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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아 Dec 30. 2021

호주에서 만난 이상하고 재미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다 건너 남쪽 섬나라에 오는 이유

호스텔의 전설 - 세상의 또라이들은 다 호주에 모인다


호스텔에서 지내던 때 호주를 여행하는 한국인 분들과 합석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중 한 분은 호주 워홀과 캐나다 워홀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었다.


"캐나다랑 호주 둘다 겪어보니까 호주가 훨씬 재밌는 것 같아. 전세계 또라이들이 다 호주에 모인달까? 이상한 사람이 온다는게 아니라 호주에 훨씬 다양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많았어. 캐나다에서는 그냥 스타벅스에서 일만 했고 조금 심심했거든"


전 세계 또라이들이 다 호주에 모인다는 말은 호스텔에서 살았기에 무슨 뜻인지 바로 알 것 같았다. 호주 워홀 비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쉽게 받을 수 있다 보니 별의별 워홀러가 다 있었다. 어떤 유럽에서 온 청년은 호스텔 지하에 있는 Bar에 꽂혀서 한 달 내내 바에서 놀다가 2000만원인가를 탕진했다고 했다. 그런 소문이 전설처럼 떠돌았다. 저녁 시간에 공용 부엌 공간에서 5인분은 되는 냄비에 파스타 면을 삶으며 온갖 양념과 고기를 다털어넣는 요리 광경을 보면서, 식탁에서 풋볼을 응원하는 티 같은 걸 맞춰 입고 20여명의 유럽 청년들이 모여서 장난치는 광경을 보면서 '지구에 정말 별의별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인종, 직업, 워홀을 온 목적과 이유, 일상 모습들이 다 달랐다. 자국에서 간호사 일을 하다 호주의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이민을 오려는 이들이 있었다. 수의사가 되고 싶어 관련 학과에서 공부를 하다 캥거루와 코알라가 많은 호주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공부하기 위해 온 대학생 친구가 있었다. 한국에 더 이상 건물을 지을 땅이 없는 것 같다며 건축을 배우러 호주에 온 학생이 있었다. 유럽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이혼을 하고 갭이어를 갖기 위해 워홀 신청이 가능한 마지막 나이로 온 네덜란드어(자국에선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영국에서 플러밍 일을 하다 호주의 임금이 더 높다는 소식에 워홀을 와서 2년째 일하다가 이민 절차를 막 신청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유럽의 무슨 무슨 영재 학교를 나와서 대학 졸업을 너무 일찍해버려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에이전시를 끼고 워홀을 온 '천재 청년'이 있었다. 그는 에이전시가 비자부터, 일을 구하는 것, 집을 구하는 것을 다 해준다고 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도 꽤나 많았고 이들은 곧 농장이나 공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해외에서 짧게 공부하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은 있어도 이렇게 다양한 국적과 인종과 삶의 반경을 가진 사람들을 곁에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교환학생은 '학교'라는 공통의 소속 공간을 나누기에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것으로 삶의 반경이 비슷했다. 어학 연수 역시 어학을 배우는 '기관'에 소속되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대체로 비슷한 일상을 나누었다. 하지만 호주 이곳은 그야말로 용광로였다.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사연과 삶을 가진 이들이 목표도, 가는 곳도, 가진 것도 다 다른 채로 호주라는 땅을 밟고 있었다. 신기했다. 삶의 방식이란 참 다양했었지, 정답 같은 건 없었지. 많은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이민자들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 온 분들도 많이 만났다.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곳의 사장님은 한국에서 오래 기자 생활을 하셨는데 자식 교육 문제로 이민을 결심했다. 퇴근 후 밤마다 입에서 나는 단내를 견디며 호텔에서 초밥 요리 기술을 배워 호주에 스시 레스토랑을 차렸다. 한국 대기업에 몇십년 다니다가 계속되는 야근에 지쳐 호주에 와 의류 장사를 시작해 회사를 차린 분도 있었다. IT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했다가 날씨가 너무 춥다며 다시 호주로 이민을 온 분도 만났다. 20대에 호주에 잠시 워홀을 왔다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대학원을 다니거나, 이민 가능한 기술을 배워 터를 잡거나 결혼을 하며 자연스레 이민을 오게 된 분들도 많았다.

