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남편의 자리
한동안 나를 찾는다며 부단히 헤매고 그 와중에 '좋은 엄마'라는 타이틀엔 단단히 집착했다. 그렇게 그 역할들에 심취하자니 도무지 다른 곳에는 에너지를 쏟을 틈이 없었다. 자연히 많은 것에 관심이 소홀해졌고, 거기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남편이었다.
아이에게는 늘 양질의 무언가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육퇴 후엔 어김없이 온라인 세상으로 들어갔고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았다. 안 그래도 육체적으로 힘든 육아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해도 됐었다. 하지만 모성신화 백일장에서도 우등생이 되고 싶던 나는 굳이 또 스스로를 피곤케 만들었다. 모든 레이더는 아이에게 맞추었고, 아이가 잠든 기본적인 휴식 시간에도 모니터에 집중했다. 스스로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왜 나만 혼자 이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이토록 피곤한 육아에 왜 남편은 나처럼 깊게 관여하지 않는가'를 불만 삼았다. 이러한 상황에 그 유명한 '독박 육아' 프레임을 씌웠다. 그리고 그 갑옷을 누구보다 단단히 입으며 작은 것에 쉽게 예민해지며 분노했다.
그는 그저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 회사원일 뿐이었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육아는 배워보지도, 익혀보지도 못한 낯선 일일 뿐이었다. 그저 나와 같았다. 내가 처음 아이와 마주했을 때 아무것도 몰랐고 두려웠던 것처럼, 그도 그저 육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이 작고 연약한 존재가 어려웠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나만큼의 시간이 없었다.
엄마라는 이름도 익숙해지는 게 참 어려웠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일단 내 앞엔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기에 나는 이 생명을 성실히 돌봐야 했다.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여, 아이와의 시간이 더 익숙해졌다. 나의 모성애가 그의 부성애보다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와 아이가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와 더 교감하고 사소한 스킬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 앞에서 머뭇거리는 남편을 타박했다. 아이가 울고 있어도 무언가를 할 줄 모르는 남편을, 아이가 필요한 것을 적절히 알아서 제공하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했다.
아이의 일상에는 하나하나 집중하면서 남편의 일상엔 관심 갖지 않았다. 그가 오늘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일을 했는가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 일찍 돌아와 허둥지둥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알아서 아이를 돌봐주길 바랐다. 그리고는 '오늘 우리 아이가 무엇을 해냈는지' 열심히 이야기하며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오늘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 얘기만 들어주길 바랐다.
남편은 변화한 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본인은 회사일로 바빠서 저녁이 없는 삶을 살지라도, 그 시간의 흐름에서 나와 아이가 둘만의 결속된 관계를 만들어 갈지라도, 그래서 본인은 서운함과 소외감을 느낄지라도.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역시나 된 사람의 고차원적인 찐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예민한 맹수가 '어서 코털만 건드려봐라' 하는 모습으로 매일을 그르렁 거려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일까?
어느 순간이 되자, 매일 밤 똑같이 나의 불만만 내뱉는 것도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퇴근을 하고 온 그가 본인의 집안일을 알아서 하기만을 바랐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그의 모습엔 눈을 흘기거나 한숨을 푹 쉴 뿐이었다. 대화는 더 없어져갔다.
나는 그저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사람, 그는 그저 이 집의 가계를 위해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었다.
결국 어느 밤,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그도 분명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하루 종일 힘들게 살다가 퇴근을 했을 테였다. 그리고 그 늦은 퇴근길 마저 사회적 거리가 지켜질 리 없는 지옥철에서 또 다른 지친 하루를 살다 만난 타인의 땀과 냄새와 끈적임에 짓눌리며 힘겹게 왔을 테였다.
그런데 그렇게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또 한 번 나의 어려움만 토하듯이 뱉었다. '육아가 얼마나 감옥 같다느니, 나는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집순이가 되었다느니, 너는 밖에서 인정을 받지만 나는 이 말도 안 통하는 애랑 하루 종일 있으면서 무언가 바쁘게 하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느니'.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그동안은 잘 참아주던 그가, 그날은 폭발했다. 난 억울했고 눈물이 났다. 엄마가 되면서 많은 제약이 생겼지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도 고군분투 실천했다 생각했기에 그 슬픔은 정말 컸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육아도 일도 자아도' 다 만족시키겠다며 열심히 방황을 하던 그 길이, 어쩌면 정말 '배부른 투정이고 욕심'이었다. 남편이 육아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매일 불만을 품었었지만, 알고 보면 남편은 나에게 이미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신경 써서 챙겨주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가꾸는 나의 일상'을 존중하면서 내가 그 모든 방황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도 본인이 하고픈 '더 나은 일과 삶과 꿈'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본인이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부인과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기에 오늘도 치열한 출근길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늘 모른 체하고 언제나 나의 상황과 감정에만 집중했었다. 그리고 이제야 나 자신의 자리만큼 중요한 밀레니얼 남편의 자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반성이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남편의 노고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엄마이자 주부로 사는 삶'을 편안한 삶으로 느꼈던 것 같다. 육아와 살림이 정말 쉽지는 않지만, 엄마와 주부로 사는 삶은 '치열한 자본주의의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의 책임과 가사를 모두 다 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삶은 두려울 뿐이었다. '함께 벌어 돈을 모아 2년짜리 메뚜기 삶을 어서 벗어나자'며 맞벌이를 이야기하는 남편의 조심스러운 말은 늘 그저 흘려버렸다. 남편의 막막한 심정은 헤아리지 못한 채, 빨래를 빨래통에 넣지 못하는 남편을, 아이의 머리를 제대로 감길 줄 모르는 남편을 한심해하거나 분노하기만 했다.
그래서. 늘 불쌍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나와 결혼하여 나와 가족을 이룬 자가. 오늘도 이른 아침, 잠들어있는 아내와 딸을 보며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같이 더 늦잠 자고 싶은 마음)을 안고 열심히 지옥철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서 치열하게 싸웠을 그가.
그러고 보면, 그의 일상엔 어떠한 즐거움이 있었을까?
때때로 주말 새벽 즐겼던 동료와의 자전거 타기?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남산이나 한강에 갔다. 일상에 시원함이 되었을 테다. 금요일 밤, 대학시절의 친구들과 즐긴 인터넷 게임?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이으며 유쾌한 힘이 되었을 테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 별게 없다. 나와 우리의 딸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기, 그리고 가끔 중요한 날에 부모님께 좋은 선물을 사 드리기. 아마도 그것이 그에게 가장 큰 일상의 기쁨이었을 테다.
그러고 보니 당연하다. 나도 남편이 지금보다 조금 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워라벨이 있는 일을 하길 바라고, 그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과 자아실현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라며, 삶에서 더 많은 소소한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 정말 정말 사랑의 마음을 담아 간절히 바란다!!
아! 그런데 그러고 보니, 지금보다 돈을 조금 더 적게 버는 건 안 되겠다. 다음 달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 계약을 새로 하는데 2년 전보다 5%가 더 올라 살림이 빠듯하다. 어휴. 지금보다 돈은 조금 적게 버는 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역시 내가 브런치 작가로 성공해서 생활비 좀 빨리 벌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