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가다 Apr 22. 2024

보라색 벚꽃 자카란다

화사한 행복은 내 옆에서 찾는다

나 홀로 시드니 공항이다. 10월 말, 시드니 날씨는 한국과 비슷해 선선다. 한국에서부터 입고 간 겉옷을 그대로 걸쳐도 괜찮다.


갈색 배낭을 메고 커다란 보라색 캐리어를 컨베이어 벨트에서 힘껏 들어 올렸다.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에서 손과 눈에 익은 캐리어가 그저 반갑다. 보라색 내 것, 나를 기다려준 친구처럼 얼른 른손 내밀어 손을 잡았다.



공항 밖을 나와 아들과 약속한 주차장을 찾았다. 혹시나 길을 놓치거나 장소를 혼동할까 싶어 주변 팻말을 꼼꼼히 읽었다. 친구와 함께 작은 승용차를 타고 온 아들. 두 팔을 벌려 꼭 안았다. 1년 만이다. 헤어스타일은 깔끔하고 팔다리는 조금 까맣게 타서 건강해 보인다. 무엇보다 활짝 웃는 모습에 마음이 편해졌다.


운전석에 앉은 금발 머리 청년이 인사했다. 그는 진저비어로 유명한 분다버그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수줍게 웃었다. 이른 아침 룸메이트의 엄마를 함께 마중하러 와 준 친구를 보자, 아들까지 덩달아 훌륭해 보인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공항을 빠져나오는 동안 창으로 비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로운 풍경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보라색 꽃나무였다.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고개를 돌려 다시 살폈다. 자동차가 지나쳐 가는 순간에도 큰 나뭇가지에 온통 오밀조밀하게 매달린 보라색 꽃잎들이 신기해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아들, 저 보라색 꽃나무는 뭐야? 진짜 보라색이네.”


“자카란다요? 호주 벚꽃이에요.”


푸른빛이 섞인 보라색 꽃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들의 기숙사로 가는 동안 동네마다 보라색 자카란다 등장이 반가웠다.


“자카란다, 자카란다.


호주를 여행하는 내내 ‘혹시나 여기에도 있을까’ 하며 가는 곳마다 보라색 꽃나무를 찾았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떠난 루나파크 근처 해안에도 언덕마다 보랏빛 존재가 보였다.


쇼핑하러 나간 시드니 시내 시청 건물 옆에 커다란 보라색 벚나무가 화려한 면사포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뾰족한 고딕 양식 건물 옆에 우아하게 서있는 자카란다의 자태.




시드니 시내를 혼자 여행하는 날에는 아들이 알려준 군락지를 일부러 찾아 나서기도 했다. 멀리서만 찾아 헤매던 꽃나무를 아들이 살던 동네 곳곳에서 발견하자, 꽃잎 떨어진 길을 걷고 뒤돌아 또 걸었다. 파랑새를 찾으러 먼 곳까지 떠났다가 결국은 가까운 동네에서 찾아낸 동화처럼.


빨강의 정열과 파랑의 우아함을 합쳐놓은 보라색은 고귀한 색이라 불린다. 우아함과 품위, 화려함을 상징하며 신비스럽고 개성 있는 색 ‘보라’. 그 강렬한 우아함에 푹 빠져 호주를 여행했다. 보라색만 보면 그렇게 반가웠다.  '화사한 행복'이란 뜻의 꽃말도 마음에 쏙 든다.


'자카란다!' 이름을 자꾸 잊어 결국은, ‘전세 아닌 자가란다’를 생각하며 기억에 새겼다. 한국어를 잘하는 호주인을 식사 자리에 만나 그 얘기를 했더니 손뼉을 치며 웃었다. 과연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보랏빛 호주 잔상이 자주 떠올랐다. 하얀 벚꽃이 휘날리는 봄날은 더 그랬다. 경주 외곽에 줄지어 서있는 벚나무 가로수길을 운전해서 지나며 보랏빛 벚나무가 떠올라 배시시 웃었다. 자카란다 꽃잎 가득한 큰 나무와 꽃잎이 짓이겨져 도로를 덮은 보라색 길도. 어쩌면 꽃말처럼 화사하게 행복했던 날들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떨어진 꽃잎처럼 행복도 금세 떨어져 사라진다. 보랏빛 행복은 매일매일 내가 앉은자리에서 자주 찾으려 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 누군가의 말처럼 더 자주 작은 행복을 내게서 발견해 낸다.



이전 03화 꿈꾸다 이루어진 호주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