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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풀 May 19. 2023

아이의 비밀일기

아이의 비밀 일기장을 읽었다. 

사실 아이에게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나는 뭐든 써도 된다고 했다. 엄마한테 불만 있는 것도 쓰고 심지어 욕도 써도 된다고 했다. 어차피 누가 볼 것도 아니니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신이 났다. 그런데 아이는 일기장을 숨겨놓지 않았다. 사실 그 노트가 비밀일기장인 줄도 몰랐다(맹세코) 책상 정리를 해 주다가 우연히 펼쳤을 뿐이었다. 역시 거기엔 욕부터 쓰여있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를 향한 욕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나는 읽지 말아야 할 것을 읽고 말았다

 친구와 함께 문구점에서 천 원짜리 물건을 훔친 내용이었다 규모가 큰 그 매장은 평소에도 학생들의 절도가 문제가 되어 '곳곳에 cctv가 있으니 절도하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매장이었다

이를 어쩐다. 한두 번으로 아이의 절도행각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아이는 처음엔 떨렸는데 걸리지 않았다며 다음엔 좀 더 비싼 것을 훔치겠다는 야무진 다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 펜을 가져왔는데 그 바보 같은 아이가 모른다며 그 친구의 물건도 하나씩 훔쳐야겠다는 거대한 계획도  있었다

아찔했다. 비밀일기 읽은 것을 표 내지 않고 바로잡을 방도는 무엇일까?

나름 아이교육에는 고수인 나였다.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운영등 거의 20년이다.

그동안 주변 엄마들에게 육아코칭을 얼마나 해 주었던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나는 내 아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실망감은 두 번째이고 아이의 이 행실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비밀  일기장을 읽은 것을 들키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머리를 쥐어짜 내야 했다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도둑질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

자칭 육아고수 엄마의 현명한 선택, 솔로몬의 지혜처럼 탁월한 해결책! 나는 그 일을 해냈다!

먼저 나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 조력자를 구했다

그녀는 나처럼 아이들 독서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같이 훔친 아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 거대한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녀에게 그 문구점 주인의 역할을 맡겼다

주인인척하고 전화해서 cctv에 다 걸렸으니 훔친 물건의 50배를 물어내고 혼내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훌륭히 잘해 냈고 나는 전화를 받고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큰 애는 이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며 아이를 거기에 데려가서 사과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바짝 얼어서 눈물을 흘리며 잘 못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용돈에서 5만 원을 주며 대신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는 너무 창피해서 못 갈 거 같다며(떨리는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물었다

"또 다른 거 훔친 건 없어? 이번에 다 말하면 용서해 줄게"

"없어"

"진짜 없어"

"어"

하! 이를 어쩐다 학교 친구 것은 말하지 않을 모양이다

마지막 경고를 날려야 했다

모든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되어있으니 나중에 학교든 문구점이든 또 전화를 받게 되면 그때는 진짜로 혼나게 될 거라고 했다. 잘 생각해서 내일 아침까지 말하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쪽지가 있었다

친구물건을 모르고 그냥 가져왔다고 오늘 학교 가서 다시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휴~다행이다

그렇게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나중에 큰 애한테 이 모든 사실을 말했다. 

큰 애는 정말 놀라워했다. 이 솔로몬 같은 해결책보다 엄마의 연기력에 진심 놀라다면 자기 같으면 중간에 웃었을 거라며

완적 대박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후에는 비밀일기장을 읽지 않았다

또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알면 괴로우니까.

우리 가족은 이 일을 둘째가 스무 살이 되면 말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 둘째는 중1, 아직 6년 남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드린

일은 우리 둘째에게 비밀로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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