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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Dec 21. 2022

누군가의 다마고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거울을 만나고 있다.

지금은 아침 출근 시간이 달라져서 만날 수 없는 것 중에 동네 커피가 있다.

묵현리 골목 안에 있는 커피집. 뜨거운 한날 산책 중 발견한 곳인데 인기척이 상대적으로 드문 빌라촌 사이에 있는 집. 개울가 앞에 있는 독특한 지형의 가게. 손님이 한 번도 꽉 차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커피를 내려주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주인인가? 주인치고는 너무 젊은데? '아버지가 건물주인가?' 커피 내려주는 머신은 무게까지 재주는 최신기종. 나머지 기계들도 '누군가 헐값에 내놓은 그저 그런 카페 중고 물품'이 아닌 전부 새것의 향이 난다.  카페 안에 놓인 가구들 중 그나마 아마추어 틱 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케아 전등 정도. 꾸밈새가 꽤나 장사치 적이다. 7평도 안 되는 테이크아웃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는 배울 수밖에 없는 경제규모 차이다. 묵현리 개울가. 빌라촌과 대여섯 동의 아파트가 고객일 것이고, 검색창에서 배운 "배후상권"의 규모로는 사뭇 차이가 나는 숫자다. 게다가 이 동네 빌라촌, 아니 이 오래된 산동네의 정서 상 봉지커피가 아닌 뜨거운 증기로 기꺼이 김을 쐬어 내려낸 아라비카 이상의 원두, 더블 샷 같은 커피는 '아무래도 상권 분석에 실패한 전형적인 청년 가게' 정도로 밖에 안보였다. 처음에 이 가게에 들른 것은 그 산동네 뒤에 있는 작은 절에 들려서 구경하다가 내려오는 길. 잠시 쉬었다가 마석역 쪽으로 다시 가보려고 들린 잠시 쉼터. 기꺼이 시킨 두 잔의 커피. 이케아 조명 놓고 앉아서 커피 한 모금을 넘기다 말고는 나도 모르게 저 서투른 청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니 왜 이 묵현리 개울가 마을에 박이추 선생이?"  농담 조금 섞어서 말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생긴 것과 달라서 이질감이 든다'  머 그런 말 말이다.

커피가격은 3000원 후반. 이 커피는 이후 내 출근길의 커피가 되었다. 와이프도 인정하는 맛이니 일단 두 사람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 생겼다. 기어이 1킬로 이상되는 이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이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올라가는 일이 빈번했으니 말이다. 이 청년 기이하고도 궁금했다. 손님이 가득한 꼴을 본 적이 없는데 , 늘 가게는 깔끔하고 손 타는 절박함이 없다. 이 청년 다른 건 모르겠는데 , '문 여는 시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킨다. 평일 11시.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 가게에서 커피를 사고 싶었지만 운 좋게 라도 일찍 여는 일은 없었다. 참으로 성실하게 지킨다. 휴일마저도. 그러니 내 궁금증을 하나로 귀결되었다. '당최 너는 월세를 어떻게 벌고 있냐'. 그동안 몇 번의 방문. 그리고 이 한적한 마을에서 맞은편 공사장 아저씨들 말고는 우리가 가장 충성도 높은 고객일터,  속으로만 말을 놓았다. 적립 번호를 외운 것을 보니 단골로 인식하고 있는 듯.  우리도 꽤나 늦은 출근을 하는 자영업자인데 , 이 빌어먹을 자식. 아 아니다. 뉘 집 귀한 아들인데 욕을 할 수는 없고... 그저 궁금해졌다.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기 위해 (돈 내려고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갈급함이 3800원을 넘었다. 이쯤 되면 얻어먹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으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고, 혹은 분명히 쉬는 날이라고 써놨는데도 굳이 그 개울가로 돌아서 출근하는 것. 커피 향에 졌다.

이 청년 어떤 날은 카드기가 고장 났다고 허둥댄다. 와이프가 차 안으로 와서 현금을 다시 가져간다. 어떤 날은 적립이 안된단다.  머 중요한가. 커피만 잘 나오면 되지. 나는 그렇게 스마트한 소비자가 아니다.

