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의 쓸쓸함

교사의 무조건적인 사랑

by 코랄코튼




학생들에게 멋진 교사이고 싶었어요. 기억에 남는 교사이고 싶었고, 고마운 교사이고 싶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교사이고 싶었어요. 내심 내 진심으로 먼저 다가가고, 먼저 배려하고, 먼저 나눠주고, 먼저 사랑한다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어요.


역시나 학생들은 그런 저를 알아봐 주었고, 고마워했고 좋아해 주었어요. 마치 돈독해진 관계에서 제가 더 잘해주거나, 더 도움이 되거나, 더 사랑하게 되면 내심 제가 그 학생에게 최고의 교사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뭐든지 선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항상 그 선을 넘었을 때 제 표현에 비해, 제 마음에 비해 학생에게 돌아오는 피드백은 부족했어요. 그 이전까진 저의 작은 노력에도 크게 알아봐 주고, 저의 작은 섬세함에도 크게 고마워하던 학생들은 이상하게도 저의 더 큰 노력에, 더 큰 섬세함에 무조건 더 큰 반응을 보여주지는 않았요. 그렇게 관계를 의식하는 순간 괜히 섭섭함을 마주했어요.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그 정도까지 해줬는데'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 그 학생이 다른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사랑해요!'라는 표현을 쓰기라도 한다면 전 마음이 무너지곤 했어요. 무슨 짝사랑도 아니고 학생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이에요. 제가 그 정도였다니.. 시무룩해지고 유치하게 괜히 학생에게서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했어요. 삐진 것이죠. 그리고 그 삐짐도 안 알아주면 삐졌다고 티를 냈어요. '저 선생님한테 가~ 넌 저 선생님이 더 좋잖아~' 그럼 학생이 오히려 저를 달래줬어요. '아이~ 왜 그러세요~선생님도 좋죠!!' 그런데 저에겐 '선생님도'는 큰 위안이 되지 않았어요. 그냥 또 마음을 덜 줘야지. 하고 선을 긋기 위한 다짐을 할 뿐이었어요.


'선생님은 쟤를 더 좋아하시잖아요.' 어느 날 어떤 학생이 그랬어요. 저는 순간 놀랐어요. 선을 지키면서 많은 학생들을 골고루 지켜보고 함께하고 있던 저에게 특별함을 느끼고 싶은 학생의 표현이었어요. 제가 이전에 학생들에게 느꼈던 질투가 느껴졌어요. 이 학생이 어떤 기분에 얘기를 한 건지 전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저 역시 똑같이 '아니야~ 선생님은 너도 좋아해~'라고 해버렸죠. 이렇게 한 학생도 저에게 관계의 선을 그어버리도록 하고 말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학생의 아버지를 뵈었어요. 학생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아버지시다 보니, 학생이 비행 행동을 해도 사랑으로 보듬어주셨고, 학생의 비행을 함께하는 친구들을 더 따뜻하게 감싸주셨죠. 그리고 학교에 자주 오셔서 친한 친구들의 간식을 매번 챙기셨어요. 그 친구들은 그 학생의 아버지를 스타처럼 생각했고, 부러워했어요. 학생의 아버지는 그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제 눈에는 한편으로 사랑이 과해 보일지 몰라도 어느 다른 부모처럼 사랑이란 명목하게 방황하는 아이를 방에 가둬버린다던지, 통금시간을 엄하게 주고 어길 시 벌을 주거나, 친구를 따로 만나 싫은 소리를 해서 떼어 놓거나,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에 일부러 집어넣거나 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학생의 아버지를 응원했죠.


하루는 속상해하시는 학생의 아버지와 운동장을 돌며 대화를 나눴어요. 무슨 일 있으시냐고 여쭤보니 학생에게 그렇게 한 걸음 뒤에서 사랑을 다하며 기다리는데, 이렇게 고생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거나 다시 원래의 착한 모습으로 도통 돌아올 기미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식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너무 속상하면서 화가 나기도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씀에서 제 모습이 느껴졌어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는 초임 교사 때 일이었지만 제가 겪은 고민을 학생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을 느꼈어요. 내리사랑의 쓸쓸함에 대해서 말이죠. 그 점에 있어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어요.


저 혼자 고민할 때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문제였는데 막상 3자에게 비슷한 입장의 고민을 듣고 나니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어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건 어떠세요? 분명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학생은 잘 알고 있어요. 저한테도 얘기한 적이 많고요! 하지만 아버지께는 표현하지 못한 건, 아직인 거예요. 아직 표현을 못한 거죠.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받기만 해서 죄송해서, 그리고 아직 부끄러워서 표현을 못하고 망설이는 거죠. 가까우면 오늘, 아니면 내일, 아니면 1년 뒤, 5년 뒤, 10년 뒤 혹은 나중에 잊힐만할 때라도 그 감사함을 표현할 준비가 된 그 어느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요? 학생이 타인에게도 수 없이 표현한 그 감사 표현이 어느 날인가 아버지에게 닿는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기다려줄 수 있으시죠?'


무슨 소리인지 제가 말하면서도 헷갈렸어요. 하지만 학생의 아버지는 공감해주셨어요. '그래요, 내가 너무 조급했나 봐요. 우리 아이가 날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내가 힘들다고 조급했던 거예요. 내 아이가 지금 이렇게라도 해주는 게 어딘가 싶어요. 욕심을 냈던 거 같아요. 내가 어떤 걸 바라고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닌데 말이죠.' 여기서 저도 깨달았어요. '내가 학생에게 욕심을 냈구나. 내가 어떤 걸 바라고 사랑한 게 아니면서, 난 그 자체가 좋았던 건데 나도 힘들었었나 보다. 나 스스로가 잘하고 있는지, 좋은 교사인지 확신이 필요했었나 보다.' 학생에게 제 교사로서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걸 알았어요.


한동안 이에 대해 고민을 어갔어요. 그동안에는 제가 마음을 준 만큼 피드백이 있어야 관계에 발전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마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처럼 말이에요.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내리사랑 같은 것이었어요. 교사는 학생 모두에게 공공의 존재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특정 학생이 아니라 최대한 모든 학생들에게 나는 사랑을 베풀고, 도움을 주고, 섬세하게 봐야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한 명 한 명을 대하면서 내 자식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학생에게 받는 긍정적 피드백만큼 기분 좋은 게 없어요. 하지만 온전히 그것만 의지하는 건 교사로서 태도가 아니는 것을 알게 되었죠. 교사는 더 넓은 시야로 다방면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바른 교직관을 구축해나가야 해요. '얘는 내 말도 안 들어요.', '쟤는 아무리 도와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애예요.' 이런 말들을 하던 선생님들도 생각이 났어요. 교사의 역할은 대가를 바라며 학생들을 대하는 게 아니라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에요. 그날로 저는 또 성장했어요. 내리사랑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교사라는 직업에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과 행복함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