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러가 코로나를 만나면
계획을 수정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병원에 가려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 치료를 받으며 다시 호주로 돌아갈 계획을 재정비하던 때, 코로나가 터졌다. 그땐 코로나가 덮친 일상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역병이었고 독감처럼 금방 사그라들줄 알았다. 곧 다시 워홀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확진자는 점점 늘어났고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에 대해 무시무시한 정보를 쏟아냈다. 호주는 이내 외부인의 입국을 금지해버렸다.
한국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나만큼, 혹은 그보다 더, 호주 워홀러로 현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정이 어려운 것 같았다. 락다운으로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받는 워홀러들의 소식이 기사로 전해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항공편마저 줄줄이 취소되며 귀국을 원해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SNS로 보니 호주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도 워홀 포기를 고민하거나 휴지, 물 등 생필품 진열대가 텅 빈 마트 사진을 올리며 당황해했다. 전파 위험에 취약한 호스텔이나 쉐어하우스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마음을 토로했다. 워홀러들이 주거 환경과 생계와 관련해 불안정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언제 입국금지가 풀려 호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호주의 회사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우연히 한국에 돌아온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야했다. 몇주쯤 지나자 당장 입국 금지가 풀리거나 코로나가 끝나길 기다리기보다는 한국에서 살아갈 길을 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계속 시간이 흐르게 둘 수는 없었다. 호주 워홀을 거쳐, 영국과, 캐나다 워홀에 가려고 했던 계획을 일단은 접어 놓기로 했다.
유목 생활을 시작하는 데 패기가 필요했다면 끝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했는데, 이제 막 호주에서 제대로 살아보려던 참이었는데. 시드니 뿐만 아니라 브리즈번과 멜번에도 가보고 싶었고 호주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영국에 꼭 가고 싶었다. 호주에 있다 보면 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고, 영국의 흔적을 거리나 건물 이름에서 보게 되면서 자연히 영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해외 취업을 목표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있었고 꾸준히 영국 채용 공고 사이트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며 1~2년 후의 취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조금씩 익혀가고 있는 때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궤도를 수정하는 수 밖에.
한국에서도 한동안은 유랑 생활을 이어갔다. 보증금 부담이 덜한 지방에 원룸을 구했고 재택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기엔 아직 한국에 정착해야겠다는 마음이 완전히 서지 않았을 때였다. 하루 하루 가는 것이 안타깝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나 자신과, 나의 호주 유랑기를 응원하던 인연들과 대화를 하며 삶의 방향을 수정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현실을 인정하고 계획을 수정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은 서울에 다시 터를 잡고 일자리를 구해서 떠나왔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떠난 지 꼭 1년 반 만이었다. 10년 동안 눈에 익을 만큼 익숙한 서울 원룸이라는 공간에 다시 짐을 풀었다.
호주를 거친 유랑 생활은 내 삶에 무엇을 남겼을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호주에서 프로그래밍 언어와, 디지털, 데이터 영역 공부를 시작했다. 또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기술을 하나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번역 일도 시작했다. 덕분에 커리어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방을 공유하는 쉐어하우스, 거실을 공유하는 쉐어하우스, 다인실 호스텔 등 다양한 주거 형태에서 살아보면서 내게 맞는 주거 형태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여건이 된다면, 함께 살고 싶다.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삶을 걸어야 하는 일인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노력해 운이 좋을 때 확정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어느 곳에서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한국을 영영 떠나고 싶은 걸까? 어쩌면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한국에서의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렇담 먼저 나 스스로가 변해야하는 것 아닐까. 애초에 유목 생활을 통해 실현해보고 싶던 '조금 다른 삶의 시도'를 한국에서 해볼 수는 없을까?
캐리어 하나로 삶을 압축해 시작한 유목 생활에서 삶의 기본 조건을 생각하게 됐다. 집, 일, 돈, 그리고 커뮤니티. 코로나를 거치면서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했다. 고립되지 않는 것, 사회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소통할 수 있는 것.
집, 일, 돈, 커뮤니티 이 네 가지를 삶에 단단하게 지탱시키는 것을 목표로 서울에서의 삶 시즌 2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