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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Oct 19. 2021

원더랜드

이제는 이곳이 현실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것들을 기록했다. 애 낳고 이름이 없어졌다고 흔들리던 엄마가 자신 안에 피어오르는 일상과 생각을 소담히 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글이 쌓였다. 문득 생각해본다.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인가?


이쯤에서 생각해본다. 책 속의 앨리스는 어떻게 되었더라? 책 속의 앨리스는 잠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갔다. 낯설던 원더랜드에서 빠져나와, 따스한 햇살이 피추는 잔디밭 옆 나무 기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것이 앨리스 본래의 삶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밀레니얼 엄마는 다시 돌아갈 본래의 삶이 없다. 아니, 이제 이 낯선 원더랜드가 본래의 삶이다. 엄마가 된 이상 평생 엄마일 것이며, 앞으로도 쭉 새롭고 이상한 나라에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끝도 없이 나를 묻는 삶, 이전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삶,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행하고 있는 이 삶이 이제는 나름 재미가 있다. 이 또한 원래의 삶처럼 익숙해지고 좋아진 것일까?


늘어나고 줄어드는 몸뚱아리도 애잔하지만 사랑스럽다. 공감을 기반으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도 좋다. 이렇게 무언가를 '받아들임'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가끔 예전의 삶이 그립고 이전의 사람들이 생각날 때는 다만 또 휴대폰을 손에 쥐면 그만이다. sns와 영상통화로 서로의 삶을 전하고 나눈다.


어쩌면 그들도 각자의 토끼굴에 머물러있다. 이렇게 눈앞에서 대면하는 옆집 엄마도, 지금은 거리가 멀어진 회사 동료도. 모두가 각자의 토끼굴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나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변화한 몸과 마음을 가진 채 현실의 입으로 그리고 온라인의 글과 사진으로.


혹시나 토끼굴 속 원더랜드의 삶이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가 있다면,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절절히 공감하고 위로를 할 것이다. 그리고 따스한 애정을 담아 '좋아요'를 눌러줄 것이다. 조용히 기프티콘을 보내줄지도.



이상한 나라, 원더랜드가 점점 더 좋아진다. 원더랜드도 좋고, 지금의 나도 좋고, 무엇보다 나를 이곳에 안내해 준 토끼가 정말로 좋다.




속편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어렴풋이 떠올리면, 앨리스가 현실세계로 돌아가서 이 원더랜드를 그리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분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며 다시 토끼를 만나길 꿈꿨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좋은가. 따분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틈이 아예 없으니. 때때로 아이가 다리 가랑이를 붙들어 잡고, 어린이집에 안 간다며 방바닥에 불가사리마냥 드러눕고, 청소도, 요리도, 설거지도 못하게 징징거리며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라 떼를 쓰는 일상엔, 애초에 따분할 틈이 없다.


온갖 감정의 덩어리로 점철된, 그러나 기본적으로 너무나 보드랍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아이는 나에게 지나치리만큼 커다란 믿음과 용서와 꿈과 사랑을 준다. 함께 쑥쑥 자라나자 이야기해준다. 지난달보다 1cm나 더 큰 너처럼, 나도 그렇게 쑥쑥 자라날 수 있을까?


그러니 나는 이 원더랜드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때때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리고 이 세계에 열심히 적응하며, 그리고 부단히 나를 찾으며.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아마도 이것인 듯하다.


'밀레니얼 맘 앨리스는 오늘도 열심히 원더랜드에서 사랑하고 성장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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