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봐도 두렵지 않다

마흔에 배운다.

by 마인풀 라이프


마흔이 되면서 분명해진 것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예전엔 남들의 감탄사에 쉽게 마음이 흔들렸다. “다들 좋다던데”라는 말 앞에서 내 기준은 자주 뒤로 물러섰다. 지금도 호기심은 남아 있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고, 타인의 세계를 구경하는 일도 여전히 즐겁다. 다만 더는 타인의 박수에 내 방향을 맡기지 않는다. 박수는 고맙다. 방향은 내가 정한다.


식탁 위에서 특히 선명해졌다.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는 대체로 훌륭하다. 그러나 늘 정답인 건 아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나답다는 감각이 허기까지 달래는 순간이 있다. 그날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고를 때, 맛은 혀에서 끝나지 않고 존재감으로 옮겨 붙는다. 한때는 FOMO, 놓칠까 봐의 두려움에 이끌려 유명한 요리를 시켰다. 접시는 흠잡을 데 없이 맛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속 깊은 곳의 만족은 100이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타인의 별점은 나의 공복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바에서도 같은 수업이 이어졌다. 추천 칵테일은 대부분 무난히 좋다. 하지만 내 입맛이 아니면 정중히 “괜찮아요”를 말한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한 잔을 고른다. 이 작은 ‘노’는 미각의 문제가 아니다. 취향의 경계, 즉 ‘나’의 선을 그리는 일이다. 누군가의 호의를 거절하는 게 미안했던 예전의 나는, 사실 상대보다 나에게 미안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이제는 안다. 취향은 고집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사람 사이에서도 배운다. 어떤 만남은 내 안의 불씨를 살리고, 어떤 만남은 보이지 않게 에너지를 빼간다. 예전엔 ‘예의’를 이유로 많은 신호를 덮었다. “뭐, 다 그런 거지” 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반복해서 피곤해지는 관계는 우연이 아니라 패턴이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벼운가 무거운가. 대화 이후의 나, 확장되었나 수축되었나. 이 질문이 가장 정확한 나침반이었다. 관계의 품질은 대화의 분량이 아니라, 대화 후에 남는 나로 측정된다.


물론 주관이 또렷해질수록 만족은 커지지만, 예상 밖의 놀라운 기회는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작은 협정을 맺었다. 90/10 규칙. 아흔 퍼센트는 나답게 고르고, 열 퍼센트는 의도적으로 낯섦을 초대한다. 단단함을 지키되, 굳어지지 않기 위한 틈을 남겨두는 일. 삶은 그 틈으로 드나든다. 낯선 메뉴 하나, 가본 적 없는 골목 하나, 익숙하지 않은 주제의 대화 하나. 나의 중심을 놓치지 않은 채로, 세상과 다시 섞이는 법을 배운다.


FOMO는 그렇게 JOMO(joy of missing out)로 바뀌었다. 놓쳐도 기쁘고, 빠져 있어도 평온하다. 무엇을 놓쳤는지가 아니라 무엇과 함께 있었는지가 나를 만든다. 선택이란 본질적으로 배제의 예술이고, 남김이 아니라 남김새가 나를 설명한다. 오늘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 모양이 곧 내 하루의 윤곽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자기 취향대로만 살면 사람이 점점 굳어지지 않나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굳어짐은 취향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작은 두려움을 껴안은 채, 내 선택의 결과를 내가 감당하기로 한다. 실망이 오면 감당하고, 즐거움이 오면 감사한다. 자유의 무게를 내 쪽에서 든다는 약속이 나를 굳히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만든다. 단단한 중심과 유연한 가장자리.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마흔 이후의 과제다.


하루의 장면을 떠올린다. 메뉴판 위로 떨어지는 손가락의 그림자, 포크를 들었다 잠깐 내려놓는 그 짧은 망설임, 바텐더의 “오늘은 이게 핫해요”라는 제안에 내 혀끝에 먼저 떠오르는 지난여름의 산미, 모임이 끝난 뒤 귀가하는 발걸음의 탄력. 이 사소한 감각들이 쌓여 나의 취향 지도를 만든다. 그 지도는 나를 좁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걷기 위해 필요하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때로 무력하다. 어디로 갈지 아는 힘이 하루를 아름답게 만든다.


취향은 유행을 소비하는 기술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을 배분하는 철학이다.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고, 누구와 시간을 쓰는지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일상적 대답이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한 잔을 고르고, 누군가를 만난다. 이 반복이 곧 우리의 인생이 된다. 그러니 선택은 작아 보이되 결코 작지 않다.


오늘의 나는 이렇게 적어둔다. 추천은 고맙다. 선택은 내가 한다. 그러나 가끔, 일부러 길을 돌아본다. 내 몸의 신호와 마음의 속도를 맞추어 천천히 걷는다. 그 우회로에서 뜻밖의 창이 열린다.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보이고, 낯선 것이 친해질 여지를 얻는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욕망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이 명료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10%의 우연을 초대한다.


단단해지되 굳어지지 않기 위해.

유명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내가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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