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양보해라.”
“네가 배려해라.”
사실 나는 이 말을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로 듣고 자랐기 때문에 다 큰 성인이 된 지금, 가끔 부모님이 “네가 배려해라.” 라는 말을 할 때면 솔직히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배려, 양보라는 말은 좋은 말인데 왜 욱하냐?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것이지만 나에게는 당연하면서도 서러운 일이기도 했다.
배려를, 양보를 강요당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또 어김없이 '살아보니까'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운 것은 너무나 잘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릴 때 어떤 상황에서든 부모님은 내가 먼저 배려하기를 바라셨다. 내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마음 편하게 배려해라. 그런데 어린 날의 나로써는 마음 편하게 배려했다기 보다는 울며 겨자먹기로 했다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욕심을 절제하는 방법도 몰랐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지만 그 기준을 알지 못했으니까.
성인이 되서는 그런 부모님의 가르침이 이해가 되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매번 습관처럼 배려하다 손해만 보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이 내 마음을 전혀 모르고 계실거라고 생각했다.
“왜 나만 배려해야해. 왜 나만 양보해야해.”
속으로만 말했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의 전 남친, 그러니까 지금의 신랑과 아빠가 술 한잔을 하며 대화를 나눌 때 아빠는 신랑에게 말했다고 한다.
"쟤가 철이 일찍 들었다. 매번 배려만 하고 양보만 하고 자라서 지도 많이 속상했을텐데 내색도 안하고."
그 말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뚝뚝하기만 아빠가 그런 말을 할거라는 생각도 못했지만 묵묵히 그 시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물론 남자친구는 알고 있었다. 나를 데리러 올 때 한 번씩 울먹거리며 하소연 하던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남자친구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아빠의 말 한마디에 쌓였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척 넘어갈법도 한데 나는 또 듣고 싶은 마음에 아빠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많이 힘들었다고.
"아빠도 엄마도 다 알지 왜 몰라. 근데 아빠도 살아보니까 조금 손해보는게 나을 때도 있더라. 그리고 니가 그렇게 자라줘서 아빠 엄마는 참 고맙고."
울컥한 마음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 그냥 웃으며 그랬냐고 대답할 뿐이었다. 아빠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안간힘을 써서 모든 걸 놓지 못하는 것보다 한 번 양보하면, 한 번 양보 받을 때가 있고 한 번 배려하니 열 번 배려를 받은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손해보더라도 지금까지 배운 것처럼 되도록 양보하고, 되도록 배려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