를 문 채 결심을 굳힌 듯이 말했다.


“그냥 죽을 수가 있나? 이번엔 도매가 아니고… 시청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 숨을 죽였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잔 받침 위에 형광등 불빛에 노출된
각자의 얼굴이 반사되어 비쳤다.
거기에는 두려움, 분노, 체념, 그리고 아주 희미한 결심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불길 ― 그림자 드리우는 밤


밤 9시 10분, 국제시장 골목 입구.

긴장된 분위기에서 머리도 식힐 겸 담배 사러 나왔는데 다방에서부터 누군가 뒤따르는 느낌이 들었다.

건장한 남자 둘이었다. 모자를 눌러쓴 얼굴, 검은 바람막이 차림. 그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무언가 번쩍이는 걸 꺼내어 자신의 목에 대었다 빠르게 다시 집어넣었다. 나이프였다.


“사장님, 애들 학교 잘 다니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고 안 나려면 철거 날 조용히 계시이소. 몸 성하게 지내려면 말입니다.”


칼끝 같은 말을 내게 남기고, 그들 둘은 골목 옆에 세워둔 차를 타고 바로 떠나버렸다.


그때 이모네 튀김포차에서 야식거리를 사 오던 대팔이가 달려왔다.

“야, 성호야! 저 씨이발 놈들 뭐꼬! 내 똑똑히 봤다. 니 인테 칼 비쳤다 아이가!”

“대팔아, 목소리 죽여라. 다 들린다.”

“죽여? 우리 목줄 죄어놓고 목소리를 죽여? 야, 옆에 있었으면 내 그냥 확 들이박을 뻔했다 아이가!”


나는 침착하게 그를 진정시켰다.

“네가 들이박으면, 바로 우리만 불법된다. 증거 모아서 기사로 박자. 그게 칼보다 세다.”


대팔이 담배를 꺼내다 다시 구겨 넣으며 이를 갈았다.

“좋다. 니가 내 친구라서 참는다. 하지만 또 건드리면… 내가 제일 먼저 나갈끼다. 목숨 줄 끊기는 마당에 못할 짓이 머가 있겠노 응? 말리지 마라.”


나는 그의 충혈된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그래. 그땐 나도 반드시 니 옆에 선다.”


승용차의 붉은 테일램프가 어둠 속에서 점처럼 멀어졌다. 골목에 남은 건 자동차 배기통에서 뿜어져 나온 휘발유 냄새와, 대팔이가 씹어 삼킨 분노였다.


갈등을 넘어 앞으로 ― 왕비다방 회의


밤 11시. 왕비다방 2층.


낡은 선풍기가 덜컥거리며 여기저기서 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장마를 앞둔 여름날의 무더위를 물리치기에 한참 역부족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다방은 이미 영업이 끝났었다.

각자 앉은 테이블 위에는 커피믹스 두 개씩을 털어 넣은 컵이 놓여 있었고,

무리 중에 반 팔 티셔츠, 대팔의 굵은 팔뚝이 눈에 띄게 번들거렸다.


구 씨 형님이 좌중을 둘러보며 탁자에 주먹을 내리쳤다.

“몸으로 막아야 한다!”

신 상무가 그 말을 곧, 제지하고 나섰다.

“그럼 시민 여론 잃는다! 경찰이 카메라 다 찍고 있는데, 우리가 폭도로 몰리게 된다니까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이 판에 여론이 뭐가 중헌가!”


악세서리 장수 털보의 엉덩이아래에서 의자다리가 힘이 없는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지꾸 났다. 그 소리는 마치 힘없는 짐승의 신음소리처럼 들려 모여있는 우리의 처지를 각인시키는것 같았다.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야. 좀 바로 앉아라.귀에 거슬린다아이가.젠장 .사람잡는소리가 따로없네.이렇게 죽은 문디 처럼 언제까지 있을끼고 죽을때 죽더라도 꽥소리나 한번질러보든가.구씨야 네가 뭐라도 한마디 말해봐라.갑갑해 미치겠다"


그때 대팔이 벌떡 일어섰다.

