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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Aug 15. 2021

퇴근길, 뜻밖의 행운을
만나고 싶다면

나만의 비밀스러운 나라를 찾고 있다면 ③ 스리랑카


'스리랑카'...?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스리랑카’의 보편적인 이미지란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나라’가 아닐까. 사실 나 역시 이곳을 여행하기 전 까지는 단순히 인도와 비슷한 느낌의 후진국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도 ‘콜롬보’에 도착하자마자 정돈된 거리와 고층 빌딩 숲의 개발된 모습이 동남아의 여느 대도시와 더 비슷해서 놀랐고, 다이내믹한 인도 여행 직후에 만났기에 그와 대조되어 더욱 천국 같이 느껴졌다. 내게 스리랑카란 장기 여행 막바지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 같은 국가였던 것이다.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의 ‘Serendipity’의 어원이 스리랑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스리랑카는 대한민국 면적의 2/3로 규모는 작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볼거리가 다채롭다. 주요 관광지만 보아도 바다(갈레), 시골 마을(엘러, 하푸탈레), 역사가 오랜 고도(캔디), 문화 유적(시기리여)과 사파리(담불러)를 짧은 동선으로 모두 만날 수 있는 여행 종합 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신선한 해산물과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해서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도 친절하며(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현지인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그 기억이 나빴을지라도 미운 정 때문이었는지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차(茶)를 좋아해서 세계 3대 홍차 ‘우바’의 생산지인 실론티의 고장에 온 것이 가장 기뻤다. 한국에서는 거의 5배가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는 품질 좋고 예쁜 차들이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니, ‘믈레즈나’와 ‘베질루르’ 상점을 통째로 옮겨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리랑카 여행의 매력은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수도 콜롬보에서 남부 해안 휴양지인 ‘갈레’로 가는 기차표는 2등석 입석표였기에 두 시간 반 동안 서 있을 적당한 자리를 찾던 중이었다. 그때 맞은편에 서 있던 아저씨가 뒤쪽을 가리켜 돌아보니, 마치 망망대해로 순간 이동을 한 듯 햇살 아래 찬란히 빛나는 바다가 코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말 그대로 철길이 파도 옆에 바짝 붙어 지났으며 낡은 기차에는 문이 없었기에, 아무런 가림막 없이 생생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석양 무렵 갈레의 요새 위에 올라 잔잔한 파도가 육지를 부드럽게 감싸는 인도양의 로맨틱한 면모를 느꼈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근처 어촌 마을로 가서 스리랑카 여행을 꿈꾸게 했던 장면 중 하나인 ‘스틸트 피싱’을 볼 수 있었다. (스틸트 피싱은 바다 위 세워 놓은 장대 위에 앉아서 고기를 잡는 전통 낚시법이다. 현재는 고기 잡기보다 관광객에게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근방의 ‘아항가마’와 ‘유나와투나’ 해변의 눈부신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곳이 ‘몰디브’만큼, 아니 아직 너무 유명하지 않기에 그 보다 더 매력적인 신혼 여행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창 밖으로 끝없는 차 밭과 시골 마을을 볼 수 있는 ‘하푸탈레-캔디’의 기차 구간이 가장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시간 동안 압축된 아름다움을 보여준 ‘엘러-하푸탈레’ 구간이 더 좋았다. 기차가 철커덩 철커덩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정겨운 경적 소리를 내며 느린 속도로 마을 구석구석을 지나면 마음이 차분해졌고, 눈이 시원해지는 초록의 차 밭과 그 속에서 차 잎을 따는 아주머니들, 흰색 교복을 입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학생들을 보면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기차 안에서 다양한 군것질 거리를 팔고 있는 아저씨와, 옆 좌석에서 엄마 품에 안겨 웃고 있는 예쁜 아기까지, 스리랑카의 기차 안에서는 우리가 기차 여행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낭만을 만날 수 있었다. 



‘하푸탈레’는 끝없이 펼쳐진 계단식 차 밭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그곳의 ‘립톤싯’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기 위해 무려 새벽 5시에 일어나 뚝뚝을 타고 40분 정도 달려 도착했는데 일출은커녕 잔뜩 낀 안개에 차 밭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전 날의 눅눅해진 마음을 위로해 주듯 강렬한 햇살이 잠을 깨워 반가운 마음에 밖으로 나섰고 햇살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빛나는 차 밭을 천천히 산책했다. 그러다가 잠시 걸음을 멈춘 뒤 심호흡을 하며 명상을 시작했다. 문득 회사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만약 순간 이동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면, 딱 10분만 이곳으로 왔다면 좋았을 텐데’ 행복을 느끼는 일이 더 많았던 여행 중에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 행복한 기분을 내 인생의 힘든 순간에 나눠주고 싶다고.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내내 ‘왜 이토록 다채로운 매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다른 동남아 국가의 여행지처럼 유명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그치지 않았다. 단지 2주 정도의 짧은 일정을 잡고 여행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기에 인사말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나라, ‘안녕’은 장수하라는 뜻의 ‘아유보완’, ‘고마워’는 ‘이스뚜띠’. 다시 스리랑카에 방문하여 이 사랑스러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 2018년 11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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