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비밀 일기장을 읽었다.
사실 아이에게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나는 뭐든 써도 된다고 했다. 엄마한테 불만 있는 것도 쓰고 심지어 욕도 써도 된다고 했다. 어차피 누가 볼 것도 아니니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신이 났다. 그런데 아이는 일기장을 숨겨놓지 않았다. 사실 그 노트가 비밀일기장인 줄도 몰랐다(맹세코) 책상 정리를 해 주다가 우연히 펼쳤을 뿐이었다. 역시 거기엔 욕부터 쓰여있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를 향한 욕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나는 읽지 말아야 할 것을 읽고 말았다
친구와 함께 문구점에서 천 원짜리 물건을 훔친 내용이었다 규모가 큰 그 매장은 평소에도 학생들의 절도가 문제가 되어 '곳곳에 cctv가 있으니 절도하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매장이었다
이를 어쩐다. 한두 번으로 아이의 절도행각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아이는 처음엔 떨렸는데 걸리지 않았다며 다음엔 좀 더 비싼 것을 훔치겠다는 야무진 다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 펜을 가져왔는데 그 바보 같은 아이가 모른다며 그 친구의 물건도 하나씩 훔쳐야겠다는 거대한 계획도 있었다
아찔했다. 비밀일기 읽은 것을 표 내지 않고 바로잡을 방도는 무엇일까?
나름 아이교육에는 고수인 나였다.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운영등 거의 20년이다.
그동안 주변 엄마들에게 육아코칭을 얼마나 해 주었던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나는 내 아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실망감은 두 번째이고 아이의 이 행실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비밀 일기장을 읽은 것을 들키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머리를 쥐어짜 내야 했다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도둑질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
자칭 육아고수 엄마의 현명한 선택, 솔로몬의 지혜처럼 탁월한 해결책! 나는 그 일을 해냈다!
먼저 나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 조력자를 구했다
그녀는 나처럼 아이들 독서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같이 훔친 아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 거대한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녀에게 그 문구점 주인의 역할을 맡겼다
주인인척하고 전화해서 cctv에 다 걸렸으니 훔친 물건의 50배를 물어내고 혼내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훌륭히 잘해 냈고 나는 전화를 받고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큰 애는 이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며 아이를 거기에 데려가서 사과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바짝 얼어서 눈물을 흘리며 잘 못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용돈에서 5만 원을 주며 대신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는 너무 창피해서 못 갈 거 같다며(떨리는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물었다
"또 다른 거 훔친 건 없어? 이번에 다 말하면 용서해 줄게"
"없어"
"진짜 없어"
"어"
하! 이를 어쩐다 학교 친구 것은 말하지 않을 모양이다
마지막 경고를 날려야 했다
모든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되어있으니 나중에 학교든 문구점이든 또 전화를 받게 되면 그때는 진짜로 혼나게 될 거라고 했다. 잘 생각해서 내일 아침까지 말하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쪽지가 있었다
친구물건을 모르고 그냥 가져왔다고 오늘 학교 가서 다시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휴~다행이다
그렇게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나중에 큰 애한테 이 모든 사실을 말했다.
큰 애는 정말 놀라워했다. 이 솔로몬 같은 해결책보다 엄마의 연기력에 진심 놀라다면 자기 같으면 중간에 웃었을 거라며
완적 대박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후에는 비밀일기장을 읽지 않았다
또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알면 괴로우니까.
우리 가족은 이 일을 둘째가 스무 살이 되면 말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 둘째는 중1, 아직 6년 남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드린다
이 일은 우리 둘째에게 비밀로 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