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있으면’이라는 착각이 깨부숴진 순간
3억 원이 찍힌 통장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엑셀 시트에 월평균 비용을 입력하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그렇게 낙관적이기만 한 숫자도 아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3억은 수개월이면 전부 사라지는 돈이었다. 성공의 상금이 아니라, ‘런웨이 내에 다음 성장을 증명하라’는 무거운 시험지였다.
“활성 가맹점, 이번 주 목표는 100개 돌파입니다.”
“월 거래액 1.5억, 딱 3천만 원 남았습니다.”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비대면 바우처 사업과 자체 마케팅 아래 고객사를 모았고, 새로 합류한 동료들과 함께 모든 자원을 ‘성장’에 쏟아부었다. 사무실은 여전히 지식산업단지 내의 저렴한 곳이었고, 급여 수준이 엄청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비전을 보고 합류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제는 구성원들이 고생할 때 금액 걱정 없이 맛있는 밥을 사줄 순 있었다. 10명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고, 문제가 터지면 밤이고 새벽이고 함께였다.
마침내 숫자를 손에 쥔 우리는, 첫 공식적인 투자 라운드에 돌입했다.
투자 라운드를 진행하는 8개월 동안, 나의 세상은 13인치 노트북 화면 안으로 축소되었다. 새벽 3시에도 어두운 집안을 모니터 불빛과 타자 소리가 채우곤 했다.
"이 지표는 어떤 의미를 가지죠?"
"시장의 이런 부분엔 어떻게 대응을 하실 계획인가요?"
투자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담긴 메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착했다. 우리는 즉시 슬랙으로 소통하고 메마른 눈을 비비며 답변을 썼다. 밤낮도, 주말도 없이 곤두선채로 보낸 날들이었다. 10개월간 제품을 만들며 달렸던 열정은, 이 8개월 동안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방어로 모두 소진되었다.
Data Pack, 단계별 IR, 투자 유치 전 회계 실사, 고객사 인터뷰까지. 길고 긴 여정은 계속되었다. 8개월간의 전쟁 끝에, 마침내 통장에 잔고가 찍혔다.
‘입금 2,300,000,000원'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시기쯤에 상상도 못 했던 상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언론에서는 연일 우리의 이름이 담긴 보도자료가 나갔다. 슬랙 채널은 연일 좋은 소식으로 구성원 간 축하하기에 바빴고, 나는 SNS에는 보도자료와 수상 소식이 가득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은 없었다. 사무실은 축제 분위기였다. 모두가 환호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주변의 환호성은 수면 아래로 잠기는 것처럼 아득해졌다. 나는 오직 내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무게였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23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무게.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지난 1년 반의 압박감은 연습 게임이었구나.'
웃고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나 홀로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돈이 많이 생기면 모든 게 더 쉬워지고, 훨씬 수월하게 해결될 거야'
막연했던 나의 생각이 깨부숴지는 순간이었다. 그 깨달음과 함께, 나를 지탱해 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나는 극심한 번아웃과 함께 찾아온 우울증의 첫 번째 얼굴을 마주했다.
나의 내면이 어떻게 무너지든 상관없이, 23억이라는 돈은 회사를 앞으로 밀어냈다. 우리의 첫 번째 행보는 근사한 사무실로의 이전이었다. 이전보다 임차료도 몇 배 비싸고, 위치도 좋고, 번듯한 인테리어를 갖춘 곳.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라면 다들 이런 곳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저 반짝이는 빌딩들이 모두 월말마다 나를 찾아올 거대한 청구서처럼 보였다. 매일 밤마다 불안에 떨며 나 홀로 마른침을 삼켰다.
곧이어 공격적인 채용 공고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이제 다 잘될 거라고 믿었다. 나조차도 애써 그렇게 믿으려 했다.
하지만 시스템 없이 사람과 돈만 부풀어 오른 조직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우리는 곧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진짜 혼돈의 시작이었다.
(8화에서 계속됩니다.)
<울면서, 버티면서, 살아남으면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연재됩니다.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다음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