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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루카 Dec 06. 2021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Crach Course Philosophy 제22화 『Where Does Your Mind Reside?』를 요약 번역해 봤습니다.


1838년 9월 13일,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노동자가 머리를 쇠막대에 관통당하는 사고를 입습니다. 그는 성인 키에 가까운 막대에 찔렸음에도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게이지는 사고 전과 후가 달랐습니다. 사고 이전에는 근면하고 사교성이 좋았던 반면, 사고 이후로는 급격히 난폭해졌다고 하죠.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례는 심리학 및 신경학 연구자들, 그리고 철학자들에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 신체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던 성격이 실제로는 영향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이죠. 이 때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존재할까?


환원적 물리주의


오늘날에는 누군가가 머리 부상으로 성격이 급격히 변했다 해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과학계에서는 환원적 물리주의, 즉 우주만물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의 육체, 뇌,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등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피니어스의 성격변화도 뇌 속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죠.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할 때 환원적 물리주의를 따르는 셈이 됩니다. 환자의 뇟속에 변화를 일으켜야 기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믿음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체이원론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우리 신체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있어도 마음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의심할 수 있는 존재와 의심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곧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실체이원론은 이를 확장해서 우주가 물리적 존재와 정신적 존재로 나뉘어져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상호작용설


실체이원론자들은 뇌와 같은 물질로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신이 순수 정신이라면 돌멩이는 순수 물질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하기에 정신과 물질을 동시에 갖습니다. 게다가 이 둘은 우리 안에서 서로 협력하기까지 합니다. 이게 바로 상호작용설입니다.


나는 머릿속으로 어떠한 목표를 세운 후 육체에 목표 이행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소파에 앉아 있다가 딸기잼을 바른 빵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몸이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하는 식인 거죠. 마음이 사람의 자의와 무관하게 육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로 고생하다가 결국 앓아 눕는 환자들의 경우처럼 말이죠.


역으로 우리 신체가 정신에 영향을 줄 때도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남의 말에 집중이 안 되고, 고양이 털을 쓰다듬다 보면 나빴던 기분이 풀리기도 하죠. 이처럼 상호작용설에 따르면 우리를 이루는 두 실체인 마음과 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심신문제


하지만 정신은 어떠한 방법으로 물질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이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심신문제라고 불립니다. 내 몸 안에 별개로 존재하는 마음은 어떻게 명령을 수행하고 또 역으로 내게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내 마음이 내 몸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음은 왜 다른 몸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 데카르트는 우리 마음이 뇌 하부의 솔방울샘에 위치하며, 거기에서 상호작용에 참여한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솔방울샘도 엄연히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은 심신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원론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직면했습니다. 이 중 일부는 물리주의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일부는 인간 경험이 뇌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메리의 방


현대 호주 철학자 프랭크 잭슨은 우리에게 메리라는 여성을 소개시켜 줍니다. 메리는 흑백으로 도배된 방 안에서 흑백 텔레비전 만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메리는 방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신경생리학을 전공해서 빛, 광학, 색의 원리, 감각기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지만 그것들을 직접 보지는 못합니다.


이 때 메리가 방에서 풀려나 생애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다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잭슨은 환원적 물리주의자들에게 화두를 던져 줍니다. 빨강을 직접 보는 행위와 빨강에 대한 지식을 얻는 행위는 서로 다릅니다. 만일 세상이 물질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메리는 빨강을 직접 봤을 때 딱히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는 셈이 됩니다.


퀄리아


퀄리아는 물질주의자가 설명할 수 없는 주관적 경험의 순간들을 뜻합니다. 우리는 발가락을 찧거나, 근사한 피자를 한 입 물거나, 믿는 친구에게 배신 당할 때 퀄리아를 겪습니다. 메리도 방 밖으로 나와 색깔들을 마주했을 때 퀄리아를 경험했을 겁니다.


물리주의자들은 메리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반드시 새로운 것을 배웠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반박합니다. 물리주의대로라면 메리는 색에 대한 지식에 통달했기 때문에 색을 직접 본다고 해서 새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물리주의자들은 정신의 물리 작용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잭슨에게 반박할 자료도 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전망만 믿고서 이원론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이원론자와 심신문제의 역사는 몇 백 년에 이르는 반면, 물리주의자의 역사는 백 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추후 어떤 사실이 밝혀질지는 더 두고 볼 일입니다.


부수현상설


심신문제의 해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메리의 이야기는 이원론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원론자 중 몇 명은 몸이 마음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마음이 몸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부수현상설을 채택했습니다. 부수현상설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는 믿음, 욕망, 성격을 형성하지만 몸에 어떠한 방식으로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신신비주의


현대 영국의 철학자 콜린 맥긴이 주장한 신신비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머리로는 의식의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학습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의식의 문제는 예외입니다. 이는 우리의 뇌와 의식이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고를 통해 마음을 이해하지만 뇌와 몸은 객관적 연구를 통해 이해합니다. 이 두 가지 이해방식은 서로 조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사색에 빠진들 뉴런작용을 관찰할 수 없고, 제아무리 과학 실험을 한들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색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뇌로는 두 가지 방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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