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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풀 Mar 16. 2023

이 시는 애상적 독백적이다. 외워!

시를 학습하는 아이들

  겨울일기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을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


고등학생  수업을 하면서  이 시를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2행을 읽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겨울이라... 동생 생각이 났다. 벚꽃 흩날리는 봄에 떠난 동생... 봄이든 겨울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때는 언제나 춥다. 목이 메어 다음 행을 읽지 못하고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거렸다.  이런   나를 이해 못 하는 학생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이 시가 그렇게 슬픈 거예요? "

 "뭐? 슬프냐고? 지금 그거 질문이야?"

 "슬픈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글일 뿐이잖아요 그냥 문자일 뿐인데 눈물이  나는 게 이해가 안 돼서요"

그래,.. 눈물이 안 날 수도 있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이 없으면.....

"이 시는 슬픈 거야 다른 말로 애상적이라고도 해, "

나는 슬픔을 가르친다 말로. 그리고 학생은 외운다. 머리로. 서로를 이해 못 한 채 우리는 수업했다.  

학생이 문제를 푼다.  ' 화자가 이 겨울을 편하게 지냈다'에 맞다고 동그라미를 친다. 아! 진짜, 이제 슬픔을 넘어서 화가 난다.

"화자가 진짜 편하게 지낸 거 같아?"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내 격앙된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됐는지 약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음, 몸은 편하지 않았을 까요?"

서글픈 생각이 다. 시를 학습으로 배우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요즘 아이들은 시를 감상하지 않는다. 입시 선생님들은 이야기한다. 너희들 감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감상은 나중에 하고 시험에 나오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를 감상하지 않는 아이들... 겨울을 왜 누워서만 지냈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냥 외우기만 할 뿐 , 외워서 슬픈 거라는 걸 알 뿐이다. 시를 읽고도 아무 느낌이 없는 이들의 메마름이 안타깝다.

한 줄 한 줄 읽는데도 이 슬픈 시를 말이다.

염주알 자체를  몰라서 염주알부터 설명을 하고 그것을 왜  굴리는지 얼마나  그리워하며  염주알을 굴렸으면 그렇게 윤이 나는지 설명하고 나니 진이 빠졌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를 학습으로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 시를 나눌 누군가가 간절하다.  겨울을 지내는 나무들이 서로 기대어 숲을 이루어도 나와는 무관하다는 말이 가슴 아프다.  아무도 슬픔을 나눌 길 없는 화자의 고독한 슬픔에 목이 멘다. 문 한번 열지 않는 아니 열지 못하는 화자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런  시를 읽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감정이 메마른 게 아니면 무엇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해서일까?

시를 수업하면 늘 가슴이 아프다. 이런 시던 저런 시던 아무도 느끼지 않으니까 슬퍼하지도 즐거워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으니까. 나 혼자만 그냥 미친 사람처럼 떠들 뿐이다. 혼자 울고 혼자 웃고 혼자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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