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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Apr 08. 2024

이름이 왜요?

우리 아이 이름은 알아서 할게요.

   아이들 건강검진을 갔다. 초등학생은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구강검진을 비롯한 간단한 검사를 한다. 체중, 몸무게, 소변검사, 시력검사 등 간단한 검사를 하고 미리 작성한 문진서를 배경으로 담당 선생님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큰 아이 시력이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특히 걸리는 건 양쪽 시력차다. 작년만 해도 별 문제 없었는데 0.3이 난다. 문진서에 그에 대한 질문을 적었다. 시력차이가 있는데 혹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적었다. 아이가 영상을 볼 때 누워서 한쪽 눈은 찡그린 채로 본다던가, 어두운 곳에서 책을 보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생활 습관에 대해 의사 선생님의 입을 빌려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담당의사 선생님은 "Hello." 영어부터 하신다. 모두 다 웃으면서 한국말할 수 있다 했다. 아이의 이름을 보면서 "이름이 너무 길어. 한국 이름으로 못 바꿔요?" 묻는다. 맞다. 우리 아이 이름이 한국인 이름에 비해 길다. 그런데 그게 건강검진과는 무슨 상관인가? 진지하게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얼버무리려 하니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짧은 이름을 좋아해서 이름은 두 글자나 세 글자를 좋아해요." 그러더니 아이 이름에서 3글자 영어 이름을 발견한 다음에 "아, 영어 이름 있네. 이걸로 부르라고 하면 되겠구나." 하신다. 아이들이 듣더니 웃는다. 이미 집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은 있는데 영어 이름은 아니다. 남편 나라 이름으로, 나이지리아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잘 사용하지도 않는 영어 이름을 찾아서 그 이름으로 하라니 웃긴 모양이다.


   결국 이름이야기만 하다가 아이들의 건강검진은 끝이 났다. 내가 처음부터 궁금했던 것에 대한 대답은 듣지도 못한 채 마무리가 되었다. 내 아이들이 한국 아이였다면, 한국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면 건강검진 때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젤리나 졸리의 풀네임을 찾아보면  안젤리나 졸리 보이트(Angelina Jolie Voight)로 총 9글자다. 그녀에게 한국에서 인기가 있으려면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안 되니 그녀에게도 이름을 바꾸라 할 것인가?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의사 앞에서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이상실한 표정과 벌겋게 된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진 상태로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밖을 나오자마자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아이들에게는 오늘 일에 대해서는 잊으라 했다. 아이들에게 뭐라 덧붙여 이야기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횡설수설을 한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실제로 외국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나이지리아 이름은 아빠가, 영어 이름은 엄마가 고민 끝에 고른 이름이라 말해줬다. 이름이 건강검진의 체크 항목이었던 그날, 그날을 아이들 기억에서 지워주고 싶었다.


   우리 아이 이름이거든요? 이름이 길든, 짧든 무슨 상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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