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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Mar 30. 2022

올드카 에디션

51년 보령 주산 

오래된 차는 직각이다. 과거 디자인의 특징이라고 보면 되는 것인가. 곡선 패널을 찍어내는 원가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인가. 아니다. 미국차들은 곡선도 많은 것을 보면 한국의 올드카 들이 직선인 것은 당시 디자인을 의뢰하던 곳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 뿐. 이 부분에서까지 원가 타령하면서 빈국의 처지를 우선시할 필요는 없다.  암튼 포니가 있었고, 포텐샤가 있었다. 아! 직선 하면 갤로퍼도 있고, 코란도도 예전 모델은 직선 매력 덩어리였다.


51년생 , 호적상의 나이. 백여사의 나이를 유심히 본 적이 처음이라 , 사실 내 나이 또래의 자식들이 부모님의 주민등록증을 대신 들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일상의 일은 아닐 터.  백여사를 모시고 병원에 와서 접수를 하다 보니 엄마의 주민등록증을 만져보게 되었다. 핸드폰 개설해드릴 때 빼고는 아주 오랜만인가. 사실 사진까지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니까. 사진은 지금보다 한참 전에 찍으신 듯하다. 무탈하실 때,라고 하기에는 백여사의 삶이 어디 무탈함의 구간이 있었는가. 


충남 보령 주산면. 지금은 보령시. 예전에는 시골. 지금도 시골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신 분의 유년은 그다지 재미없을 것. 가만있자. 육이오 동란 전후에 태어나셨으니 시끌벅적한 시절에 태어나셨네.  십 대 후반부터인가. 생채기를 이겨가며 살아오신 때가.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가발공장에서 공순이로 일하면서 이십 대를 맞이하고, 별반 잘난 것 없는 (사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사기결혼에 준하는 거짓말을 하신) 아버지를 만나 중매 반 연애 잠깐 으로 연애경험 전무하신 상태로 시집을 오시고, (이런 이야기들은 증거가 없다. 증언뿐이다. 그것도 매번 달라지니 효력은 없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아이 둘을 낳으시고 , 남의 집 살이만 전전하다가 아주 잠깐 집주인도 되어봤지만, 어디 이 집안 기운이 '부를 지킬 수 있는' 따위인가. 전부 다 망실해야 어울리는 집안인데. 그 시절 살아오신 우리네 부모님들 중 "놀멘 놀멘" 살아오신 분이 어디 있을까. 백여사도 그 정도의 삶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물론 지금껏 살아오신 이야기를 단편 단편으로 나누면 공포영화 몇 편을 찍을 수 있을 각본이다. 


심장외과에서 두 번의 심장 체크를 했다. 한 번은 심장박동을 일부러 스트레스 줘서 체크하고, 한 번은 정상일 때를 체크하는 검사였다.  산속에 무덤가에서 쑥을 캐오라고 해도 겁을 안내실 것 같은 백여사도 당신의 몸에 인공적인 스트레스 , 그것도 심박을 강제하는 주사를 맞으시고는 매우 놀라신 듯했다. 

검사를 마치고, 모시고 나오는 길. 그동안 잘 걷던 백여사의 심장에 어떤 신호가 온 것인가. 걱정스러웠다.

아파트 입구에서 가게까지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고바위는 아닌데 , 그곳을 오고 가는 것이 힘든 것인가.

그곳을 오고 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도는 생각 때문에 힘이 드신건 가. 그 걱정의 대부분은 내 영역인 것 같아서 말이다.  한 살 , 두 살이 되기 전 즈음인가. 그렇게도 속을 썩이던 남편을 찾아 이곳저곳 머리 산발 한 채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보니 등에 지고 있던 아이가 젖을 물리지 못해 곯아버렸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게 평생의 업'처럼 남아 저리도 손을 떼지 못하고 사시는 것 같아 내가 일부러 그 이야기 나올 때마다 최대한 멀리서  들으려 했다. 


다행한 일이다. 일단은 약 처방으로만으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는 것. 심장을 자극하지 않는 것. 무심하게 산다는 것. 그렇게 무심하게 하루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 지금은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51년 산 올드카.  그렇게 세련된 기종도 아니고, 험한 길을 많이 달려서 그런가. 차체에 잔흠집도 많고. 자잘한 소음도 많다. 좋은 길만 달려왔으면 엔진 소리도 자기 아이덴티티가 확실할 텐데, 어쩔 때는 화물차처럼 짐도 싣고 달리고, 어떤 날은 사람만 가득 싣고 먼길을 몇 번씩 달린 적도 있고. 차체가 살짝 기운 것처럼 삐그덕 소리도 나긴 하는데. 그래도 아직은 엔진 정비를 할 올드카는 아니다. 챙 넓은 모자 쓰고 도로 위에 나서면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더라도 순순히 속도를 내어줄 수 있는 올드카. 아직 좋은 도로를 달려보지 않았다. 삐뚤빼뚤 길이 안 좋았다. 좋은 길  좋은 날씨에 달리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런 날이 "좋은 날" 아닌가.

51년 백여사에게 봄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화창한 봄이 오길 기원한다.  물론 "인생은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다"라고 늘 말버릇처럼 이야기하신다. 아직 엔진이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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