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가다 May 13. 2024

써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나답지 않지만 이게 나!

드디어 써큘러 키! 핸드폰과 안내판을 여러 차례 확인하며 센트럴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탔다. 지나온 정거장과 남은 것의 숫자를 자꾸 세게 된다. “써큘러 키”를 알려주는 안내 방송이 선명하다.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났다. 이제야 여유다. 마음이 편해지니 원래 시드니에 살던 사람처럼 저벅저벅 출구로 걸어 나간다.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의 탐험대가 발견 후, 1788년 이민 선단이 처음으로 상륙해 이민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한다. 코발트 빛 바다와 거대한 배들이 가득한 시드니항이다. 유람선,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가 있는 세계 3대 미항. 이제 상륙한 이민자처럼 그곳에 섰다.


서큘러 키 역사 앞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바로 눈앞에 거대한 유람선이 해안가에 가득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오른편 오페라하우스로 발길을 옮긴다. 왼편으로 완만한 언덕과 작은 건물들이 보이고. 해안선을 따라 도시가 이어졌다. 오늘 하루 안에 근방을 계획대로 다 구경할 수 있을까 긴장과 기대가 뒤섞였다. 어깨에 멘 가방을 다시 올리며 어깨를 넓게 펼친다.





지하철에서 부랴부랴 시드니를 검색하며 여행 루트 짜느라 핸드폰 배터리는 50퍼센트다. 아들만 믿고 있다가 혼자되었으니 어쩌랴!

여행 내내 나침반이 되어주는 핸드폰이다. 시간에 따라 바뀌는 이동 수단, 낯선 곳에서 무엇이든 검색해야 하는 이방인, 새로운 것마다 찍어대는 사진. 배터리를 아끼려 해도 자꾸만 핸드폰을 펼치게 된다.

충전할 곳을 찾느라 가는 곳마다 두 눈은 점점 바빠졌다. 급히 떠난 여행으로 보조 배터리도 챙기지 못했는데. 혼자서 던지는 말들이 많아진다.

‘아껴야 한다. 설마 중간에 충전할 곳은 있겠지.’

‘사람 사는 곳인데 어찌 되겠지.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첫 번 목적지 밀슨 공원에 가려면 페리를 타야 한다. 두리번거리며 구글맵이 인도하는 부두 5번으로 행했다. 모르면 무엇이든 물어보자!


지하철에서 사용했던 오팔 카드로 부두 앞 전자기기를 통과해 선착장에 입장했다. 영문자 가득한 지도와 안내판을 한참 들여다본 뒤였다. 거대한 뱃고동 출발 신호가 들리고 깃발 든 선원이 배에 오르도록 안내한다. 낯선 이들을 뒤따라 바다가 보이는 2층 객실에 앉았다.

선실 밖 갑판에서 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문을 열고 선상으로 나가자마자 긴 머리카락과 목에 멘 파란 스카프는 풍선 인형 두 팔처럼 좌우로 펄럭거렸다. 여유로운 이들의 모습, 사진으로 익숙한 항구의 풍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파도를 가르며 출발한 페리는 성산항을 출발해 우도로 향한 배처럼 항구를 서서히 벗어났다. 여객선의 크기도 비슷했다. 예쁘게 잘린 오렌지 같은 오페라 하우스. 갑판 위 사람들은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가로와 세로, 줌을 사용해 가까이 그리고 멀리. 영상으로도 찍으며 엽서 같은 풍광을 핸드폰에 담았다.

아치형 하버브리지도 함께 저장했다. 거대한 하버브리지 아래를 지나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람선을 타고 광안대교 아래를 지나던 일이 기억났다. 멀리 작게만 보였던 새까만 철교는 넓고 거대했다.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도 통과할 수 있다는 관광 상품이 생각나 자세히 살폈다. 나중 지하철을 타고 몇 번이고 하버브리지를 통과할 기회가 생겼다.



선상 위에 사진을 찍는 이들 속에서 한국어가 들려 괜히 반갑고 안심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내 사람들 같은 친근함.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동질감이 얼마나 큰 교집합인지. 멀리서도 작은 소리가 귀에 박혀오는 이 신기함. 낯선 가운데 서 보면 중요한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버스 정거장처럼 도착 고동이 들렸다. 갑판 위에서 해풍을 맞으며 감동 속에 혼자 즐거워하는 중이었다. 하마터면 첫 번째 정거장 ‘방갈루’에서 내릴 뻔했다. 서둘러 1층으로 달려 내려갔다가 전광판에서 정거장 이름을 확인하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네 개 정거장을 거쳐 출발지로 돌아가는 배였다. 네 번째 정거장인 ‘밀슨 포인트’ 선착장이 내가 내릴 곳이다. 근처 항구를 도는 페리는 시드니 시내와 해안 지역들을 잇는 주민들의 교통수단이었다. 관광객 아닌 주민들은 중간 정거장마다 오르고 내다.


정거장 안내를 자세히 살피고야 2층으로 다시 올다. 2층 실내 의자에 앉으며 동공이 커졌다. 의자 손잡이 바로 옆 벽에 붙은 콘센트! 모든 의자 옆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돼지코 어댑터를 얼른 꺼내어 핸드폰을 충전했다.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깍지 끼어 흔들었다. 배시시 웃음이 났다. 30퍼센트 남은 배터리! 솟아날 구멍은 찾아야 나타난다.

‘오 하나님! 저 어쩔 뻔했나요. 감사감사!’





항구 정거장마다 거대한 도시 모습의 시드니 멋진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구불구불 도시 깊숙이 파고드는 해안선에 고층빌딩이 함께한 항구. 바다 중간에 해적선 모양 거대한 배가 천천히 운행한다.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한 날렵한 실루엣이다. 해골 모양 흑색 깃발마저 펄럭인다.


잠시 멈추는 정거장 작은 항구마다 멋지게 펼쳐진 호주의 해안 도시. 드디어 네 번째 정거장, 내가 내려야 할 곳이다.

, 바닷가 놀이동산이다!



이전 06화 나는 원래 용감했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