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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끝에서 만난 마지막 기회

10점짜리 성공이 0점짜리 사업 모델이었던 이유

by 채원


다시는 예측하지 않을 것


외주로 돈을 버는 일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실패'였다. 우리는 영혼 없이 남의 꿈을 만들어주다 함께 불행해지기 직전에 멈춰 섰다. "다시 우리 아이템을 해보자"는 말은 나왔지만, 5년 전의 실패가 떠올라 누구도 선뜻 다음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다시는 예측하지 않는다.'

5년 전, 우리가 고객이 아니었던 '예쁜 쓰레기'를 만들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까'를 고민하는 대신, '이미 검증된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빠르게 성장하는 해외 구독 경제 시장에서 '결제 실패 복구(Failed Payment Recovery)'라는 명확한 시장을 발견했다.


심장이 뛰었다. 이것은 막연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이미 돈이 되는' 입증된 문제였다.

"이걸 한국에 적용해 보자!"


우리의 새로운 미션은 그렇게 정해졌다. 우리는 이 가설 하나만을 들고, 한국에서 이 문제로 가장 고통받고 있을 고객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3년 차 정기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며 이 니즈를 가진 고객사와 연결될 수 있었다.


우리의 질문에, 고객사의 눈이 커졌다.

"그거요? 저희 지금 결제 실패 고객인 거 알면서도 현업이 바빠서 다 놓치고 있어요."



10점짜리 성공, 0점짜리 사업 모델


고객사는 결제 실패 시 일일이 결제 실패 사유별로 템플릿을 만든 후, 복사/붙여 넣기 해서 1회성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로그인에서 결제수단 변경 메뉴를 찾아가야 하니 전환율이 낮았다. 더 큰 문제는, 매출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마저도 일이 늘어나자 현업에 치여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로그인 없는 자동화된 결제 복구‘ 솔루션을 제안했다. 결제 실패 사유에 따라서 자동으로 알림톡이 발송되고, 결제 수단에 문제가 있는 경우 (예. 분실카드)는 로그인 없이 즉시 결제 수단 재등록 가능한 고객별 고유 링크를 제공했다. 복구될 때까지 시나리오별로 알림이 자동 발송되어, 사람이 노력하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고객사는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침, 서비스 개편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기존 시스템에 기능을 끼워 넣는 '추가 개발'을 통해서 적용할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객사의 결제 복구율은 눈에 띄게 올랐고, 팀은 환호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든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짧았다. 우리는 그 '성공'을 복기해 봤다. 3년이나 된 서비스의 낡은 시스템에 우리 기능을 억지로 끼워 넣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맞춤형 개발(외주)이었다.


그날 밤, 사무실에서 누군가 말했다.

"방금 그 고객사는 해냈지만... 만약 우리가 다음 달에 고객 10곳을 새로 계약하면요? 이 지옥 같은 추가 개발을 10번 더 하는 방식으로 우리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침묵이 흘렀다. 불가능했다.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는 '제품'을 만든 게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고난도 맞춤 외주'를 성공시킨 것뿐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영원히 확장할 수 없다는, 우리 사업 모델 자체의 실패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왜? 지옥 같은 성공의 이유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왜 이렇게 간단한 기능 하나 추가하는 게 지옥이었을까?'


나는 "3년이나 된 서비스면 당연히 시스템이 안정화됐을 줄 알았는데..."라는 의문을 품고 고객사 담당자를 다시 만났다.


"솔직히, 지금 뭐가 제일 힘드세요? “

그때 고객의 진짜 답이 터져 나왔다.


"사실.. 저희는 지금 기능 하나 추가 할 때마다 기존 시스템이 문제여서.. 외주도 하고 개발팀 고용도 해봤는데 쉽지 않아서 힘들어요. 우린 IT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


기능 하나 추가할 때마다 왜 문제가 생기는지, 우린 고객사의 시스템을 더 깊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했다.


제품의 가격이 소스 코드 안에 '고정값'으로 박혀 있었다. 가격을 한번 바꾸려면 개발팀이 매달려야 했던 것이다.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고객사에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번거로운 추가 개발 형식으로도 적용할 수 있었던 건, 고객사가 어차피 서비스 개편을 고려하고 있던 ‘운 좋은’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를 들고 세상으로


우리는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대표님, 개편하시는 거, 저희가 맡겠습니다. 'IT를 몰라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요." 그 과정에서 고객사의 많은 니즈를 듣고 또 들었다.


우리는 이 '진짜 문제'를 우리 제품의 새로운 MVP로 삼았다. 그리고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다양한 업종의 반복 결제 사이트 템플릿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결과는? 먹혔다.


우리가 만든 템플릿 사이트에서 ‘진짜’ 결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장이 우리의 ‘해결책’에 돈을 지불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검증된 데이터를 들고 해커톤과 각종 공모전도 함께 나갔다.


"3년 된 서비스가 가격을 코드로 박아두고 있었습니다. 시장에는 IT를 모른 채 고통받는 사장님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 '뿌리'를 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표는 '진짜'를 꿰뚫는 힘이 있었고, 그 힘을 알아보는 투자자가 나타났다. 공모전에서의 활동이 실마리가 되어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투자가 아니었다. 5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당장 '진짜 시장'에서 우리의 솔루션으로 돈을 버는 것이 더 급했다. 워드프레스 템플릿 판매가 막 '먹히기' 시작한 참이었다. 우리는 "아직 투자받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투자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 뒤, 그리고 또 몇 달 뒤에도 꾸준히 연락이 왔다. 그는 우리가 풀고 있는 문제의 가치를 어쩌면 우리보다 더 확신하는 듯 보였다.


그 꾸준함에 마침내 우리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 돈이 있다면, 워드프레스 템플릿 수준이 아니라, 이 지옥 같은 문제를 '제대로 된 솔루션'으로 더 빨리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아닌 우리를 찾아온 첫 번째 시드 투자, 3억 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5년의 긴 터널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증명'의 첫 단추를 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작은 성공은, 거대한 혼돈을 불러오는 신호탄이 되었다.

(7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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