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축복받은 환경이었다. 친정이 가까운 삶은.
신혼 시절, '살림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애가 결혼해서 밥은 잘 해먹고 사는지' 걱정된 엄마는 신혼집에 종종 찾아오셨다. 그때마다 나는 내 고유의 살림에 간섭받거나 방해받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저런 엄마의 잔소리에 기분 나빠했다. 역시나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나를 보며, 엄마는 가끔 '잠깐만 집에 들러 반찬을 놓고 가겠다' 했다. 하지만 콧대 높은 딸은 절대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다. 가까운 친정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엄마의 진심을 몰라보고 손길을 거부했던 완고한 새댁은, 1년도 못 가서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린다고 한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친정이 있다. 비교적 가까우니, 워킹 그램마인 엄마는 평일에 2~3일을 우리 집으로 퇴근하신다. 직장일이 끝난 후 피곤하실 텐데도, 그리고 이쪽으로 오시려면 평소와는 다른 버스를 타고 왔다가 집까지 걸어가셔야 하는데도, 귀찮은 그 일을 참 기쁘게 하신다.
똑똑똑 엄마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오셨음을 알리고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 옛날 엄마의 방문에 불만을 품던 가자미눈의 새댁은 어디 갔나 싶다. 그냥 하루 종일, 너무나 기다렸다 나의 엄마를. 엄마는 1시간가량을 머물다 가시며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간식을 챙겨준다. 그러면 아직도 가사에 서툰 주부는 좀 더 맘 편하게 밀린 집안일을 하며 조금 더 그럴듯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주말이면 또 빛을 발한다. 정말이지 귀하고 감사한 가까운 친정의 존재.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에게 충만한 사랑을 받으며 우리 아이는 더더욱 위트 있고 흥 많은 아이로 성장한다. 아이는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관객이 많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재롱부린다. 화분에 물을 주고 정리를 하며 갖가지 살림살이에 관심을 쏟는다. 아마도 이것은, 그 옛날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온 동네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는 시절 '대가족의 삶'이 아니던가?
아이는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말농장에 가며 계절과 자연을 흠뻑 느낀다. 이제는 돈을 주고 나서야 체험할 수 있는 이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친정이 가까운 이 삶은, 상위 1%의 육아 환경이 아닐까 싶다.
가까운 친정 덕분에 엄마를 자주 만나며, 초보 엄마는 많은 육아 비법을 전수받았다. 사실 특별한 방법을 배웠다기보다는, 그냥 엄마에게서 보이고 느꼈던 모습을 열심히 익히고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육아 일상에서 나는 가끔 냉정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보듬기보다는 잘잘못을 따지고 그 작은 아이를 훈계했다. 아니었다. 그것은 훈계라기보다 답답하고 짜증 나는 마음을 떨치고 자 아이에게 화를 내고 두려움을 준 것이었다. 고작, 바지에 쉬를 했을 뿐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그저 그 행동이 익숙지 않아 또다시, 바지에 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폭발했다.
엉엉 꺼이꺼이 울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원래의) 엄마가 보고 싶다' 말하는 아이에게, 그리고 '(화를 내고 있는 지금의) 엄마가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더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자신의 생명이 달린 절대적인 존재일 테다. 세상의 처음이자 끝일 테다. 그런데 그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괴물처럼 불을 뿜고 있었다.
그 작고 여린 마음을, 본인이 가장 힘들고 답답할 그 마음을, 낯설고 캄캄하고 두려울 그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는데. 아이는 본래 계속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다가 일어서도 걷고 뛰는 존재였는데. 까맣게 잊었다.
비단 이런 상황이 아니고서라도, 순간의 감정들로 아이를 배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그동안 스스로를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토록 심각하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나.
이러한 나의 말과 행동으로 서글퍼지는 날, 할머니의 따스함이 아이를 안았다.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는데, 할머니들은 즐거운 순간에만 함께 있으니 손녀가 마냥 좋을 수밖에 없는 거'라며 할머니의 사랑을 깎아내리고 심술부렸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었다.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나 대신 알맞은 훈육도 해줬던 나의 엄마는, 그냥 태생이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분인 듯했다.
아이의 우물쭈물한 입을 보며 답답해하던 나와 달리, 많은 상황에서 엄마는 (정말로!) 눈빛만으로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자신의 마음이 인정받고 이해받고 위로받았다 느낀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본인이 해야 할 다음 스텝을 적절하게 수행하였다. 내가 그렇게 열 받고 화낼 필요도 없이, 할머니랑 꼭 안고 얘기만 했을 뿐인데 스스로 잘했다. 아이고 정말 몰라봤는데, 우리 집에 바로 오은영 선생님이 계셨구나!
3년 차 초보 엄마는 지금도 배운다. 물론 앞으로도 더 배워 나가야겠지만. 아이를 이미, 마음 깊이, 흠뻑, 절절히 사랑하고 있는 매일이라도, '나의 아이'를 더욱더 존중하고 이해하며 진짜 사랑해주기 위해서는 '나의 엄마'의 편안하고 따뜻한 육아 스킬이 계속 필요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