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에 제목을 붙이고 호주 지도를 그렸다. 구획을 그리고 대표 도시 이름들을 기록했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캔버라.... 그림만 그려도 좋았다. 나만 아는 비밀이었으니까.
사실 블로그 지인의 꿈을 보고 따라 시작한 일이다. 그녀는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이 되는 캐나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생가를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자세히 그렸다. 기간, 비용, 준비할 것 등 자세한 사항들을 기록했는데 곧 떠날 것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 10월 말 졸업식에 오시겠어요?”
“어머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상황 되면 엄마가 꼭 가도록 할게.”
호주에서 공부하던 아들과 통화가 시작이었다.
영어책을 다시 손에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하루에 걷는 시간을 늘려 체력을 올렸다. 한동안 남편에게는 표현하지 않은 채 일기장을 매일 펼치며 호주 여행을 채워갔다.
“여보, 아들이 졸업식에 나를 초대했어. 꼭 가고 싶어.
아이를 돌봐준 분들에게 감사도 전달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보고 싶어.
아들이 둘이서 여행도 하자는데,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남편은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비슷한 이야기를 기회 되는대로 두세 번 다시 흘렸다. 8월이었다.
“여보, 내 생일 선물로 호주에 다녀올게. 온 가족 항공 마일리지 모으면 왕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졸업생 부모를 위해 일주일간 빈 기숙사를 제공한대.”
“진짜 갈 거야?”
“응 진짜! 내가 또 언제 호주를 방문하겠어.”
9월이었다.
아들과 함께 일정을 조정하고, 가고 싶은 곳 목록을 만들었다. 방학 동안 혼자 떠났다는 뉴질랜드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에 꿈은 더 확장되었다. 바로 옆 뉴질랜드를 일기장 그림 속에 추가했다. 계획 속 일정은 3주가 되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동안 남편도 일주일 휴가를 내서 아들 졸업식에 합류하기로 했다.
10월 초였다.
10년 전 세 아이와 떠났던 16일 유럽 배낭여행, 3년 전 친정어머니와 우리 가족 함께 한 아랍에미리트 여행, 코로나 이후 지난 12월 이집트 이스라엘 튀르키예 여행도 그랬다. 작은 기회에 꿈을 더했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꿈꾸는 자의 노력과 믿음이다.
여행의 좋은 점은 '새로운 시작'을 경험하고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엄마인 나도 넓은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좁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다. 그 이후 세 아이는 세계 곳곳으로 봉사 여행을 떠났고, 인턴십을 지원했다. 언어의 또 다른 안경을 준비한 것도 이 덕분이었다.
중동을 여행하면서는 기존에 자연스럽게 얹어진 선입견을 걷어냈다. 아이들은 인종에 대한 차별과 다른 시선이 없다. 내게 여전히 선진국과 후진국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차별이 깊숙이 있음을 발견했다. 여행하면 할수록 여러 민족과 인종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졌다. 문화적 배경과 환경이 다를 뿐 기본적인 생각과 행동, 욕구도 비슷한 인간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딸아이의 날카로운 핀잔과 비판이 한몫했다. 성인 된 아이들은 가끔 나를 가장 잘 아는 선생이기도 하다.
60이 되어 아내를 잃은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 104세 할아버지를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컴맹이었던 할아버지는 60세부터 30개 넘는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책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배운 후, 매일 글을 남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혼자서 해낸 경험이 많은 할아버지는 아직도 무엇이든 스스로 해낸다. 전동차를 운전해서 비 오는 날 서울에서 인천까지 두 시간 넘게 지하철로 이동한 여행을 보면서 눈이 커졌다. 혼자서도 삶을 여행처럼 누리고 있었다. 노장은 세계를 누벼 보았기에 모험을 누리는 것이다. 그분은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할아버지의 여행이 건강하게 지속되기를 바란다.
여행을 통해 내가 가진 그 이상을 꿈꾸고 도전하게 된다. 당일이든, 여러 날이든, 국내, 국외이든 간에 여행이라는 도구가 도전과 변화의 시작으로는 딱 맞다. 특히 혼자서 여행할 때면 더 용감해지고 여러 가지를 도전하게 된다. 봄날에는 가까운 곳으로도 작은 도전을 실행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