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술이부작

오메가 텔레비 시계와 기술자들의 층위

by 술이부작

예지동의 시계골목, 이 바닥에 기술자들은 몇십 년을 시계 고치는 단순한 일로 밥 걱정 없이 먹고, 집 사고 애들 결혼시켰다. 이제 그 좋았던 그 시절은~~ 아듀이다~~~


나의 오메가 시계는 오랫동안 내 서랍 속에 있었다. 주인이 아버지였을 때 매일 작동했는데 아들에게 전해진 후로, 언제부터 멈추었는지? 기억은 없다. 이따금씩 유리 안쪽에 결로가 생겨 그걸 없애겠다고 유리면에 열을 가하기도 했는데 물방울은 잠시 없어졌다가 다시 생겼다. 책상 서랍 속에 오래 있었고 고장상태를 잘 유지했다.

나는 세운상가의 사람 사는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탱크 빼고는 못 만드는 게 없다는 기술과 그 기술에 뿌듯해했다. 특별하게 볼 일이 없어도 한 번씩 들렀다. 총각 때 월급날에 LP를 사려고 종로 5가 음반가게를 들렀고, 하릴없이 예지동 복잡한 미로를 소요했다. 그 많은 가게가 먹고사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귀가할 때는 왠지 모를 포만감에 몸은 가난해도 마음은 부자인 이곳과 이들의 기술이 부럽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많이 흘러 나는 23년 6월 어느 날, 아내와 같이 거기를 배회하고, 종묘를 관람하고, 우래옥에서 냉면을 먹고,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찹쌀도넛을 먹으려 했다. 혹시 시계점포를 들르게 되면 고장 난 오메가 시계를 보여 주려했다..

오랜만에 찾는 세운상가, 초여름에 이른 더위 탓에 도시는 나른하게 이완되어 있었고 예전의 북적임이 없었다. 폐허와 곤궁함만 있다 할까? 미로에 도열한 시계점과 오디오점 가게가 사라졌었다. 재개발 공사 가림막은 탈색되었고, 찣겨져서 그 사이로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무상한 마음을 갖게 했다.


이제는 예전의 미로를 잊지 않으려는 식별하는 노력이 필요 없어졌다. 노포 가게의 노인에게 오메가 시계를 내어놓고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품하던 노인은 청산유수로 이 시계를 설명했다. 70년대 예물시계의 베스트셀러였으며 일명 텔레비시계로 고칠 수는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부속이나 쓰려니 5만 원에 자신에게 팔라고. 시계줄이나 이용하겠다고. 그러더니 8만 원 주겠다고 3만 원을 올린다. 아버지한테 받은 거라서 팔기는 싫다 했고, 지금 쓰지도 않는데 고치자니 별도 비용이 들고, 알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자꾸 등 뒤에 대고 팔라고 한다. 기술자 1과는 거래는 없이 시계의 히스토리를 들은 소득이 있었다.

종묘로 가는데 길가에 명장 간판의 가게가 있기에 뜬금없이 시계의 시세나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리로 들어갔다. 협소한 내부가 여러 가지 시계로 요란하게 치장되어 있다. 초로의 신사가 정중하게 나와 아내를 맞이했다. 시계를 열어보고, 모니터로 확대한 영상을 설명하면서 어려운 용어로 관리부실을 설명한다. 내부가 썩어 시커멓게 될 때까지 놔두었느냐고? 이런 시계는 고칠 수는 있는데... 내가 고치려면 수리비용이 많이 드니까, 고치려면 자기가 아는 조선족에게 부탁해 볼 수 있다나. 이 시계는 예전과 달리 인기가 없어 중국 놈들이 간혹 찾는데 내가 아는 조선족 중에 기술자, 그놈이 혹시 살지는 몰라... 물어볼까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한다. "난데. 로렉스 테레비 고장 난 거 있는데 어때? 네가 고칠래? 얼마? 20만 원? 알았어..." “ 20만 원에 팔아요" 나는 기술자 2에게 5만 원권 신사임당 4장을 받고 시계를 그에게 넘겼다. 그리고 주민번호를 알아야 출국 때 장물이 아닌 게 확인되니까 주민번호를 알려주아야 한다나...

