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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림 May 30. 2022

편애로부터 벗어나기: 변화의 시작


엄마가 나와의 인연 끊음을 선언한 지 3개월가량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엄마는 몇 번의 연락을 시도하였고 올케를 시켜서 전화를 하게 하였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반복하여 말할 뿐이었다. 예전부터 엄마는 먼저 잘못하였어도 내게 연민과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승자인 듯 의기양양해져서 내가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강조하고 나를 나무랐었다. 그 관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나 나는 엄마가 가엾게 느껴져 먼저 사과하곤 했다. 엄마의 입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엄마의 감정을 돌봐온 것이다. 이번에도 엄마는 그 행태를 또다시 답습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변한 것이 없었다.


친정엄마는 무슨 일에서든 동생을 우선시하였다. 내가 불쌍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단호히 말하던 엄마는 동생에게 늘 측은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 편애 안에는 나를 향한 인색함이 깃들어 있었다. 엄마는 동생이 나보다 더 낫기를 바라며 혹여라도 내게 지원해주면 동생에게 충분한 지지를 못해줄까 봐 걱정하였다. 내게 준 하나를 어떻게든 부풀려 과장해서 100개를 준 동생과 똑같이 해주었다고 우기고 정당화하곤 했다. 이러한 엄마의 편애는 여러 형태로 변형돼 내 인생을 가로막았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의지를 꺾어버리던 엄마의 부정적인 언사와 행동이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내게 다가온 기회들에도 나쁜 영향을 미쳐왔다. 그 속에서 내 마음은 점차 고인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원가족 안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의 인연 끊음을 계기로 점차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편애 없이 키울 수 있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상처를 물려주지 않고 행복한 마음을 갖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날도 많아졌다. 아이들에게 고른 사랑을 주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좋은 관계로 자라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 고민하였다. 관련된 책도 읽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중 지인인 K여사님과 친한 언니 P는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K여사님은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으나 주말마다 여든 살이 넘으신 친정 엄마를 찾아뵌다고 하였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친정의 집안일을 도왔다. 그리고 병원을 모시고 간다던가 음식을 만든다든가 또는 어떤 일을 해결해야 할 때 다른 자식들보다 먼저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K여사님의 어머니는 오로지 아들들 내외만을 걱정하고 모든 재산을 큰 아들과 막내아들에게 주고 싶다고 항상 말씀하신다고 하였다. 아무리 딸인 자신이 발 벗고 집안일을 해결하지만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들도 멀리 살아서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어머니를 돌보겠냐고 한숨 쉬다가 대뜸 절대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도 후회스러운 일이 많다고, 딸이고 싶어 딸로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냐고, 지금 세대는 우리랑은 다르니 절대 편애하지 말고 자식들에게 골고루 사랑 나눠주면서 예쁘다 예쁘다 그렇게만 키우라고 당부하였다.


P는 50대 초반으로 친정과 단절하고 산다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은 자신의 몫이었고 항상 네가 참고 살아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이라고 P를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다.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한 덕에 돈을 벌었지만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처럼 결혼 전에 모은 돈은 친정으로 흘러들어 갔다. 밑 빠진 독 같았고, 그것은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어느 날 친정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남동생 아이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것을 계기로 참았던 울분을 터트렸고 이제는 소식만 건네며 대면대면 지낸다. 그 이후 심리상담도 받고 강연도 듣고 책도 읽으며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더 일찍 이 불합리한 관계를 끊어냈다면 자신의 아이들을 상처 주지 않고 키웠을 텐데 그렇지 않아 후회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늘 미운 오리 새끼 같았어. 그런데 우리 애들은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내 얘들까지 차별당하는 거 참을 수가 없었어. 친정을 끊어내는 것은 친정과 이어지는 수많은 관계를 같이 끊어내야만 하는 일이야. 그저 순식간에 형제들과 친척들에게마저 부모를 모른 체하는 죽일 죄인이 되어버려. 그 사람들은 내 상처와 사정은 알려고 하지도 않아. 그냥 나만 못된 사람으로 만들지. 그렇지만 남들이 수군거리는 일 따위 대수롭지도 않을 만큼 지금은 마음이 한결 편해. 다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 선택을 했을 거야. 더 늦기 전에 변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어. " P의 말을 듣고 많은 감정이 교차하였다.





"자네도 애들을 키워보면 알겠지만 다 달라.

유독 정이 가는 녀석도 있고.

그런데 중요한 건 절대 티를 내선 안된다는 거야."

바로 이것이 성공적인 부모가 가족을 이끌어온 방식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p.136



칼 필레머(Karl Pillemer) 교수에 따르면 대다수의 부모에게는 특별히 더 편애하는 자식이 있지만, 그들 중에 편애를 드러내지 않고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양육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자신이 실제 편애의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부모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자신이었다고 회상한다. 부모는 편애하는 자식이 따로 있었음에도 그것을 끝까지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었던 것이다. 그리고 평등하게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더욱 행복했으며 형제자매간의 우애 또한 돈독했다. 비록 부모에게 편애하는 자식이 있더라도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고른 사랑을 베푼다면 어느 아이도 마음의 상처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K여사님과 지인인 P와 이야기를 나누고 필레머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황희는 길을 걷다가 소 두 마리로 쟁기질하는 노인을 잠시 보았다. “어르신! 두 마리 소중에 어떤 놈이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황희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누렁 소는 말도 잘 듣고 일을 잘하는데 검정 소는 힘은 세나 꾀가 많아 다루기가 힘듭니다.” 황희는 어이가 없어서 “어르신, 그게 무슨 비밀이나 된다고 조용히 귀에 대고 말씀하십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저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다 압니다. 내가 거기서 이야기했다면 좋다고 한 놈은 괜찮겠지만 싫다고 한 놈은 얼마나 서운해하겠습니까!" 이 이야기처럼 아무리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편애와 차별을 알아차릴 수 있으니 그것을 염려하여 행동한 농부의 배려심이 상처 주지 않는 관계를 위한 핵심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라도 더 사랑하고 조금 덜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 속의 노인처럼 편애를 받아들이라 강요하지 않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며 모두를 넉넉한 마음으로 보듬어 준다면 편애의 대물림과 마음의 상처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편애 안에 숨 쉬는 인색함을 깨닫고 모든 아이들에게 사랑을 고르게 넉넉히 베풀려는 노력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편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이 편애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치열한 날들은 결국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멋진 여정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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