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네풀 Apr 12. 2023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요즘 그 아이는 해맑게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3학년 때 처음 만난 아이는 언어가 조금 거칠었다. 누가 좀 건드리기만 해도 손을 바로 들고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인상을 쓰곤 했다. 또 어떤 때는 웃기지도 않는 농담과 몸개그로 주변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5학년이 된 요즘 아이의 언어는 많이 순화됐고 행동은 차분해졌다.

집에서 독서 논술을 지도하고 있는 나는 그 아이의 변화가 흐뭇하다. 처음에는 아이의 거친 언어를 잘 잡으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지도했다. 사실 말이 지도이지 혼내고 ‘한 번만 더 욕했다는 말 들리면 그만두게 할 거야’ 협박도 했다. 요즘 상태가 좋아진 그 아이를 보면 역시 내가 잘 지도한 덕분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려 눈만 보이지만 눈빛만 봐도 아이가 매우 순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검도를 하고 땀을 흘리고 온 아이가 안쓰러워 다른 아이들 오기 전에 잠깐 마스크를 벗고 물을 마시게 했다. 마스크를 벗은 아이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 교정기를 끼고 있었다.

“어 치아 교정하고 있구나! 언제부터 했니?”

“6개월 정도 됐어요.”

“마스크 쓰고 교정도 하고 있으니 좀 답답하겠다.”

“괜찮아요. 엄마가 지금 하래요. 마스크 쓰고 있으니 교정을 해도 아이들이 놀리지 않을 거라고 해서 지금 하는 거예요”

“그래? 애들이 놀릴까 봐 교정을 못 했니?”

“네, 친구들이 이 점 가지고도 얼마나 놀렸는데요. 지금 아이들이 내 입술 옆에 점이 있는지도 몰라요. 헤헤”

아! 그랬다. 아이는 입술 옆에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친구들은 그 점에 관련된 별명을 지어 부르고 킥킥거리며 놀렸다고 했다. 아이의 거친 언어는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사용하면서 점점 늘었고 세게 보이려고 조그만 일에도 인상을 썼던 것이다. 때로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과 과한 행동을 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치부인 점에서 친구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보려고 나름 애썼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는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는 요즘이 더 좋다고 했다. 교실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지금, 반 아이들이 점을 가지고 놀리지 않아서 너무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새삼 미안했다. 나도 그 아이에 대해 편견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 얼마나 그 점을 가리려고 애썼을까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가 불편하다는 마스크 덕분에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찾은 거 같다. 아이는 원래 거칠고 까불거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놀림에 대한 자기 보호 본능이었을 뿐.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 그 마스크로 치부를 가리면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의 본모습과 제대로 마주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상이라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것일 텐데 요즘에는 외모적인 것만을 전부인 양 생각한다. 성형에 집착하고 화장에 온 정성과 시간을 쏟는다. 요즘에 중고생들도 화장이 당연하다. 독서 수업하면서 늘 화장을 하고 왔던 중학생 사춘기 아이도 어느 순간 화장하지 않고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온다. 화장하지 않아도 예쁘다고 늘 이야기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더니 말이다.

외모에만 집착하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마스크 덕분에 외모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쓰는 요즘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요즘 외출할 때 색조 화장을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실내에서도 마스크는 벗을 수가 없으니 기본 화장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화장품값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가면 민망할 때가 있다. 잡티도 너무 많을뿐더러 입술까지 허여멀건 하면 사람들은 꼭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간다.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화장을 꼭 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이 없으니 마스크 덕분에 외출이 훨씬 간편해졌다.

마스크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대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아이의 점처럼, 점으로 인해 과한 행동을 했던 그 아이의 본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얼굴을 반이나 가린 마스크로 우리는 얼굴보다는 그 사람의 말투나 행동에 더 집중하게 된다.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는 정말 너무 불편하고 힘들지만, 한 가지 배운 것은 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외모 말고 그 사람의 말투를 보고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마스크를 모두 벗는다고 해도 나는 마스크 안에서 해맑게 웃는 그 아이의 진심을 기억하며 사람들을 대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의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