가게를 나왔는데... 주민번호 알려준 게, 영 찝찝했다.


큰길을 건너 종묘에 입장했는데 하필 공사 중이었다. 정전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조선족, 주민번호... 이게 계속 찝찝했다.

그래 시계를 돌려받자...

가게로 들어서서 시계를 안 팔겠다고 했다. 웬걸 조선족 기술자에게 전달되려 한 시계는 그 사이에 그가 열심히 분해하고 수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당황했고, 자신이 거짓말한 게 들통나자 오히려 역정을 내면서 내부가 엉망이라서 못 고치니 당장 가져가라고 호통을 치네. 야코가 죽은 나는 시계를 엉망으로 재조립할까 봐 조립이 끝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아, 이런 기술자구나, 조선족과 했던 스피커폰 통화도 의심이 갔다.

다시 찾은 시계한테 왠지 미안했다. 집에 와서 그 시계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한 때를 풍미했던 오메가 시게이트로 텔레비시계로 명명되어 중고 시세가 75만 원에서 160만 원까지였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예지동 시계골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시계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에 방송되는 수리점에 들렀다. 혼수상가에 수리점에 많았다.


덩치 좋은 기술자 3은 내부가 엉망이고 30만 원 정도 드는데 그래도 여러 부품 중에 한 부품이 없어 고칠 자신이 없고, 그래도 고치려면 두고 가란다. 퉁명스러운 설레발이 장사 수완임을 알아챘다. 진짜 못 고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가???

다른 수리점에 갔다. 젊은 기술자 4는 내부를 보고도 짜증을 내지 않으니 내심 다행이었다. 수리비는 20만 원이고,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깎아달라고 하니 18만 원 달라고 한다. 달라도 이렇게까지 다른가?


그곳에서 수리를 맡기고 일주일 뒤에 찾았다. 그곳은 웬만한 봉급쟁이보다 낫다고 하여 아들에게 수리를 권유했고 아들이 대를 이어서 시계수리의 길에 들어선 곳이다. 그 후에도 친절했다. 수리하고 나서 에이징 시간 필요하단다.


대구의 박준덕 장인은 가품은 수리하지 않는다고, 가품을 수리하면 자신이 모조품이 된다고.
수리 중에는 자신이 시계 속으로 들어간다. 정밀세계에 그러한 몰입으로 일본, 스위스에서도 수리 의뢰가 들어온다. 없는 부품을 자신이 만드니 못 고치는 게 없다.
독립운동했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회중시계를 수리했는데 1년 소요되었다고 한다. 시간 잘 맞는 건 만 원짜리 전자시계다. 기계식 시계는 예술품이다. 오차를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비싼 시계일수록 수리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말도 들었다.

기술자들은 죽은 시계를 살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50년 경력자는 시계가 아닌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자들은 눈이 좋아야 하므로 3개월에 한 번씩 안과 검진하는 자세를 가진다고...
빈티지 시계는 빈티지스럽게 차야지 때 빼고 광내어서 새 시계처럼 하지 마라고 한다.

단순한 일을 평생 했던 사람이 가지는 깊이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묻어 있다.


잠깐 만났던 기술자들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 기술자를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의뢰인을 정성적으로 분석하여 맡은 일을 잘하려는 클라이언트 펀치리스트가 있듯이 내가 기술자라면 나는 어떻게 하려 했을까?


기술자 1: 기술자인지 모르겠지만 이 바닥에서 살아온 세월을 증거 하는 잡학다식류. 은퇴할 나이가 한 참 지났다. 수리비 50~60만 원

기술자 2: 명장의 칭호에 어울리는 패션과 실내장식, 기술의 깊이는 모르겠고 장사에 수완이 좋은 듯하고 인터넷에서도 열심이다. 고급한 일을 하고 저급한 일은 안 한다는 말과 다르다. 한 성질 한다. 수리비 50만 원

기술자 3: 동네 아저씨같이 푸근하지만 수리업계에서는 실력자로 느껴진다. 일이 많이 밀려 있는 듯. 수리비는 30만 원 이상, 고친 후에는 30만 원 이상을 요구할 듯...

