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공항에 낡은 자동차를 끌고 온 녀석은 아들의 룸메이트 호주 아이였다. 금발에 키가 190센티미터 정도 되는 코헨은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두 손가락으로 가득 잡힐 것처럼 수북한 노란 속눈썹을 끔벅이며 수줍은 눈으로 아들 옆에서 인사한다.
아침 일찍 한 시간 걸려 마중 오느라 둘 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온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항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초록색으로 가득한 간판 글이 익숙하다. 한국에서 자주 보던 써브웨이 샌드위치 가게. 셋이 마주 앉아 거친 빵과 야채를 씹었다. 먹는 중간중간 두 청년을 힐끗 보았다. 엄마 앞이라 마음 편히 우적거리며 샌드위치를 먹는 아들과 쑥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콜라를 마시고 음식을 오물거리는 호주 청년.
길가에 세운 자동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어머니, 코헨 이번 12월에 결혼해요.”
“어머나, 코헨 축하해."
두 눈과 동시에 입술도 동그래지면서 큰 박수가 절로 나온다. 운전대를 양손에 잡고 백미러에 눈을 마주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청년이다.
"아들, 혹시 너는 없니?"
자동차 안에서 셋 다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 아들에게 듣게 된 코헨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아니, 그의 결혼을 다행이라 여겼다.
학교에서 만난 네 살 연상 스코틀랜드 여자 친구는 참 다정하단다. 코헨은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적부터 어머니 대신 동생을 챙기며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죽음을 자주 생각하던 비관적인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시골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게 되었고 삶의 전반이 변했다. 시드니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졸업 후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커플은 학교 스태프로 남아 일하게 된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여자 친구의 나라에서 4개월.
“얘네들은 결혼을 쉽게 하던데요?”
이십 대 중반 아들이 보게 된 결혼은 한국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 없는데도 열렬한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결혼.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현실로 보는 것이다. 룸메이트의 연애로 불편하다며 가끔 투덜거리던 아들이었다. 친구의 새로운 삶과 가치관으로 배우게 된 또 하나의 인생. 엄마로서 그러한 경험도 감사하다. 아들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아주 가끔씩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주제는 ‘결혼’이다.
아들에게는 가정을 책임질 수만 있다면 빨리 결혼하라고 말한다. 인생 절반 이상을 동행해야 하는 존재가 배우자. 부모보다 더 오랜 기간 함께 살며 어려움도 함께 감당할 각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정이면서도 가치 있는 일이다. 상대보다 먼저는 자신을 멋진 사람으로 준비하라는 말을 세 자녀에게 강조한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다음 기회에는 영상으로 보았던 최민수 씨의 아내 강주은 씨의 말도 전해주고 싶다. 결혼할 때 ‘가장 어두운 곳에까지 같이 들어갈 만한 상대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지켜보며 조언해야 하는 부모 자리도 제법 어색하고 어렵네.
호주인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두 차례 정도 엿들을 수 있었다. 아들을 통해 들었던 호주는 이혼율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이다. 룸메이트인 두 아이 모두 해당되었다.
멜버른에서 단체 여행하며 가이드에게 들었던 호주 가정 이야기는 또 다른 부분이었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중요시 여기는 남편들은 일찍 가게를 닫고 귀가한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사업소는 별로 없다고. 호주 남자들이 가정적이라는 한국인 가이드의 말도 일리 있어 보인다. 호주에 2주 동안 만나게 된 남자들은 배려 많고 친절해 보이기는 했다. 지하철에서도 꽃다발을 들고 다니고, 부엌에서도 함께 일하고. 하하.
아들 셰어하우스 부엌과 거실
아들과 함께 두 명 호주인이 사용하는 셰어하우스는 24평가량 되는 2층 주택이다. 세 개의 방을 각각 사용하고 부엌과 거실은 함께 사용한다. 일주일간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손님방에 머무르면서 몇 차례 들렀던 이층은 깔끔했다. 아들 방은 물건 가지 수가 적어 깨끗했는데, 코헨의 방이 제일 잘 정리되어 있다고 아들이 말했다. 오히려 코헨에게 깔끔함을 배웠다는 말에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졸업식 날, 젤을 발라 옆으로 단정히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그리고 뾰족한 구두와 재킷으로 한껏 멋을 낸 청년 코헨의 모습에서 멋진 신랑을 상상했다.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 듬직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졸업 연설에서도 차분하고 성숙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스코틀랜드에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겠네. 알콩달콩하면서도 티격태격 서로를 배워가는 신혼의 시간을 잘 지나가고 있겠지. 예쁘고 멋진 가정으로 만들어가길 응원해 코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