그들은 호스텔을 집 삼아 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쉐어하우스를 만나 10년 가까이 쉐어를 하며 살기도 했고, 호주에서 만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다같이 집을 얻어 함께 살기도 했고, 결혼할 사람을 만나 신혼집을 차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인생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공감했고, 감탄이 나왔다. 

내가 워홀 온 이유를 질문 받았다. 나는 '해외에서 살아보고, 일해보고 싶어서'라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목적을 갖고 호주에 와 있는지.

몇 년 전 유행한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워홀을/이민을 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알고 보니 영국이 싫어서, 프랑스가 싫어서, 페루가 싫어서, 일본이 싫어서, 세계 곳곳에서 호주에 온 외국인들이 많았다.


퇴사를 하고 워홀을 온 사람들 중에는 한국 회사에는 더는 돌아가기 싫다며 이민을 결심한 이들이 많았다. 

'그냥' 워홀을 온 사람들도 많았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워홀 한 번 해보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자국에서 이루고 싶은 것에서 패배했기에 이민을 왔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나니 자국에서의 삶이 힘들어서 이민을 결심했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이민을 행했다고 말했다.

호주라는 나라가 정말 좋아서, 사회가 합리적이어서, 물가가 정직해서, 인건비가 높아서, 호주에서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어서 말이다.


삶의 다양성과 보편성


다양성이 최고치를 찍는 이 호주라는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는 역으로 보편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자주 이사를 다니며 집이 바뀌고, 파트타임에서 풀타임으로 일이 바뀌고, 일과 집이 계속 달라지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는 장소가 달라지더라도 - 결국엔 집, 일, 돈,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안식처가 되어줄 공간. 내가 나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에서 존재감을 확인하거나 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자리. 기본적인 삶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돈. 저녁과 주말과 여가 시간과 삶의 여러 활동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로 삶의 조건들을 추렸다. 전재산을 캐리어 하나로 압축해 시작한 유목 생활이어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 하나 알아갈 수 있었다.


이민 온 이들이 삶을 일궈온 역사도 새로운 터전에서 그 네 개를 찾고 꾸려가는 과정인듯 보였다. 일자리/직업으로서 합법적으로 이민 자격을 얻고, 안전하게 살 집을 구하고, 돈을 벌면서, 종교 시설이나 회사, 지역사회 기관 등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했다. 공동체 안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여가 시간을 함께 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사회 이슈에 함께 대응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았다. 멀리서보면 오페라 하우스와, 갈매기와, 캥거루와, 큰 나무가 우거진 이 호주라는 나라에서의 삶이 한국과 달라 보였다. 현미경을 끼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에 살든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만 해도 호주에서의 삶에 적응을 할수록 일상의 양상이 비슷해져 갔다. 샤워를 하고 나서 나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마트에서 생활 용품 가격의 숫자를 비교하고, 아침에 눈을 잔뜩 찌푸리며 어디론가 일하러 가고, 환절기에 감기에 걸리고, 월세를 내는 날 한숨을 푹 쉬며 일할 이유를 찾으며 지냈다. 그런 것들은 바다가 보이는 섬나라에서든, 아파트와 지하철로 가득한 서울에서든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엔 일하고, 먹고, 자고, 놀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삶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호주 워홀 내내 묻고 있던 질문에 대해 조금씩 생각이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아직은 호주에서 더 지내면서 이곳 현실에 부딪혀보고 싶었다. 알고, 배워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 무렵 병원을 갈 일이 생겨 호주의 진료비를 고려해 한국에 잠깐 들어오게 되었다. 진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일단 편도 티켓을 끊었고 다시 호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때만해도 앞으로 닥칠 일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코로나19'라는 사건이 생길 거라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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