기술자 4: 아직 젊고, 배우는 단계로 순수한 맛이 느껴진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기술자 3, 기술자 2의 층위로 진입할까? 수리비 18만 원에도 감지덕지? 아니면 젊으니 고객 관리 차원의 서비스인가?

나는 기술자 5가 되어 시계수리 기술자로 밥을 먹는다면...


곤조가 기본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격이나 태도가 문제 있더라도 시계만 잘 고치면 되지 않겠는가?

싸고 좋은 건 없지만, 비싸고 나쁜 건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수리비는 시간당 인건비로 게시하겠다. A/S기준도 당연히 고지할 것이다.

이 세계가 신비한 것도 아닐 테고, 맨날 천날 눈에 보이는 부품과 기계를 만지다 보면 웬만큼 일정 정도의 기술을 가지게 될 것 아닌가? 하다 보면 고치는 기술이 대단치는 않을 것이며, 타성에 젖을 때,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다른 생각과 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술로 밥을 먹었을까?


중학생 때 고장 난 해바라기 시계를 고치겠다고 분해한 적이 있었고, 대학생 때에는 세이코 시계를 분해하여 장렬하게 폭사시킨 경험이 있었다. 그때 아쉬웠고, 자책하던 감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즉흥적으로 분해했었고, 루뻬나 수리 도구가 없으며, 시계에 대해 지식과 경험이 없고, 무엇보다 어떡하든 고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때 호기심과 끈기가 더 있었다면... 그리고 시계를 고치고, 그 환희심에 내 인생을 걸었더라면...

지금쯤 지하상가에서 명품시계 수리전문 간판을 걸고 한 생을 작은 톱니바퀴를 매 만지고 있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주 작은 망치로 톡톡톡~ 조심조심, 손과 눈의 감각을 정교하게 작은 부품에 전달하면서, 정밀 기계의 수리라는 단순함과 깊이에 도저하게 몰입했던 삶, 하지만 한 길밖에 알아서 다른 길을 몰라서 지내온 좁았던 삶의 회한과 쇠락하는 예지동도 비껴갈 수 없는 도도한 시대 흐름을 기술자 5는 몽상한다.

못 고치는 시계는 없다. 부품이 없으면 그 부품을 만들면 되니까 수리비를 비싸게 받을 핑계나 감언이설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조립을 넘어선 진정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수리도 좋았지만 없는 부품을 만드는 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는 듯했다.


기술자 1은 수리는 하지 않고 바테리나 기계줄을 교환해 주면서 사라지는 예지동에 곤고했던 자신의 삶을 기대고 있으며, 간혹 나 같은 손님을 만나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도 할 것이다.

기술자 2는 안 바쁜 것 같았다. 기술자 3, 4는 좁은 작업대에서 시계에 코를 박고 수행하는 말없는 수도자 같았다. 말을 붙이기 어려운 포스가 있다.


시계 수리는 아직까지 수요가 많다. 이 세계도 요지경일 것이다. 의뢰받은 시계 부품을 모조품으로 슬쩍하기도 할 테고, 수리비를 왕창 덤터기 씌우기도 할 테고...

기술자들이 이런 세태에서 각자의 직업관, 세계관으로 사람들과 시계와 세상을 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계가 어찌하여 내게 왔는지? 검소했던 아버님이 어떤 연유로 이 시계를 가지셨을까?
고장 난 시계가 고쳐졌지만 불편하다. 왼손을 주기적으로 흔들어주거나 태엽을 돌려주거나 해야, 즉 밥을 먹어야 간다. 오버홀은 4년 주기로 해 주면 좋다고 하니 그때쯤 불편함도 같이 해소되었으면 한다.

디지털 제품과 달리 기계식의 항구성은 인정된다. 스마트워치와 비싼 고급시계사이에서 나는 불편한 기계식 시계의 빈티지 감성에 더 끌린다. 빈티지는 ‘연관된 미학(related aesthetics)’으로 스토리와 추억,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나만의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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