이렇게 몇 주가 지나니 , 적립 안 된 날은 다음번에 추가 적립을 해주고, 와이프의 적립번호도 내 카드결제에 맞춰 입력해 준다.  처음에 커피 한잔을 시키면 '에 일단 카드기를 먼저 만지고 순간 당황하면서 원두 가는 기계를 누르고 동시에 카드기를 다시 보고, 곱게 갈린 원두를 저렇게 무자비하게 눌러 숨을 못 쉬게 만들고, 다시 카드기를 바라보고,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식기를 기다리다가 녹진하게 추출되는 한 방울까지 다 거두어 미지근해진 물에 넣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과정으로 커피를 만들어 나에게 내미는... 아 그러면서 다시 카드기를 바라보고 있는'이 과정이, 이 종잡을 수 없는 프로세스가 단순해지고 , 중간중간 다른 일을 수월하게 해내는.. 그러니까 먼가 성장한 듯한 모습이 보이면서 말이다.


대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물론 년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삐삐 크기의 장난감에 픽셀로 된 무엇인가가 움직이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 몬스터가 미션인지 동물농장인지 캠페인을 깨면 그것이 , 그 디지털 내용이 성장한다고 서로 약속하고 즐기던 게임. 이름이 '다마고치'였다. 각자의 애정을 디지털에서 발현하던 기이한 게임.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버려두면 성장하고 , 성장하는 것 말이다. 2진수 화면에 애정을 주는 것으로도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시간이 보람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것도 하나의 생산이다. 유물론에 근거해서 봐도 말이다. 결과물이 기이해서 그렇지. 내 애정을 먹고 자랐으니 쉬이 죽이지도 못해.  내 시간을 넣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 커피를 당분간 지배하는 이 청년을 '다마고치'라고 불렀다. 아침이면 오늘의 첫 번째 화두는 미납된 속도위반 딱지도 아니고, 오늘 미배송 된 택배도 아니다. 와이프와 출근준비를 하면서 바라는 첫 번째 바람. 오늘은 다마고치가 11시에 문을 열 것인가. 그 시간을 넘으면 우리도 지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도 충분히 게으른 출근인데 어찌할 것인가. 다마고치 사장은 나의 바람을 늘 이겼다. 본인의 성장시간에 어긋남 없이 11시 이후에도 문을 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아니! 이 정신 나간 놈은 장사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와이프는 그냥 웃고 만다. 기실 자기의 남편도 저렇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문열었던 작은 가게. 그 가게에 들르던 몇몇 손님이 남기고 갔던 말이 생각난다.

" 영업을 하는지 늘 닫혀있어요. 내가 퇴근하면 말이지요"

"남자 사장님이 계시면 꽃게 파는 것 같지 않고 카페 같아서요 안 들어오게 돼요"

꽃게 다듬어 달라고 하면 "할머니 사장"을 불러서 해결하는 모습까지.

이건 뭐 돈 내고 가는 사람들이 인내심이 많은 것인지. 가끔은 출근하는 그 늦은 아침에 굳이 물건을 사겠다고 기다리는 모습까지 말이다. 나 역시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어설프고 투박한 '옷이 안 맞는 사장'이었을 것이다. 성장하기를 기다리면서 기꺼이 물건값을 지불하는 역할을 하는 1인 말이다.


애정의 형태와 이유는 다종다양하지만 , 나는 기꺼이 기다림과 어색함을 감내할 가게가 생기는 것이 좋다.

가게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 가게의 성장에 동참할 수 있다.

물론 내 돈을 내면서 말이다. 어떤 가게는 그 전 가게터의 추억일 수도 있고, 사장이라는 사람과의 친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별 상관없는 하루였는데 그 하루부터 내 일상이 바뀐 날. 그런 날 만난 가게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내 출근 시간은 매우 당겨져서 안타깝게도 당분간 내 다마고치의 "그 커피"는 마실수가 없다.

지금은 내가 이 동내의 새로운 '다마고치'가 되기 위해서 애벌레부터 (사실 다마고치를 안 해봐서 시작점을 모른다.) 진행 중이니 말이다. 하루 짬이 나서 우연을 가장한 그 첫날처럼 개울가 카페를 들렀을 때, 다마고치 청년이 크게 레벨업을 해서 , 아니 그래도 그것만은 변함없이 그때처럼 말이다. '그 커피' 한잔을 만날 수 있다면.

그 하루를 기대하고 있다. 요즘 애벌레 노릇 하고 있다 보니 다마고치 청년 생각이 났다. 어슬렁어슬렁 , 투박하고 서투르고 , 당황하고 초조해하고. 그런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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