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마음의 수고를 다독이며

트라우마와 self soothing

by VOO

이전에 쓴 일기를 가끔 하나씩 읽어볼 때가 있다. 일기속에는 당시 무슨일이 있었는지 줄줄 기록되어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통한 심정만 잔뜩 주절거려 놓았는데 대체 무슨일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도 있다. 그때는 그렇게나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냈구나 웃음이 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캐릭터가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성장을 하지만 내가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돌아보니,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부분도 있지만 일종의 나쁜 습관도 생겼다. 살기위해 내가 획득한 아이템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필요했고 지금도 여전히 필요할 때가 종종있지만 그보다는 번거롭고, 때로는 나와 주변을 힘들게하는 자폭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그러니까 싫은 내색은 안할 수록 좋다고 믿었다. 사람좋다는 말을 훈장처럼 여기던 나였다. 요즘의 나는 약간의 위험만 감지되어도 발을 빼버리고, 조금이라도 공격이라고 생각되면 그 상대에게 망설임 없이 돌아선다. 아마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겁쟁이 마음이 벌인 일이겠지. 또 과도한 책임감에 눌려 살던 나였지만 이제는 다 집어던지고 도망치기를 잘한다. 덕분에 미련하게 참느라 죽을 것 같던 고통으로부터 이제는 좀 안전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도망친 일이 죽을 만큼의 위험 상황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바늘 끝에 찔려 놓고 의사부터 찾는 것처럼. 건강염려증인듯 과민해져있다는 것이 문제다. 멀찍이 떨어져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벌이고 다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의견조율이 필요했던 어떤 일상이었다.


무균 상태의 세상은 없다.

오해가 생겨도 얼마든지 균형을 맞춰나갈 수 있다.


어른 마음이 겁쟁이 마음을 다독여 본다. 지나간 시간이 나에게 남긴 흔적과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혼동하지 말자. 나를 보호하려는 겁쟁이 마음의 수고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고맙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러니 이제, 괜찮다.