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약 Oct 15. 2021

모성신화를 팔로우

엄마의 고군분투, 그리고 현실 육아

엄마가 된 밀레니얼


밀레니얼 맘으로 나를 정의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해할 수 없던 그 수많은 고뇌와 행동이 조금은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그저 보통의 밀레니얼처럼, 나 다움을 추구하고 나의 기준과 가치들로 상황에 맞는 알맞을 선택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본캐든 부캐든, 때와 장소에 맞는 나의 이름이 불리기를 바랐고 업글인간이 되고자 욕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밀레니얼과 나의 상황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보통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이들은 20,30대의 직장인이며 어느 한 소속에서 이미 본인의 이름이 불리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타의에 의한 극적인 신체 변화를 겪어본 적이 없었고, 끊임없이 눈길과 손길을 요구하며 하루 종일 온갖 감정을 뿜어내는 작고 독특한 생명체를 옆에 둔 적이 없었다. (그 생명체의 존재가 가장 결정적이다.)


그런데 나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음으로써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로 인해 그 보통의 삶에서 멀어진 것이었다. (언젠가 밀레니얼에서도 엄마가 많아진다면, 그리고 이러한 엄마들의 삶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 밀레니얼 맘도 이 세대의 평범과 보통이 될 수 있을까?)


역시나 사회는, 이전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든 지금 막 갖게 된 '엄마'라는 타이틀에 기대하는 바가 많았다. 물론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모범생 역할에 충실한 나는 보이지 않는 그 기대를 만족시키려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자꾸 부딪혔다.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며, 주체적인 삶이 아닌 것 같다'며 사회의 기대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나'가 있었고, '역시나 사회의 기대가 최선이고 옳은 것'이라며 그 기대를 앞장서서 충실히 따르는 '나'가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이 존재하고 상충했다.


때문에 그렇게 방황을 했던 거다.




관념, 그리고 체화된 특징들


사실 밀레니얼 세대로 태어나 30년을 살았어도, 사회적 기대를 충실히 따르는 참으로 모범생과 같은 삶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공부하라 해서 공부하고 취직하라 해서 취직하고 결혼하라 해서 결혼하며' 알맞은 '정도'를 걸었다 생각했는데, 딱히 많은 것을 이루지도 못했고 충분한 행복을 가졌다고도 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회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발전시킨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에 더 유연하게 적응하며 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새로운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이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 같다. 자라온 배경은 밀레니얼이었으나, 주류의 삶을 꿈꾸며 조금은 고리타분했던 80년대 생이, 드디어 천천히 밀레니얼의 특징을 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엄마라는 신분과 그에 어울리는 특징'에 관해선 가치관을 정립할 기회와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냥 나의 엄마가 살았던 기존의 방식일 뿐. 애초에 당연했던 것이라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 외에 다른 엄마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엄마 됨'에 대해서는 어디에서 미리 알 법도 자연스레 터득할 기회도 없었다.


그나마 임신을 알게 되고 10달의 기간, 출산까지 디데이를 세어가던 그 기간에, 아이가 뱃속에 고이 들어있는 틈을 타 비교적 자유로운 몸으로 엄마 됨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엄마의 세상은, 절대 미리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었다. 그때에 준비한 모든 것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물리적이며 그저 그림 같은 것이었다. 결국은 아이를 낳고 젖소가 된 순간부터, 새롭게 던져진 모든 과업을 무작정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업을 처리하는 방식은, 결국 내가 알던 단 하나의 방식, 나의 엄마의 방식이었다.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어쩌면 '밀레니얼의 관념'보다 '엄마라는 세상'이 나의 살과 피에 먼저 체화됐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30년 간 담겨있던 기성의 관념을 하나씩 꺼내어 사용하였다.




자분, 완모, 애착. 이토록 강력한 3대 모성신화


세상엔 3대 모성신화가 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 애착형성. 이는 많은 엄마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의 기대이자, 엄마 스스로가 꼭 이루고자 노력하는 절대적인 목표이다.  


그 3가지 기대에 나도 절대적으로 따랐다. 역시 누구도 강요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정답'이자 '정도'라 생각했다. 이러한 '엄마의 의무를 강조하는 육아서'들을 사실은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기대를 따르겠다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만약 내가 이 세 가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얼마나 해가 될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릴까.' 참으로 놀랍도록 뿌리 깊은 관념이었다.



