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며느리가 되는 법
결혼 전, 결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댁에 처음 인사를 간 자리였다. 예비 시부모님은 커다란 꽃바구니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나는 감사하게 꽃을 받고 최대한 얌전을 떨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당연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앞으로 결혼을 하면 어떻게 살겠냐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나 보다. 내 입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가풍을 따르겠습니다.
정말 한 번도 그렇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남편의 방식을 서로 존중하여, 의견을 조율하며 오순도순 살아갈 예정이었었다. 그런데 불쑥 이 멘트가 튀어나왔다. 아. 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어디에선가, 아마도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서로의 가족에게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많이 써먹는 멘트가 머릿속에 박혀있다 나온 듯했다.
물론 그 드라마의 배경도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본가에 가서 말하는 상황 이리라.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 생전 처음 겪는 이 자리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상황, 익숙한 느낌의 멘트를 내뱉었으리라.
놀라웠다. 내가 스스로 이 멘트를 이야기한 것이. 물론 시부모님도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약간 놀라 웃으시며 이렇게 되물으셨다. '우리 집 가풍이 어떤지 알고?' 그러나 시부모님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만연했다. 운을 띄운 적도 없는데 정답을 말하는 예비 며느리라니 얼마나 예쁘셨을꼬.
아이가 태어난 지 4개월쯤 되었을 무렵,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이 계곡의 펜션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가족들과 북적북적 함께 하는 여행을 원래 좋아해, 시댁과의 여행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다만 아이가 너무 어렸다. 장거리 자동차 이동도, 펜션 숙박도 힘들 것 같아 이번 여행엔 함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숙박은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들러 가족 여행에 함께 하며 식사라도 같이 해야겠다 생각했다. 깜짝 선물처럼 방문하기 위해, 시누이들에게만 미리 말해놓고 부모님들께는 도착 전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역시나 사랑스러운 손녀의 깜짝 방문에 시부모님은 날듯이 기뻐하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 내외와 아이의 등장에 '얘들이 진짜 온 것이 맞냐'며 눈을 비비고 버선발로 뛰어오셨다.
그리고 우리는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있었고, 그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딸들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여. 다 필요 없어. 난 우리 며느리랑 손녀가 제일 좋다!
아. 아버님 그 말만은 하시지 말아 주...
물론 아버님 말씀에 악의는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의 깜짝 방문에 너무나 기쁘셨을 뿐이고, 아버님의 첫 손주, 4개월밖에 안된 귀여운 손녀가 눈앞에 있으니 여행에 함께 하고 있으니 너무나 흐뭇하고 행복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아버님은 나를 좀 좋아하신다.) 그래도 아버님. 그 말만은. 그 말만은 하지 말으셨어야...
바로 옆에 앉아있는 시누이들이 보였다. 아무리 악의 없는 장난이어도 그들은 꽤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생각했다. 만약 이 말이 우리 아빠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 말을 내가 들었다면? 상상 만으로도 정말 너무나 충격이고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 대해 아버님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직은 새댁인 내가 아버님께 '그 말씀은 잘못된 것 같다'라고 당차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버님께서 다른 자리로 옮기신 후, 나는 어머님께 이야기했다. 아까 아버님의 말씀이 너무 지나쳤다고. 내가 우리 아빠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면 눈물이 났을 것 같다고. 그러자 어머님은 '아버님께서 괜히 장난을 치며 말씀하신 것'이라며, '실은 딸들을 정말이지 끔찍이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아버님은 딸들을 정말 사랑하셨다. 두 딸을 끔찍이 아끼셨다. 딸들과 매일 통화를 하고 딸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딸과의 산책을 즐기셨고 딸을 위해 맛있는 걸 남겨주셨다. 그런데, 아버님은 왜 그런 단어를 내뱉으셨을까. 그토록 슬퍼지는 단어를 뱉으셨을까. 아버님도 나처럼 '어떤 정형화된 멘트'를 본인도 모르게 머릿속에 저장하고 계셨던 것일까?
그 이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역시 아줌마가 되었다고, 3살 된 아이를 키우는 나는 아버님께 꽤 당차게 행동을 한다. '아버님, 그때 그 말씀은 듣는 당사가가 아닌 저조차 참 서운한 얘기였어요'라고 이제는 당당하게 말씀드린다. 그럼 어머님은 아버님을 타박하시고, 아버님은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신다.
아버님도, 시대도, 그리고 이 집의 가풍도,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오지랖을 부리며 할 말을 하는 애엄마, 그러한 며느리가 되는 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