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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아빠 Jun 19. 2024

겉치장에 투자하는 사람 vs 저축만 성실히 하는 사람


"아니 자식 결혼 잘 시키겠다고 자식 결혼할 시기쯤 되면 있던 집 팔고 서울 중심부에 전세로 들어가기도 한다는데요!? 왜 그러는 거예요 형은 정말"


며칠전 친한 형을 만나고 왔다. 체형 관리도 잘하고 있고 직업도 괜찮고 서울에 신축 대형 아파트는 아니지만 대출 없이 집도 가지고 있는데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다. 자꾸 '독거노총각'이라는 유튜브를 보며 "이게 나의 미래야. 나의 10년 뒤 모습이 정확히 이 모습이야. 아니 이미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해대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도, "근데 나는 틀렸어. 이번 생은 틀렸지.. 엄마도 이제 슬슬 나를 포기했어" 하며 고개를 떨궈댔다.


내가 봐도 형은 눈도 낮출 만큼 낮췄는데 나이가 많아지고, 주변 지인 찬스는 거의 소진했다 보니 이제는 소개팅 자체가 잘 들어오질 않는 상황이다.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소개팅도 자꾸 어그러졌다. 


그런데 이 형은 예전부터 한 가지 유독 고집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솔직함'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인데 솔직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과장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신은 평상시에 옷에 크게 관심이 없고 꾸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소개팅 나갈 때, 최선을 다 해서 꾸미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물론 형은 엄청 힙하고 스타일리시하다고 할 순 없지만, 평상시에 아주 깔끔하게 하고 다니기는 한다. 그런데 그 이상의 노력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며 억지스럽다는 논리. 그래서 머리스타일이 지저분하거나 면도를 안 했거나 이런 상태는 아니고 그냥 옷을 스파브랜드에서 구입한 아주 무난한 정도의 옷을 입고 소개팅에 나간다고 한다. 


나이가 있다 보니 상대가 소개팅 자리에서 돌직구로 집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한다는데, '그냥 대출은 없지만, 원룸 같은 작은 집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서 아니 21평 정도 되는 아파트가 어쩌다가 원룸이 되었냐며 따져 물으니 그냥 오래된 동네이고 집이 허름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항상 "아니 그냥.." 정도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축소해서 말하는 형




수컷 농게는 짝짓기 철이 되면 살던 집(굴)을 더 넓게 파 놓고 그 앞에서 자신의 커다란 집게발을 들고 집게춤을 맹렬하게 추며 암컷을 유혹한다고 한다. 

짝짓기 시즌이 되면, 수컷 공작새는 깃털이 더욱더 화려해진다고 한다.


30대 중반이 되니, 주변 지인 남성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결혼하기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던 거 같다. 한 명은 집이 그리 부유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뜬금없이 외제차를 샀다. "아니 결혼 자금 준비하기도 바쁜 시기에 갑자기 관심도 없던 외제차는 갑자기 왜 샀냐?"는 질문에 "결혼하려고"라는 이상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한 명은 연예인들이 실제로 받는 시술이라며 200만 원 중반대의 피부과시술을 끊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백화점에 가서 몇 백만 원 치 옷을 샀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들으면서 당시에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니 요새 사람들이 남자고 여자고 얼마나 영리한데, 저런 허술한 포장에 집중하면 어떡하나 본질에 집중해야지' 그런데 이 둘은 저렇게 돈을 쓰고 나서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연애를 시작했고, 둘 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주 잘 살고 있다. 거기다가 결혼도 잘했다.


이 둘은 저렇게 과감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 결혼, 연애시장에서 굉장히 약세였다가 갑자기 결혼까지 잘하게 된 극단적인 케이스이고, 전반적으로 봐도 있어'보이게' 부풀리기나 과장을 한 남자들이 결혼할 때 이득을 봤다.


물론 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자신이 부자라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경제사정을 솔직하게 빠르게 오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 괜찮게 치장을 하니, 일단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를 잘 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자꾸 보다 보니, 이제는 나도 생각이 좀 바뀌었다. 돈 하나도 안 쓰고 악착같이 돈 모으는 후배들을 보면 생각이 좀 복잡해진다. 1000만 원 정도 더 들고 있는 거보다, 그걸로 있어 보이게 치장하는 게 결혼시장에선 오히려 더 나은 결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온갖 상품들의 광고, 자극적인 영상, 선정적인 가십거리 주변은 온통 내 주의를 가져가기 위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 나의 본질을 봐주세요" 하기에는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거 같다.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지긋이 잘 머물러 있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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