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가다 May 20. 2024

그래요 그냥 즐길게요

루나 파크 시드니


루나 파크다! 배에서 내려야 한다.

알록달록 깡통을 매달고 있는 듯 대관람차 옆에 웃고 있는 커다란 광대 같은 달님 얼굴이 페리에서 보인다. 멀리서부터 환영한다는 밝은 얼굴이 둥실 떠올라있다.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귀까지 열린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를 다 보이는 거대한 입이 오싹하게도 따라 웃게도 한다. 페리에서 내려 바로 위로 보이는 얼굴 앞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본 것보다 거대하다. 꿀꺽 삼켜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껄껄 웃는 광대의 하얀 치아 속으로 걸어서 입장한다. 뒤돌아 입구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냥 입구를 걸어 들어간 것뿐인데 기분이 묘하다.


just for fun"

입구 뒷면에 크게 붙은 ‘그냥 즐겨요’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씩~ 웃음이 난다. 무료입장에 마음마저 가볍다.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보며 그냥 즐기리.




놀이공원 신나는 음악이 그제야 귀에 들린다. 거대한 기구들은 빙글빙글 돌고 오르내린다. 영어로 쓰인 간판과 외국 방송에서 보던 캐릭터 인형 그리고 주변에 신난 외국인들만 바꾸면 좀 더 큰 인천 월미도 놀이공원이다. 풍선 터트리기, 농구공 넣기, 회전목마도 보인다. 기구가 붕 뜨며 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명도 들린다. 고개 들어 위를 보니 자이로드롭에 360도 빙 둘러 긴 다리들이 펄럭이며 내려온다. 경주월드 근처 산책길에서 듣던 딱 그 소리다. 그네들의 겁에 질려 지르는 소리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나는 음악이 섞여 즐거운 함성으로 들린다.


, 갈매기다! 땅에서 팝콘을 열심히 주워 먹는 녀석들. 문 없는 햄버거 매장에도 갈매기들이 입장했다. 매장 직원도 익숙한 듯 그냥 자연스럽게 둔다. 바닷가 이곳은 비둘기 대신 하얗고 날렵한 갈매기가 공원을 채운다.


1935년 바닷가에 세워진 이곳의 첫 이름은 '하버 사이드' 놀이공원이었다고 한다. 인명사고로 폐장과 개장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현재는 위치한 뉴사우스웨일스주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련되지 않아도 클래식한 느낌과 아기자기한 구조를 구경할 수 있다. 어릴 적 만화 영화로 보던 뽀빠이 캐릭터 벽화가 반갑다. 어렵게 이름을 기억해 낸 키 큰 여자 친구 올리브의 ‘도와줘요. 뽀빠이~!’ 목소리도 기억난다. 시금치 통조림과 불끈 솟는 근육 장면도. 벽화 통로를 지나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놀이공원을 질러서 걷는 동안 주목한 파란 곱슬머리 가발을 단체로 착용하고 분장한 3,40대 무리. 놀이 기구 앞에 줄 서서 기다리며 서로 주고받는 웃음과 장난이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다. 얼마 남지 않은 핼러윈데이를 신나게 즐기는 모양이다. 어른들도 아이처럼 즐기기에 놀이공원과 친구면 충분하다. 가발과 분장이 더해지면 자신을 잊고 더 신나게 놀 수 있겠네.





놀이공원 밖으로 나오니 넓은 해안이다. 왼쪽으로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보이고 오른쪽은 멋진 요트가 가득한 요트 정박지 라벤더만. 이름대로 보랏빛 점점이 낮은 산등성이에 듬성듬성 보인다. 호주 늦은 봄 자카란다 벚꽃의 보라색 물결인 모양이다. 오른쪽 엽서 사진 같은 해안선에 홀린 듯 발길은 이미 향하고 있다. 갈매기가 앞뒤로 날고, 가벼운 운동복으로 조깅하는 이들도 마주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해안 전체를 둘러 걸었을 텐데. 바쁘고 욕심 많은 관광객이기에 아쉬움을 꾹 접고 몸을 뒤로 돌렸다. 자카란다 가득한 밀 파크에 가려 한다.


구글맵을 펼치고 골목과 큰 도로를 찾아 돌고 돌았는데 자꾸만 다른 길이라 난감하다. 결국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잘 준비되지 못한 여행은 갑작스러운 즐거움도 만나지만 당황스러움도 마주한다. 거대한 자카란다 숲 입구는 걸어서 찾기 멀어 결국은 포기했다. 나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그 가치를 알았더라면 기어이 갔을 텐데. 위치와 지도를 미리 익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여행도 인생도 제대로 계획하지 않으면, 코 앞에 온 좋은 기회놓치게 된다.


누군가가 알려준 길로 걷다가 골목에 펼쳐진 자카란다 거목들로 그냥 족했다.  벌써 오후 두 시. 오전부터 아들과 헤어진 후, 온 신경을 집중하며 혼자 여행하느라 허기진 줄 몰랐다. 남은 시간 안에 오페라 하우스를 들러보고 숙소까지 안전하게 돌아가야 한다. 신데렐라처럼 어두워지기 전에.


주변 식당 거리로 걸었다. 하얀 골목 사이로 치과, 식당, 베이커리가 보인다. 가게 밖으로 작은 테이블을 놓아 길거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작은 타르트 가게다. 투명 유리 진열장으로 종류별 타르트가 가득하다. 블루베리, 레몬, 피칸, 커스터드 타르트 등 예쁘고 먹음직스럽다. 고민하느라 속으로만 동동거리는데 선반 중간에 뭉툭한 모양 키쉬가 보인다.

"카푸치노랑 키쉬 주세요."


카푸치노 한 잔과 키쉬를 11달러에 주문했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돌아갈 페리 시간을 체크하는 동안 따뜻하게 데운 키쉬와 시나몬 가루가 가득 뿌린 카푸치노를 종업원이 테이블에 조심히 올렸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바삭한 음식을 잘랐다. 달걀과 야채, 베이컨으로 가득 채운 프랑스 가정 음식 키쉬는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혼자서 해 내는 일이 많아질수록 점점 대담해진다. 행동도 여유로워진다. 그리고는 상황을 즐기게 된다. 놀이처럼.

접시도 커피잔도 깨끗이 비우고 서둘러 일어났다. 두 시 반 페리를 타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지도를 따라 선착장으로 향했다. 신호등을 건너고 인도를 걷는다. 바쁜 중에도 눈에 보이는 멋진 곳들은 사진으로 남긴다. 공사 중인 외벽에 흑백 대형 사진들이 눈에 띈다. 지나며 살펴보니 하버브리지 역사를 고스란히 남긴 항구의 흑백사진이다. 당시 여성들의 옷차림새도 보인다. 오늘 이곳에 방문한 나의 역사는 고스란히 사진과 글에 남겠구나.


두 시 이십오 분, 선착장에 오팔 카드를 대어 결제했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던 페리가 빠르고 정확하게 선착장 앞으로 입장한다.

이전 07화 써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