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차가운 선택이 가장 인간적인 배려였을 때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고, 우리는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빼 들기로 했다. 우리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훨씬 더 순진했다.
"내부 정치를 주도하고 불만을 선동하는, 그 '썩은 사과' 한두 명만 도려내면 될 거야."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실행했다. 고통스러운 면담 끝에 그들을 내보냈다. 우리는 사무실의 공기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길, 남은 사람들이 다시 으쌰으쌰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싸늘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뭉쳤다.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니었다. 상자 전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리더십에 대한 불신, 시스템의 부재, 곪아 터진 불만은 한두 명을 잘라내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우리는 진짜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확실한 결정을 내렸다.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힘들게 마주한 결론을 안고, 우리의 첫 번째 행선지는 '노무 법인'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채용에만 신경쓰던 내가, 해고를 고민해야 할 줄은 몰랐다. 이제부터는 감정이 아닌 '전략'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이별의 과정에서 단 하나의 법적 문제도, 절차적 실수도 없어야 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동시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도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였다.
우리는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 즉 법정 퇴직금과 별도의 '위로금' 패키지를 준비했다. 잔고 중,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한 마지막 총알을 그렇게 쓸 준비를 했다.
마침내 운명의 날. 전사 타운홀 미팅이 소집되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분위기.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아무도 휴대폰을 보거나 옆 사람과 떠들지 않았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축축해진 손바닥만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더 최악의 상황이 될지 가늠할 수가 없어 떨렸다.
대표님이 단상 앞에 섰다. 변명이나 감정 호소는 없었다. 현재 상황과 숫자를 보여주는 PT가 진행되었다. 빠르게 소진되는 통장 잔고, 남은 런웨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 인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회의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에 잠겼다.
"회사가 망하기 전에, 우리가 여러분에게 '위로금'과 '퇴직금'을 챙겨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 가능한 시점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누구도 소리치거나, 울거나,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30명 가까운 인원이 만들어내는, 납처럼 무거운 침묵. 어쩌면 모두가 이 결말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메일함에 속속들이 의사를 표시한 동의서가 도착했다.
결과는, '전원 수락'.
30명에 달했던 조직은 그렇게, 며칠 만에 텅 비어버렸다. 우리가 '우리'라고 불렀던 모든 사람들이 떠나갔다. 책상 위에 주인을 잃은 회사 후드집업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우리는 임차료가 10배나 비쌌던 그 사무실을 떠나, 다시 임차료가 1/3 수준인 곳으로 돌아갔다.
그 실패의 대가는 혹독했지만, 생존을 위한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월별 지출은 인건비와 광고비, 툴 비용까지 모두 삭감되어 번아웃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바닥이 보였던 생명줄이 기적적으로 연장된 것이다.
우리는 알지 못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감행했던 이 뼈아픈 결정이, 사실은 다가올 겨울의 예행연습이었다는 것을. 그로부터 몇 달 뒤, AI 성행에 이어 실리콘밸리에서 불어닥친 '감원 한파'가 모든 스타트업과 빅테크를 덮쳤다. 우리는 이 아이러니한 위기 덕분에, 그 누구보다 몇 달 먼저 겨울을 대비할 수 있었다.
텅 빈 사무실에서, 우리는 이 폐허 위에서 '재건'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0장에서 계속됩니다.)
<울면서, 버티면서, 살아남으면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연재됩니다.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다음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