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책과 글
사실 그때 '대망의 책 육아'를 시작하며 나도 마음먹은 것이 있었다. 아이는 모방의 귀재이니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기 위해선 '엄마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물론 아이에게 좀 더 좋은 엄마가 되고자 팁을 얻고도 싶었고,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육아맘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세상의 많은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엔 '아이의 책 육아를 위해' 굉장히 목적이 있는 엄마의 독서를 시작했었다.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역시나 처음에 '엄마의 독서'를 시작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애초에 육아와 살림 만으로 정신이 없었고 '그 어떤 경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그러니 밥이 나오고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 별로 쓸모도 효과도 없어 보이는, '독서'가 때때로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바쁜 일상 중에 독서를 시작하기란, 그 시작도 전에 조급하고 다급함이 넘쳐날 뿐이었다.
그래서 먼저 '엄마가 독서를 하면 얼마나 좋은가? 엄마들이 효율적으로 독서를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 글들을 읽은 후 독서를 제대로 시작해 볼 참이었다. (레퍼런스에 진심인 타입) 그런데, 그런 연구는 거의 없었다.
사실 '엄마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야근하고 9시에 퇴근한 직장인이 운동하러 헬스장에 가는 것'과 비슷할 테였다. 시간을 쪼개서도 어려운 낯선 일. 그러니 아마도 엄마들 중에 '본인의 독서에 집중'하며 '그 효과를 입증'해왔던 엄마의 모수는 별로 없던 게 아닐까 싶다. 애초에 독서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거나, 굳이 그 효과를 인증하지 않았거나. 그러니 '독서가 생활인 엄마'와 '보통의 엄마'를 한 자리에 모아 비교, 대조하는 연구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일단은. 대단하리만큼은 아니지만, 엄마가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아이도 나도 책에 가까워지는 육아. 책을 읽음으로써 엄마도 아이도 행복한 육아. 책을 탐색하고 모험하며 세상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엄마와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꿈꾸며.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물론 처음의 목적은 다분했지만, 어쨌거나 조금씩 읽어가며 정말로 책에 흥미가 생겨버렸다. 어느 순간 매주 동네 도서관을 찾았고, 1권 이상의 책을 읽게 되었다. 관심 분야도 점점 늘었다. 육아와 교육에 집중됐던 흥미가 사회, 경제, 정치, 소설, 에세이 등으로 확 늘어났다.
아이가 잠든 밤,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새벽까지 읽고 또 읽는 나를 발견했다. 매달 5~7권의 책을 읽었다. 엄청나게 다독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꽤 만족스러웠고, '책이라는 매체가 정말로 좋아졌음'을 '내가 조금씩 더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더 읽고 싶은데 부족한 시간을 아쉬워했다. 아니, 넷플릭스도 아니고 유튜브도 아니고 책을 더 보고 싶어서 아쉬워하다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탐독이란 바로 이런 거였나?
물론 나는 굉장한 다독가, 혹은 책 한 권을 읽고 엄청나게 많은 것을 깨우치는 철학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스스로의 성장이 느껴지니, 다른 엄마들에게도 '함께 책을 읽자' 말하고 싶어졌다. 엄마의 삶에 도움을 주는 책과 구절을 나누며 육아 동지들도 많이 만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의 배움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고, 나아가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엄마의 독서'에 대해 얘기하려니,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참 우스웠다. 마치 이 분야에서 굉장한 선구자인양,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굉장한 전문가인양. 가르치려는 투의 글을 쓰는 내가 느껴졌다. 온갖 그럴듯한 말을 다 갖다 붙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꼴값 떨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이제 겨우 숫자 열을 세는 주제에, 수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을 아냐며 피타고라스가 어떻다느니 삼각함수가 어떻다느니 하는 꼴이었다. 심지어 그것을 '책 육아'라는 핫한 육아법에 갖다 붙이며, 책 안 읽는 엄마들의 불안감까지 돋울 뻔했다. 아이고,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그래서 그저, 한때 그런 부끄러운 작문을 하려 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제는 잔잔히 그리고 단단히, '엄마의 독서는 참 좋다'고 짧게만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엄마인 당신이, 조만간 이 엄청난 신비한 세계로, '책의 세계'로 들어오기를 바랄 뿐이다. 육퇴 후 함께 걷는 캄캄하고 밝은 밤을 두 손 모아 기다릴 뿐이다.
(솔직히 나는 오디오북도 많이 활용한다. 청소하면서 설거지하면서 음쓰랑 재활용 쓰레기 버리면서, 장 보면서 그리고 아이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면서. 살림의 현장에서 이렇게 책을 들으면, 알뜰살뜰 시간도 활용하고 지혜도 쌓은 것 같아 정말 기쁜 마음이 든다. 부디 여러분도 오디오북으로 책의 세계에 쉽게 빠지실 수 있기를!)
처음에 내가 쓴 글은 참 작았다. 사실 글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sns에 올라갈만한 짧은 캡션이었다. 그저 엄마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엄마들과 소통을 하기 위한 그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브런치 작가가 되니 글은 써야겠고, 지금 쓰려는 주제에 관해 나의 말투는 너무 재수 없으니 방향을 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저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하였다. 노트북을 켜서, 그동안 머릿속에 떠나니던 에피소드와 생각을 차곡차곡 담았다. 열심히 육아하는 삶, 그런데 온갖 삽질을 하고 있는 나의 삶을 적어 보았다. 그러자 이 모든 이야기들이 과거의 경험들과 생각에서 이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또 그 경험과 생각의 과정도 쭉 써 내려갔다. 그렇게 글쓰기를 이어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변했었다. 이전에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린 세상 속에서, 그동안 '정도'를 걸어왔다 생각했는데 이제 그 길이 뚜렷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해보니, 그 안에 있던 나름의 의미들이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내 삶이 '나 혼자만 겪는 아주 유별한 삶은 아닐 것'이라 생각됐다. 어쩌면 보편적인 '요즘 엄마'들의 삶이리라. 그러자 뭔가 뚜렷한 선이 생기는 듯했다. 흔들린다고만 생각했는데 조금씩 선명해졌다. 하루하루 자신감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와의 매일도 참 다채로웠다. 짐짓 어제와 똑같아 보였던 일상이지만 사실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해있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나눈 대화, 그리고 그 순간순간 느꼈던 행복과 벅참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게 됨을 알았다. 그래서 아이를 더 존중하고 더 관찰하며 열심히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졌다. 사실 완전히 잊히지 않았더라도, 내가 평범의 삶에서는 절대 의식하지 않는, 과거의 영역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굳이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마 늘 그 안에만 머무를 테였다. 어쩌면 이 모든 순간의 기억과 생각, 감정들은, 숨어있던 중요한 의미를 찾지도 못한 채 가라앉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로 했다. 그 기억을 붙잡고 의미를 발견하고, 그리고 그 의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나를 찾기 위하여.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쓰기로 했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둥둥 떠다니던 생각이 정리된다. 그 덕에 또 나의 현재를 기쁘게 받아들이다. 엄마인 내 삶에 행복을 느낀다.
그러니 엄마들에게 글 쓰기를 권하고 싶다. 부디 이 마음이 젠체하는 느낌이 아니길.
엄마들은 바쁘다. 그리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엄마들에게 '글 쓰기'는 아마도 사치가 아니라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메모장을 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것을 써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