“야, 성호야! 조금 전 그 칼, 니도 봤제? 내 참았다. 근데 또 건드리면 못 참는다. 이 팔뚝, 물건 나르라고 달고 다니는 거 아니다. 우리 도바, 우리 국제시장 식구들 건드리면 내 몸부터 먼저 나간다!”



구 씨 형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옳소! 끝까지 싸우다 죽자!”
모두가 구 씨 형님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온 좌중이 술렁이었다.

조폭의 협박과 개입들이 대팔을 통해 확인되자, 불이 붙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구 씨 형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동조했다.
어제부터 흩어져 있던 말들이 밤이 깊어지며 하나로 모였다.
결국 여기 모인 이들의 결론은 같았다 — 물러설 수 없다.


신 상무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무거운 숨을 한 번 내쉬고선 결단을 내렸다.
신중하던 태도를 거둔 것이다.
“좋소, 모두의 뜻대로 합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목소리엔 한 줄기 경계가 남아 있었다.
“대팔아! 니 주먹 먼저 나가면 우리 다 끝이다!”
그 말에 대팔은 눈을 반달처럼 뜨고는 웃음을 꾹 눌렀다.


“알았다! 형님아. 신호가 있기 전엔 손 안 나간다.
근데 신호만 떨어지면, 내가 제일 앞에 나서서 몸으로 막을 게.”

그의 약속에 모두가 눈을 맞췄다.

회의장은 금방이라도 전쟁터로 나갈 듯, 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분노가 결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때, 악어형님이 천천히 일어섰다.


눈빛이 번뜩였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구 씨, 니는 옆줄 맡아라.

신 상무, 니는 뒷줄.
성호, 니는 내 옆에 서서 확성기 들고 사람들 통제하면서 길 뚫어라.


그리고… 대팔이.”

악어형님이 잠시 말을 멈추며 대팔을 바라봤다.
“니는 앞줄이다.
그리고 나는—맨 앞에 선다.”

그 말에 방 안이 다시 술렁였다.


누군가는 숨을 들이켰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의 굳은 목소리가 벽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 순간,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엔 한 가지 표정만 남았다—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결심.


다방 밖, 현수막은 여전히 바람에 펄럭였다.
그 붉은 글자가 더 이상 위협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밤, 그것을 가로막을 준비가 된 사람들의 결기가 비쳐 보였기 때문이다.




불꽃 ― 경남으로 번지다


아침, 신문 가판대.

부산신보 일간지 1면 하단에 큼지막한 5단 통광고가 실렸다.


〈부산 노점상을 살립시다 — 영남 도매상 일동 호소〉

“노점 소매상이 죽으면 도매상도 죽는다. 영남 노점상과 도매상 전원, 7월 15일 토. 10시 국제시장으로 집결하라.”


광고아래에는 부산 영세 노점상 돕기 모금 계좌번호가 있었다. 주동자는 진주 중앙시장 양 사장이었다.

계좌번호 아래엔 경남지역 72개의 노점상, 도매상 상호가 후원금과 함께 인쇄되어 있었다.


골목 사람들은 신문을 들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제 우리 혼자가 아니다.”

“영남이 다 온다카이.”

"전라도 순천에서도 우찌 알았는지 버스 대절해 온다고 여기서 장사하다가 그리로 간 또식이 아재가 조금 전에 연락이 왔더라"


저녁 9시, 뉴스 화면.


사회부 앵커가 정면을 응시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시작된 노점상 단속 문제가 갈수록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애초엔 단순한 불법 노점 정비로 여겨졌지만, 재개발 과정에서 조직폭력배 개입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노점상 대표 정원봉 씨의 눈물 섞인 인터뷰가 전국으로 송출된 뒤, 영남 도매상들의 호소문까지 발표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현재 구도는 ‘생존권을 호소하는 영세 노점상’과 ‘도시 이미지를 앞세운 행정 당국’, 그리고 ‘재개발을 추진하는 대기업 세력’이 맞서는 양상입니다. 정치권 역시 개입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번 사태는 부산을 넘어 전국적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화면은 국제시장 골목 항공샷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천막이 이어진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하단 자막은 단호했다.

〈힘없는 노점상 vs 재벌.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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