어차피 다른 방식을 고려한 적은 없으니, 꼬박 만 하루를 진통하고 순산(!)하였다. 완모와 완분은 아이의 선택이라 기다리기로 했지만 그전에 초유만은 꼭 먹이려 했다. 조리원 퇴소 후 아이가 분유를 거부하며 완모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아이의 이 까다로운 고급 입맛에 정말 다행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무조건 만 1년은 수유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마침내 자랑스런 어머니는 13개월 완모를 달성했다. 짝짝짝!


사실 이 과정은 너무나 당연한 듯 흘러갔다. 모성신화를 떠나서, 회복이 빠른 자연분만과 젖병을 씻을 필요 없는 완모가 좋았다. 그런데 과연 이것만이 정답이었을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을 보며 그때의 나는 약간의 우월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엔 이제 평생 안고 갈 죄책감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참 우습다. 이게 뭐라고.


애착형성을 위해서도 열과 성을 다했다. 엄마와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혹여나 아이가 내면의 상처를 입을까, 혹여나 성격이 모가 날까 싶어서 각별한 사이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자리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아이 주도 이유식'을 들어 보셨나요?


모성신화에 충실히 따르며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기에, 이유식 준비의 수순도 당연했다. 직접 엄마의 땀과 노고를 갈아 넣으려 애썼다. 애초에 시판 이유식을 사먹인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그러한 엄마들은 게으르고 아이에게 애정이 부족한 엄마라 치부했다. 이토록 고리타분한 밀레니얼이었다니.


엄마가 직접 만든 이유식이어야만 아이가 알맞은 영양과 정성과 사랑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판 이유식이야말로 더더욱 다양한 재료를 알맞게 사용해 훨씬 더 고르고 풍부한 영양가를 가지고 있을 테였겠지만.) 또한 넘의 집 아이들이 종종 밥을 안 먹고 엄마와 씨름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지 아닌지가 곧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의 성적표'라 생각하였다. (그때의 나에겐 아마도 '밥'이 하버드보다 더 중요하고 큰일이었으리라.) 우리 아이는 꼭 무엇이든 잘 먹는 예쁘고 토실토실한 아이로 만들겠다며 대단한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이 목표는 낯설 길을 택하게 만들었다.


'아이 주도 이유식(이하 BLW ;baby-led weaning)'이었다. 죽 형태로 만든 이유식을 엄마가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직접 음식물을 집어 먹는, 즉 아이가 주도하는 이유식의 방법이라고 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 시장도 넓어진 것 같지만, 2019년 무렵엔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카페는 딱 하나에 레시피 서적도 거의 없었다. 참으로 독특한 신세계였다. 이 blw 형식으로 이유식을 행하면, 아이가 다양한 식재료를 그 본연의 상태로 탐색하고 관찰하며 먹어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는 채소든 고기든 다양한 식재료를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며 먹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아 잘 먹는 아이가 된다고 했다. 낯설고 어려워 보이지만 결과가 그리도 좋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신비로운 길을 열심히 걸었다.


매 식사 시간, 아이를 둘러싼 반경 2m에는 온갖 다채로운 색상의 파편이 퍼져있었다. 한 때는 식재료이자 요리였던, 하지만 지금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아이의 손아귀에서 처절하게 부서지고 짓이겨졌으며, 잠시 입에 들어갔나 나왔었고, 옆에 있던 국물과 범벅이 되어 흩어졌던 그 수많은 아름다운 파편들. 이토록 대단하고 질퍽한 파편들은 아이의 코와 입, 턱과 가슴, 배와 다리를 순서 없이 흘러내리며 옷과 바닥을 또 한 번 물들였다. 참으로 놀랍고 경악스런 순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수도 없이 바닥을 기어 다니며 뭉텅이를 집어 올렸고 늘 새롭고 짜릿하게 지저분해지는 바닥을 닦았다. 그래도 돌아보면 역시 잘 한 선택이었을까? 이제 아이는 더 이상 손이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스스로 식사를 하고 턱받이가 없이도 음식을 흘리지 않고 잘 먹는다. 국이든 밥이든 채소든 고기든 국이든 주는 대로 아무거나 잘 먹어준다. (고맙다 증말.)


아이가 와구와구  먹는 것을 보면, 음식에 집중한 눈과 , 오물오물한 , 그리고 통통한 볼살을 보면 정말이지  자체가  사랑과 행복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의 효도에 욕망의 엄마는 잠시 뿌듯함을 느낀다. 제가 바로 좋은 성적표를 받은 . 역시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마음, 좋은 엄마로 보이고자 하는 집착은  안에 단단히 박힌 듯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