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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Apr 01. 2024

다시 호주에 갈 수 있을까

프롤로그

다시 호주에 갈 수 있을까?

아들이 찍어 인쇄해 준 엽서 사진을 책상 정면에 붙였다.

초록으로 가득한 시드니 항구 언덕에서 보는 오페라 하우스와 푸른 바다.

사진 속 연둣빛 잔디에 담요를 깔고 앉은 긴 머리 소녀의 뒷모습이 예쁘다. 고개를 고정시켜 미동도 없이 감상에 젖은듯한 사진 속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다. 멀리 시드니항에 넓게 깔린 붉은 노을을 함께 바라보며 잠시 그때를 추억한다.




아들을 만나러 갔을 때는 겨울이 막 지나고 봄이 오는 중이었다. 보라색 꽃을 매달고 있는 커다란 자카란다 나무가 마을마다 서 있었다. 벚꽃처럼 때가 되면 꽃잎이 떨어져 보랏빛 융단을 깔아 향기를 날리던 그림 같은 풍경.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진다. 달콤하고 싱그러웠던 향기가 코끝에서 기억난다.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뇌리에 박힌 색과 향을 고스란히 끄집어낼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까지도 떠오르는 것을 보면 새로운 환경을 부지런히 마음에 저장한 덕분이다. 일상을 새것처럼 여긴다면 하루하루가 여행 같을 텐데.


반갑게 맞이해 주던 교장 선생님 부부와 그의 가족들. 염소젖으로 만든 비누를 선물로 건네주던 사사프라스 마을 골동품 가게 주인아저씨, 오페라 하우스 공연장에서 멋진 어깨춤을 보여준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비 오는 날 당황하며 충전을 부탁하는 내게 기꺼이 도움 준 아이스크림 가게 아가씨.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신비한 보라색 벚꽃 자카란다. 온통 산을 뒤덮은 유칼립투스 나무와 호주인들의 보호 속에 안전한 코알라. 빙글빙글 돌아가던 빨래 건조대와 삼삼오오 모여 간단한 먹거리에도 끊임없이 이어진 스몰토크. 나란히 바위에 앉은 뒷모습을 아들이 멋지게 사진 찍어 주었던 블루마운틴. 건축을 공부한 남편이 음악회보다 위아래 건물 구경하느라 집중하며 감탄했던 오페라하우스. 해운대와 비슷한 본다이 비치 그리고 그 안에 영화의 한 장면 같던 아이스버그.


호주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원주민과 이주민 갈등, 개척의 흔적들. 멜버른에 고스란히 남겨진 역사적 건물과 박물관 속 그림. 개척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해안선과 바다 그리고 여전히 남은 영국과 이름이 똑같은 도시. 다시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다시 가고 싶은 곳.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아 눈과 마음이 요동친다.


2주간 호주를 여행하면서 길을 잃을까 지하철을 놓칠까 싶어 아들의 뒤를 따르고 남편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래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날은 핸드폰 하나만 의지해 혼자 시드니 시내를 돌아다닌 날이었다. 혼자서, 둘이, 그리고 셋이 여행한 호주였다. 인생도 처음에는 혼자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결국은 혼자가 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 여행이다. 


혼자냐 둘이냐 또는 여럿이냐에 따라 인생의 무게 준비도 다름을 새삼 생각하게 다. 혼자여도 오랜만에 긴장이 돌아 좋았고, 둘일 때는 정답고 외롭지 않아 좋았다. 셋 일 때는 신나고 북적여서 또 좋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혼자여도 여럿이어도 의미 있고 즐거운 여행으로 만들려 한다. 찍어 둔 사진과 영상으로 혼자, 둘, 셋의 호주를 다시 구경하다 보니 그때 그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좋은 것을 누려도 가치를 모른 채 지나칠 때 많다. 잃어버리거나 떠난 후에야 그때가 좋았음을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것들은 지워지고 굵직한 것들만 기억에 남기기 때문인가 보다. 언제나 추억은 그렇다.


돌아가신 아빠를 기억하면서 엄마는 좋은 일만 말한다. 부산 해운대 바다 옆에 살면서 외로웠는데, 매일 아침 해변을 걸었던 좋은 것만 생각난다. 지금 이 시간도 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던 좋은 추억들로 남겠지.


괜히 두근대고 행복해지는 추억! 사진은 즐거움도 고스란히 불러오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작은 것까지도 사진으로 남겨둔 여행이었다. 저장한 사진들을 최근부터 거꾸로 넘기며 기억을 더듬는다. 지워진 작은 것들을 글로 엮으며 잃어버린 좋은 것들을 찾는 중이다.


자카란다, 블루마운틴
본다이 비치의 아이스버그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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