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시간 그리고 딸에게
한국에 들어와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많지 않은, 고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
7~8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막상 만나니 어색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이니까.
한 명은 여전히 말수가 적었고,
또 한 명은 특유의 웃는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마다 매점 가자며 손을 끌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 셋은 마치 시간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가는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흔이 넘으니,
이런 시간이 사소하면서도 아주 깊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새로운 인연도 많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씩 알아가야 하고, 함께 경험을 쌓아야만 가까워진다.
그런데 오래된 친구는 다르다.
설명도, 노력도 필요 없다.
그냥, 안다.
물론 다들 변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성격, 말투, 웃는 방식은
마주하는 순간 금세 떠오른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 판단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이미 오래전,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니까.
세월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그 시간을 견뎌낸 관계는 더욱 귀하다.
그래서 가족,
그리고 오래된 친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나는 존재가 된다.
그날,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편하고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일하고.
그럼에도 우리의 과거는 겹쳐 있었고,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고,
본 지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나를 생각해주고
먼저 챙겨주려는 그 마음.
어른이 되면 이런 무조건적인 따뜻함은
더 드물어진다.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낯선 사람’으로 시작하니까.
그래서 문득 바람이 생겼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 알지 못해도,
오래된 친구처럼 다가가고
판단 없이, 편안한 동행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한 관계를 찾고,
그걸 꾸준히 쌓아갈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행복이고, 성공 아닐까.
관계가 주는 기쁨,
보람,
그리고 설렘은
그 어떤 성취보다도 깊다.
우정이란,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끈끈함,
신뢰,
때 타지 않은 감정.
그건 살아가며 반드시
한 번은 품어야 할,
인간적인 감정이 아닐까.
요즘은 내 딸을 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아이도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으면.”
친구든,
나중에 함께할 누군가든,
그 안에서 사랑과 따뜻함,
그리고 순수함을 느낄 수 있기를.
그 감정이
이 세상을 살아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내가 자라온 환경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해졌다.
나는 중학교 때,
핸드폰도 없이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말로 못한 감정은
글로 천천히, 조심스레 담겼고
그 편지를 건네던 손끝엔
마음이 있었다.
요즘은 그 모든 게 메시지 하나면 끝이다.
빠르고 간편하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이 닿기란 쉽지 않다.
속도가 감정을
앞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에서도,
관계 안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따뜻했으면 좋겠다.
필요한 건,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저 오래된 친구처럼
곁에 오래 남는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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