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네이티브 밀레니얼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에 PC가 생겼다. 윈도우도 도스도 모두 깔려있던, 네모나고 퉁퉁한 아이였다. 나와 동생은 '한글 타자연습'과 '라이온 킹 게임'을 즐겼다. 그리고 종종 '그림판'으로 도형 그리기 연습을 했다.
이 정도면 이미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닐까?
초등학교 때 우리 집 거실엔 전축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있다!) 그런데 중학교 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선물 받더니, 고등학교 때는 MP3 플레이어를 선물 받았다. 중학생 때는 CD를 구워 친구와 주고받았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아이리버에 가요를 열심히 담았다. 그리고 그때는 처음으로 나의 휴대폰도 가졌다. 문자는 하나에 10원이어서, 필요한 말만 꾹꾹 눌러썼다.
대학생 땐 싸이월드의 세상이었다. 친구들과 인터넷 세상에서 소통을 했다. '버디버디'를 썼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친구들의 일상을 사진과 글로 만나며 홈페이지에 안부를 물었다. 도토리로 나의 방을 꾸미고 멋진 음악도 깔았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대학생 때 나는 폴더폰을 사용했는데, 갑자기 이 세상에 스마트폰이란 게 생겼단다. 당시 인터넷은 집이나 학교에서 쓰는 거였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달 휴대폰 요금에 어마어마한 빨간 불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놀라웠다. 그러나 나는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어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그래도, 디지털 네이티브가 확실하다. 디지털 세상의 발전을 처음부터 함께한 세대가 바로 내가 아닐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정말 모든 세상이 스마트해졌다. 놀라운 속도로 세상이 변했다. 그리고 이젠 온라인 세상을 기반으로 하는 정말 다양한 삶과 직업이 생겼다. 사실 예전의 나는 아프리카 TV의 진행자들을 굉장히 덜떨어진 사람들로 생각했었다. 공부 안 하던 놈팽이들이 저렇게 자기들 게임이나 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별풍선을 받는다는 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 그 사람들이, 유튜브라는 신대륙을 먼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이 발전했고 이제는 직장인이든, 주부든, 대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거의 모두의 '꿈의 직업'이 되었다.
2021년의 삶에서 디지털 네이티브인 나는 당연히 매일을 온라인 세상에 접속하며 살았다. 그런데 현실의 삶에서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였다. 그러니 오감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육아와 관련된 것이었다. 저마다 새롭고 저마다 솔깃했다. 처음 겪는 세상에서 초보 엄마는 수없이 부러워하고 흔들렸다. 아이에게는 조금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고, 국민템이라 하는 것들은 꼭 장만하고 싶었다. 낯선 '엄마의 나라'에서 잘 나가는 엄마들, 눈에 밟히는 광고들을 그저 열렬히 추종하였다.
그런데 매번 흔들리는 나를 보자니 너무 지쳤다. 사고 또 사도 안 사고 못 산 것 투성이었고, 늘 새롭고 짜릿하게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교구, 체험, 여행 등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도무지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시 sns를 끊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신하며 그 안에 머무르는 모든 엄마들을 어리석다 생각하며.
그러나 물론 다시 돌아왔다. 역시 스마트한 세상의 정보는 온라인 세상에 있었기에. 그리고 그곳에 마음을 터 놓을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모두가 광고이며 홍보인 것을 알면서도 그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버티고 공존하며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휴. 또 나만 잘난 척할 뻔했었다. 큰일 날 뻔했었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쭉 온라인 세상에 머문다. 그리고 공감받고 위로받는다. 묻고 답하고 주고받으며, 나를 드러내고 남을 따르며 그 안에서 교류를 한다. 방법의 수단이 달라졌지만, 대면이든 버디버디든 싸이월드든 sns든. 그 모든 교류는 사람에게 다 중요한 것일 테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더 뽐내기 쉬운 세상이다. 온라인이 기반이니 장소나 시간에 제약이 없다. 참으로 엄마들에게 안성맞춤. 그러니 주변에 점점 더 많은 맘플루언서, 맘스타마켓이 생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 때 온라인 세상을 멸시했던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반성을 한다. 역시나 이 세계를 잘 활용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맘의 자세'라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엄마라는 자리를 다져가기 위해서도, 나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도.
그저 올곧이 마음을 먹고, 불안함과 초조함에 흔들리지 않고 이 세계에서 잘 버티고 나아가야겠다. 학습을 위해서도 소통을 위해서도 정보 탐색을 위해서도 부업을 위해서도. 역시나 디지털이 최고의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